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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매경이 만난 사람] 지역경제 구원투수로 나선 김경수 경남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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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김경수 경남지사가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면서 경제 살리기 정책에 대한 구상을 밝히고 있다.


이제 막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넘어섰다. 하지만 이미 20년 전부터 '킹메이커'라는 하늘의 명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실제로 민선 7기 경상남도호(號) 수장에 오른 김경수 경남지사(51)는 벌써 두 번째 대통령을 만드는 데 '공'을 세웠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 캠프의 선거대책위원회 활동을 시작으로 참여정부에서 연설기획비서관, 공보비서관까지 거쳤다. 그리고 2012년 18대 대선과 지난해 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활약하며 '문재인의 복심(腹心)'으로까지 불렸다.

정치권에서는 김 지사를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산다는 '경상도 싸나이'라고 부른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봉하마을로 귀향할 때도, 서거 직전에도 노 전 대통령의 곁을 지켰던 인사가 바로 김 지사다. 그래서인지 김 지사는 최근 경남도청 도지사 집무실에서 진행된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줄곧 "도민들이 저를 뽑아주신 은혜를 갚는 길은 경남 발전에 온몸이 부서질 때까지 힘을 쏟는 것"이라고 했다.

대권에 대한 생각도 확고했다. 그는 "경남이 그리 한가한 곳이 아니다. 대권은 제 몫이 아니다"고 못을 박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드루킹 사건' 수사에 대해선 "특검에서 부르면 성실히 조사를 받겠다"고만 말했다.

―기업들의 투자가 많이 들어와야 하는 거 아닌가.

▷현재 만들고 있다(웃음). 경남의 제조업은 강점이 있다. 경쟁력과 생산력이 떨어졌지만 그동안 경남을 받쳐왔던 축이다. 중소 제조업체들이 혁신만 잘한다면 희망이 있다. 경남에는 일부 중소기업들이 이미 선제적인 투자나 혁신을 통해 중견기업으로 커간 사례가 꽤 있다. 그런 사례들이 확산돼야 하는데 몇 군데에 그친 게 문제다. 외국인 노동자를 쓰면서 단순 저임금 노동으로 인건비 줄여서 근근이 유지하는 업체가 많다. 3·4차 협력업체 중에는 업주가 자기 월급 안 받고 버티는 데가 늘어나고 있다. 전체적으로 혁신하고, 한계기업들이 아닌 살아날 수 있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개별 기업에만 맡겨 놓을 게 아니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나서서 앞에서 끌어줘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만 해도 경남 경제는 많이 바뀔 거라고 본다. 그러면 외부에서도 경남이 투자하기 좋은 곳, 경남에서 기업하기 좋은 곳으로 인식되면서 기업과 투자가 늘 것이다. 단순히 기업들을 찾아가서 바짓가랑이를 붙잡는다고 되겠는가.

―제조업체가 스마트화하려면 자금이 굉장히 많이 드는데.

▷중소 제조업체들이 제대로 스마트화하려면 기업당 보통 10억~20억원, 좀 크면 30억원 이상이 든다. 현재 정부는 5000만원만 지원해준다. 이건 심하지 않나. 정부가 1억원 정도 지원하고 지방정부가 매칭해서 1억~2억원이 지원되면 이걸 시드머니로 해서 기업들이 자기자본을 넣고, 협력업체라면 원도급 대기업들이 협력업체의 스마트화 지원에 나서야 된다. 단가 후려치기를 안 해도 저절로 불량률이 낮아져서 생산단가가 내려가 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비용이 모자라면 금융 지원을 해줘야 한다. 기존의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기금을 통해서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경남 지역에 맞는 정책금융을 만들려고 한다.

독일은 우리나라 산업은행 같은 지역 단위의 정책금융기관이 있다. 그러나 우리처럼 산업은행이 돈을 쌓아놓고 증자하는 게 아니다. 기업에 대출해준 민간 금융기관에 대한 보증 재보증을 해주는 형태다. 실제로 100억원을 가지고 10배수를 굴리면 1000억원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사고가 생기면 그걸 정책금융기관에서 감당하면 된다. 지역에 맞는 새로운 금융 지원 방식을 만들어야 실제 현장에 도움이 된다. 현재 우리 지역 특성에 맞는 정책금융이 뭐가 있는지 정부와 협의 중이다.

