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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대법원을 고민하게 만들어야" 형사 상고이유서 작성의 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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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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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석우 변호사의 법률 이야기-70] 1. 10년을 훌쩍 넘겨 변호사로 생활하며 형사 국선변호인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공익활동으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형사소송에 관한 감각을 유지한다는 소득도 적지 않다.

1심이나 2심의 형사사건에 대한 국선변호인 활동과 달리 대법원 단계에서의 국선변호인은 좀 다르다. 주로 서류심사만 하는 곳이기에 상대적으로 부담은 덜하지만 정말 곤혹스러운 점이 있다. 형사사건의 3번째 재판, 대법원에서 피고인 측에서 주장할 만한 사유가 극히 제한돼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형사 제2심에서 그 형량이 10년 미만의 형이 나온 사건에 대해서는 상고이유로 주장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대부분 10년 미만의 징역형이 선고되는 형사사건에서 대법원의 국선변호인으로 지정돼 상고이유서를 내야 하는 변호사로서는 곤혹스럽지가 않을 수 없다. 물론 사선에서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2. 대법원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가 상고이유서를 작성하는 흐름을 따라가 보자.

가. 먼저 항소이유서를 찾아본다. 항소이유서에 적히지 않은 것은 상고이유로 제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피고인이 항소심에서 항소 이유로 주장하지 아니하거나 항소심이 직권으로 심판대상으로 삼은 사항 이외의 사유에 대하여는 이를 상고이유로 삼을 수 없다(대법원 2005. 7. 14. 선고 2005도2996 판결, 대법원 2007. 3. 15. 선고 2006도8690 판결 등 참조).


그런데 항소이유서에 적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모두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항소이유는 1심 판결에 대해 법률상의 문제점 외에 양형부당을 주장하는데, 양형부당은 적어도 10년 이상이 나왔을 경우에만 상고이유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 판결문에서, "형사소송법 제383조 제4호는 형의 양정이 심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현저한 사유가 있어 상고이유로 삼을 수 있는 경우를 '사형·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말의 의미이다.


만일에 항소이유서에서 법률해석이나 법률적용상의 문제가 지적돼 있지 않고 오로지 양형부당만 적혀 있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오히려 이런 경우가 대다수다.) 여기서 상고심을 담당한 변호사의 고민이 시작된다. 상고이유서에 어떤 내용이라도 적어야만 하는데 도대체 적을 게 없기 때문이다.

나. 양형부당을 정면으로 문제 삼지 않고 양형을 결정함에 있어서 전제로 삼은 양형사실, 정상관계 사실의 인정 과정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는 방법이다. 다시 말해 양형의 기초사실을 인정함에 있어서 경험칙 내지 논리칙에 위배하고 심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심리미진)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일탈했다는 논리이다. 가령 다음과 같이 적는다.

… 위와 같은 양형의 기초사실에 대한 심리가 충분하지 않았던 원심판결에는 양형사실을 심리하지 않은 잘못과 논리칙에 위배함으로써 사실을 오인한 잘못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위 판결에 나와 있는 것처럼

10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된 사건이 아니면 사실심인 원심이 피고인에 대한 양형조건이 되는 범행의 동기 및 수법이나 범행 전후의 정황 등의 제반 정상에 관하여 심리를 제대로 하지 아니하였음을 들어 상고이유로 삼을 수도 없다.


다.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을 위반했다는 사유를 상고이유로 주장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것도

1. 법원조직법 제81조의2 이하의 규정에 의하여 마련된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은 형사재판에 있어서의 합리적 양형을 위해 마련된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이므로 법관의 양형에 있어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구체적 사건마다의 다양하고 특수한 사정을 모두 포섭하거나 반영하여 그에 상응하는 양형까지를 제시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법적인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2. 또한 피고인 1에 대하여 10년 미만의 징역형이 선고된 이 사건에서 형의 양정이 심히 부당하다는 취지의 상고이유는 적법한 상고이유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경우 사실심인 원심이 피고인에 대한 양형조건이 되는 범행의 동기 및 수법이나 범행 전후의 정황 등의 제반 정상에 관하여 심리를 제대로 하지 아니하였음을 들어 상고이유로 삼을 수도 없다(대법원 2010. 2. 11. 선고 2009도12627 판결 참조).

3. 따라서 그 선고된 형이 양형기준에 반한다거나 부당하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대법원 2012.06.28. 2012도2631 판결)


라. 유사사례에 대한 기존의 선고형들과 비교해 항소심 판결이 자의적 판결로서 비례의 원칙을 위반함은 물론 피고인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는 방법이다.

이를 허용한 예외적 판례가 있긴 하지만(대법원 2007. 4. 19. 선고 2005도7288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여간해서는 인정해주지 않아 크게 기대할 일은 아니다.

마. 내가 담당했던 사건 가운데, 항소이유서에 적혀있지 않던 법률적 주장이 항소심 공판 진행 중에야 제기되어 이것을 상고이유로 제기했던 사례가 있다. 이에 대해 항소심 법원이 판단하지 않았으므로 판단유탈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역시 엄격했다.

항소법원은 직권조사사유가 아닌 것에 관하여는 그것이 항소장에 기재되어 있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소정 기간 내에 제출된 항소이유서에 포함된 경우에 한하여 심판대상으로 할 수 있고, 다만 판결에 영향을 미친 사유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항소이유서에 포함되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직권으로 심판할 수 있고, 한편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항소이유서에 포함시키지 아니한 사항을 항소심 공판정에서 진술한다 하더라도 그 진술에 포함된 주장과 같은 항소이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1998. 9. 22. 선고 98도1234 판결 등 참조)


상고심은 항소심 판결에 대한 사후심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항소심에서 심판대상이 되지 아니한 사항은 상고심의 심판대상에 들지 아니하는 것이다.

"상고심은 항소심 판결에 대한 사후심이므로 항소심에서 심판대상이 되지 아니한 사항은 상고심의 심판범위에 들지 아니하는 것이다. 따라서 피고인이 항소심에서 항소이유로 주장하였거나 항소심이 직원으로 심판대상으로 삼은 사항 이외의 사유에 대하여는 이를 상고이유로 삼을 수 없다."(2014도1100)

6.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국선으로 대법원 사건을 맡아 상고이유서를 작성해야 하는 변호인으로서 말이다. 만일에 사선으로 찾아오신 분이 있다면 사정 설명을 모두 하긴 해야겠지?

그러나 이런 관점이 있을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법원에 의한 판결확정시기가 늦어져야만 하는 절박한 사정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금방 기각되고 말 "양형부당"을 상고이유에 적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기에 법률상의 주장이라는 외피를 씌워야만 하고 그럴듯한 논리, 적어도 대법원에서 고민할 정도의 논리만큼은 만들어 올려야 하지 않을까? 그게 국선이든 사선이든 변호인으로서의 당연한 책무라고 생각한다.

양형부당을 주장하지 못하자, 양형의 기초사실에 대한 심리미진을 주장하고, 양형기준 위반을 들며, 헌법적 관점까지 제시하고자 논리를 짜낸 분들의 고민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실질을 보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외피만이라도 상고이유에 해당하는 사유를 주장함으로써 대법원의 눈길과 관심을 끌고자 하는 처절한 노력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나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대법원의 완고한 논리와 법리를 깨고자 하였던 이런 분들의 노력이 존경스럽다.

어쨌든 2심에서 10년 미만의 형을 받고 상고된 후 배당된 국선 형사사건의 항소이유서를 찾아보니 오로지 양형부당만 항소이유로 적혀 있을 때, 변호인은 곤혹스럽다.

[마석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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