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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이수연 PD의 방송 이야기] '엠바고'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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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이번 주 갑작스러운 속보가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리비아에서 피랍된 한국인 인질 영상이 공개된 것이다. 인질극으로 국민을 잃어본 아픔이 있는 우리에게 관심이 클 수밖에 없는 뉴스였다. 한편으로는 왜 피랍 사실이 27일 만에 알려졌는지에 관심이 모였다. 그로부터 며칠 전에 관련 기사가 떴다가 어느 순간 사라진 일도 있었다.

이때 등장한 용어가 '엠바고(embargo)'다. 취재원과 기자가 서로 약속된 시점까지 뉴스를 보도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 즉 '보도 유예'를 뜻한다. 생명이나 국익에 관련된 문제일 때 주로 엠바고가 된다. 이번에도 우리 국민의 생명과 관련돼 있었기 때문에 정부의 엠바고 요청을 기자단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엄연히 말하면 엠바고는 기자의 업무 영역이지만, 뉴스PD들도 밀접하게 연관될 때가 있다. 생방송 중에 엠바고 속보를 처리해야 할 때가 특히 그렇다.

생방송 중 일반 속보가 처리되는 경우엔 신속함이 생명이다. 사내 메신저로 속보를 전달받은 뉴스PD가 즉각 자막을 제작해 내보내면, 그사이 앵커는 현장 기자에게 관련 내용을 메신저로 물어본 뒤 자신의 멘트로 이를 전달한다. 이 모든 과정이 생방송 중에 정신없이 일어나는 만큼, 아무래도 방송이 좀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엠바고 속보인 경우엔 좀 다르다. 뉴스를 공개할 시간이 사전에 정해져 있기 때문에 보다 더 정교한 준비가 필요하다. 속보 자막도 미리 다듬어 준비하고, 앵커도 내용을 사전에 공부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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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속보는 누가 1초라도 먼저 방송하느냐가 중요하지만, 엠바고 속보는 정확성이 중요하다. 제작진은 생방송 중에도 틈틈이 시계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가, 엠바고 해제 시각이 되는 순간 마음속으로 '땡!' 소리를 외치며 한 치의 오차 없이 속보를 처리한다. 모든 채널에서 동시에 같은 내용의 속보 자막이 나가는 진풍경이 펼쳐지게 된다.

엠바고가 국민의 알 권리를 방해한다는 논란도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조심스럽게 다루는 이유는 그 내용이 가지는 무게 때문이다. 이번 엠바고의 목적이기도 했던, 리비아 인질들의 무사 귀환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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