―중소 제조업체의 스마트화도 좋지만 기존 제조업의 한계도 있다.

▷맞다. 특히 조선업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다. 이쪽은 미스매칭이 심하다. 현장에서는 구인난이 심한데 정작 청년실업률은 11%가 넘어서고 있다. 왜 미스매칭이 생길까. 단순 노동을 할 사람이 없다.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는 젊은 친구들이 취업을 했다가도 금방 빠져나간다. 결국 외국인 노동자를 쓰고, 최저임금이 올라가니까 같이 일하는 노동자들을 안 올려줄 수 없다 보니 악순환 구조로 가는 거다. 스마트화가 필요한 것은 설비 자동화 정도만 되면 외국인 노동자들이 하고 있는 단순 노동 대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재교육을 통해서 일자리 자체가 고급화하고 노동도 스마트화된다.

대기업의 협조가 선결 조건이지만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지면 이익률이 높아지고 협력업체들에 대한 대우도 높아진다. 처우나 복지가 지금보다 나아지면 젊은 친구들도 중소업체라도 스마트화된 공장을 가려고 하지 않겠나. 전체가 맞물려 있는 것 같다. 전체 제조업 혁신은 매듭의 고리부터 풀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매듭의 고리가 공장 스마트화라고 본다.

―선택의 문제인 것 같다. 잘 안 되는 걸 고쳐서 갈 수도 있지만 성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새로운 게 필요하다. 관광·레저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 대한 견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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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그러다 망했다. 좋은 전략이 아니다. 전체 산업을 나무로 비교하면 제조업은 뿌리다. 특히 중소 제조업이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뿌리다. 뿌리가 썩어가고 있는데 이 뿌리를 살리기 위해 우선적인 투자가 돼야 한다. 그동안 이건 대충해놓고 물만 주고 있었다. 새로운 신성장 산업에 집중하는 건 열매를 따먹기 위해 다른 영양제를 주는 것에 불과하다. 열매만 키우는 영양주사로는 신성장 사업이 나올 수 없다. 제조업을 혁신하는 과정은 결국은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디지털화, 설비 자동화, 부품의 스마트화 등을 통해 새로운 성장산업이 그 과정에서 함께 결합돼 키워지는 거다. 여기서 만들어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제조업이 튼튼해지고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지면 소득이 높아진 사람이 관광을 다닌다. 관광 수요가 커지면 자연스레 그쪽을 키울 수 있다.

독일의 지멘스나 보쉬 같은 기업들은 기존 인력을 재교육해 공정관리 업무를 맡기고 그 덕분에 생산성이 높아지며 경쟁력이 강화돼 생산인력을 추가로 늘렸다. 창원의 한 기업은 스마트팩토리 이후 불량률이 700% 줄어 오히려 인력을 20% 늘린 사례도 있다.

―경남 지역에는 좋은 기업이 많고 외부에서 오는 방문객도 꽤 있다. 인프라스트럭처 투자를 하는 건 어떤가.

▷응급 수혈 처방이다. 그래서 경북 김천과 거제를 연결하는 서부경남 KTX 건설을 정부에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사업비가 3조5000억~5조3000억원이다. 경남에서도 특별히 어려운 지역이 진주·산청·함양 등 서부경남이다. 서부경남이 어느 정도냐면 몸이 아파 병원에 가야 하는데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사람들의 비율인 '미치료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다. 특히 서부경남은 진주의료원 폐쇄로 공공의료원 체계가 무너진 이후 더욱 심해졌다. 통영·거제·고성은 고용위기·산업위기 지역이고, 서부경남 전체적으로 새로운 산업 기반이 만들어지는 게 없어 더욱 어렵다. 이럴 때는 새로운 산업 기반을 구축해가는 시간이 상당히 걸린다. 서부경남 KTX사업을 정부가 재정사업으로 결정하면 지금부터 자연스레 투자가 늘어나지 않겠나. 2022년 임기 내 착공이 목표다. 부산과 목포를 잇는 KTX도 동시에 추진하겠다.

