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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뉴스+] "+5와 -5를 더하면 0이다"…사실상 '맹탕 대입개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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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절대평가 확대’ 의견 두루뭉술 합쳐 /공론조사 ‘수능위주 45%’ 결과에도/권고안에선 ‘대학 자율’ 한발 물러서/교육부, 현행 방식 유지 가능성 높아/文정부 교육개혁 차질 불가피할 듯/교육계 “靑·교육부 결과 책임져야”

세계일보

‘+5와 -5를 더하면 0이다.’ 국가교육회의가 7일 내놓은 2022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안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대입개편 공론조사에서 도출된 상반된 두 결과를 어정쩡하게 합쳐 이도 저도 아닌 결론을 맺고 말았다.

시민참여단 490명이 참여한 공론조사에서는 ‘수능 위주의 정시 비중을 확대하라’는 요구와 ‘수능 변별력을 낮추라’(절대평가 확대)는 요구가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통계적으로 공동 1위라고 봐도 무방한 오차범위 내 접전이었다.

모순된 결과를 받아든 국가교육회의는 두 의견을 적당히 버무렸다. 그 결과 현 대입제도에서 한 걸음 나아가지 못하고 사실상 현행 유지나 다름없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처음부터 다수결로 결정할 수 없는 입시문제를 민의 수렴이란 명목 아래 무리하게 추진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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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오른쪽)이 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날 대통령직속 국가교육회의가 발표한 ‘대학입시제도 개편 권고안’을 놓고 교육부 실국장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뉴시스


◆돌고 돌아 원점으로

가장 관심을 모은 정시 비중에 대해 국가교육회의는 이날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정시 비중을 확대하라’는 두루뭉술한 권고안만 내놓았다.

지난 3일 발표된 시민참여단 공론조사에서 응답자의 21.2%는 수능 위주 전형이 전체 선발인원의 ‘30% 이상∼40% 미만’이 돼야 한다고 답했다. 27.2%는 ‘40% 이상∼50% 미만’이 적절하다고 답했다. 구간별 중간값을 응답 비율로 가중평균하면 시민참여단이 적절하다고 본 정시 전형 비율은 39.6%다. 올해 고3 학생들이 치를 2019학년도 입시에서 4년제 대학의 정시 비중은 23.8%인데 이보다 최소한 15% 이상 늘리라는 요구다.

그러나 국가교육회의는 권고안에 정시 비중을 얼마나 확대해야 할지 정량적 목표를 담지 않았다. 권고안을 발표한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대입제도개편 특별위원장은 “각 대학에 대한 구체적 점검 없이 상징적인 수치를 제시하는 것도 무책임한 일이고, 정확한 수치를 결정하기에도 실효성 있는 수단이 없어 논의 과정에서 논란이 됐다”며 “어떻게 결정하든 양쪽 다 일정하게 무책임한 부분이 있다”는 말로 한계를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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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100일 앞둔 7일 오전 서울 중구 중림동 종로학원에서 수험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시민참여단에 의견을 물을 때는 ‘수능 위주 전형 45% 이상 선발’(개편 시나리오 1)이라고 명확한 비율을 제시해놓고도 정작 권고안을 낼 때는 ‘대학 특성에 따라 일괄적으로 제시하기 어렵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순된 태도를 보인 셈이다.

입시 전문가들은 교육부가 지금처럼 선발 방식을 대학 자율에 맡기되, 정부 재정지원사업 등을 통해 정시 확대를 유도하는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본다. 수능 절대평가 확대에 관한 부분도 2021학년도 대입 개편안과 다를 바 없다. 2021학년도 대입 개편안에는 이미 제2외국어·한문과 통합사회·통합과학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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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 교육개혁 ‘빨간불’

김 위원장은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까지 거론하며 공론화의 의미를 강조했다.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 지배로 흐르는 것을 막으려면 시민사회의 검증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교육제도가 얽힌 입시문제를 무슨 ‘인기투표’처럼 시민 의사에 맡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처음부터 많았다. 국가교육회의의 어정쩡한 권고안은 이런 지적이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박주호 한양대 교수(교육학)는 “대입은 교육적 의사결정이 필요한 영역인데 기본적인 교육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정치적 가치를 추구하는 여론으로 해결하려 했다”며 “국민 의견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으니 그걸 반영할 수는 있지만 전적으로 따라갈 사안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도 “청와대와 교육부는 이런 결론이 날 것을 충분히 예견했음에도 해선 안 되는 쓸데없는 일을 한 것”이라며 “교육정책 의사결정권자인 교육부와 청와대가 이에 대해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고 맹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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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회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교육회의는 대입제도 공론화 과정에서 최대 지지를 받은 정시 45% 이상 확대하는 의제 1안`을 권고하라고 밝히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내놓은 교육개혁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그동안 청와대는 ‘줄세우기식 교육’에서 탈피하겠다는 큰 그림 아래 수능 절대평가와 고교체제 개편,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제), 고교학점제 도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권고안은 그와 반대로 수능전형 비중이 늘고, 국어·수학 등 주요 과목의 평가방식도 상대평가로 유지되는 쪽으로 마무리됐다. 특히 절대평가는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해 이번 정부에서 수능 절대평가의 대폭 확대는 어려워졌다. 무엇보다 고교체제 개편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능 비중만 늘면 자율형사립고·특목고 등 쏠림 현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지로·남혜정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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