―다른 사회간접자본(SOC) 인프라 투자는 어떤 게 있는가.

▷신공항이 있다. 신공항과 관련해 벌써부터 다음 입지 가지고 딴 얘기가 나오는데 그럴 단계가 아니다. 차후 입지를 지금 얘기하면 지역 갈등만 일으킨다. 현재 국책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이 확 뒤집고 다음 입지로 간다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과거 김해신공항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제대로 검토돼 결정됐는지를 면밀하게 연구 분석부터 하자는 것이다. 그 결과를 가지고 정부와 협의해서 김해신공항을 할 건지 말 건지부터 빨리 결정을 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이 부분이 정리도 안 됐는데 다음 단계로 싸우면 정부는 떡 줄 생각도 안 하는데 우리끼리 싸우는 형태다. 그래서 지금은 (부·울·경 시도지사들끼리) 그렇게 합의했다. 언론에서 '서로 입장이 다르다'고 부추기는 경향이 있는데 세 광역단체장의 기본 입장은 똑같다.

―자영업자 등 다른 일자리 대책은.

▷자영업 비율이 전국 25% 수준인데 경남은 32%에 달한다.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들은 지금 최저임금이라든지 여러 가지 경제 상황으로 매우 어렵다. 소득주도성장이 효력을 나타내려면 1~2년 갭이 필요한데 정작 혜택을 받아야 하는 소상공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저는 이 시기를 '보릿고개'라고 표현한다. 보릿고개를 넘길 수 있는 지원 대책을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중앙정부와 매칭을 통해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하나 더 필요한 게 소상공인 자체 금융이다. 선진국은 스스로 결성한 소상공인 신용협동조합 같은 자체 금융기관을 갖고 있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신협을 만들어서 일종의 상부상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중앙 ·지방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투 트랙으로 같이 가줘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런 식으로 안 돼 있다.

―김경수 지사가 '더 좋은 리더'로 성장해야 한다는 기대감도 큰 것 같다.

▷경남은 역대 도지사들이 전부 대선 바람이 불어서 중도 사퇴했는데 대선 얘기를 하면 안 된다(웃음). 대권은 제가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다. 제가 질 짐이 아니다. 특히 경남은 그리 한가한 곳이 아니다. 경남 문제만 제대로 풀어도 대한민국의 문제,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 등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한 거다. 경남도민들이 힘 있는 여당 도지사를 선택한 건 경남이 그만큼 어렵다는 거다. 경제도, 민생도 어렵고 내가 힘들고 어려우니까 이 문제를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이 맡아서 해달라는 거였다. 이런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얼마 전 진주에서 기업가정신 수도 선포식이 열렸다. 기업가정신 살리기에 대한 견해는.

▷공무원들에게도 기업가와 기업에 대한 자세와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창원에 센트럴이라는 매출 1조원이 넘는 기업이 있다. 이 기업이 대구에 공장을 증설했다. 이유는 전임 홍준표 지사에게 공장을 늘리기 위해 이런 조건의 땅이 필요하다고 건의하니까 홍 지사가 본인이 초등학교를 다닌 합천으로 가라고 했다고 한다. 합천으로 가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기업에서 투자를 고민하고 있는데 때마침 대구 경제부지사가 이 소식을 듣고 세 번이나 찾아왔다고 한다. 대구에 오기만 하면 다 해결해준다고 적극적으로 제안하니 안 갈 수 있겠나. 기업의 애로사항을 제대로 청취하고, 적극적이고 합당한 솔루션을 행정에서 제시해야 한다.

김경수 지사는…

△1967년 경남 고성 출생 △진주동명고 졸업 △서울대 인류학과 졸업 △1994년 신계륜 국회의원 보좌관 △2003~2008년 참여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 행정관, 연설기획비서관 △2009년 봉하재단 사무국장 △2011년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부 본부장 △2012년 민주당 경남 김해을 지역위원장 △2013년 민주당 중앙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경남 김해을) △2018년 경남도지사

[대담 = 김경도 전국취재부장 / 창원 = 최승균 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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