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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김진호의 세계읽기]스트롱맨 정치에 ‘원죄’…오바마, 포퓰리즘 비판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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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는 일부의 탐욕과 무책임 탓에 심각하게 약해졌다… 집은 사라지고, 일자리는 없어졌으며, 비즈니스는 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오늘, 우리는 모였다. 두려움 대신 희망을, 분쟁과 불일치 대신 단합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신이 우리의 자유이자 신조다. 모든 인종, 모든 신앙의 남성과 여성, 아이들이 이 웅장한 몰에 함께 모여 자축하는 까닭이다. 60년쯤 전만해도 시골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받지도 못했을 아버지의 아들이 여러분 앞에 서서 가장 신성한 서약을 할 수 있게 된 연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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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5도의 추운 날씨에 바람이 세찬 날이었다. 2009년 1월20일, 버락 오바마의 감동적인 대통령 취임사의 일부분이다. 여전히 생생한 기억이다. 취임식장인 의사당 앞마당에서 가까운 지하철역은 폐쇄됐다. 인파가 몰리자 당국은 의사당 직전 또는 직후의 역에서 하차하게 했다. 빤히 눈앞에 보이는 행사장의 지정석까지 가는 데 30분 가까이 걸렸던 것 같다. 그날 워싱턴에 운집한 사람은 100만명이 훨씬 넘었다. 바로 앞사람의 발 뒤꿈치만 보고 종종걸음을 옮겨야 했다. 멈춰 선 인파들 속에서 사상 첫 흑인 대통령의 탄생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흑인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오바마의 유세 자체가 ‘총성 없는 민란’이자, 촛불 없는 촛불집회였다. 워싱턴 주류 정치권으로부터 외면받아온 아웃사이더들이 몰렸다.

백인은 물론 흑인과 히스패닉, 아시아계가 오바마가 말한 ‘우리가 믿는 변화(In Change We Believe)’의 메시지에 열광했다. 희망의 세례를 받았다. 그의 당선을 도와준 1등 공신은 역설적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흙먼지 속에 수조달러를 탕진한 전임자 조지 부시였다. 부시의 부자감세안에 취한 월가의 ‘살찐 고양이’들이 자초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파동이 선거운동을 대신해줬다. 미국 경제는 휘청였고, 세계 경제는 더 크게 흔들렸다. 그 절체절명의 위기가 아니었다면 오바마는 취임식 연단에 서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절망 속에 형성된 거대한 희망의 물결이 워싱턴 기성 권력의 오랜 편견을 깼다. 시대에 맞게 오바마의 메시지는 신선했다.

‘트럼프’라 직접 언급 안 했지만

대중연설 ‘세계의 현주소’ 비판

포퓰리즘은 세계화 폐단이 뿌리

오바마의 ‘정치’도 세계화 편승


“우리는 미국 경제의 힘을 억만장자들의 숫자나 포천지 500대 기업의 이익으로 계량하지 않는다. 누군가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지, 팁으로 먹고사는 웨이트리스가 아픈 아이를 돌보기 위해 해고 걱정 없이 휴가를 낼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계량할 것이다.” 2008년 8월 민주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는 노동 존엄의 경제를 약속했다. 오바마는 말과 글에서 모두 탁월한 전달자다. 많은 유권자들이 그의 연설에서 위로와 힐링, 감동을 얻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저속한 말을 쏟아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비교하면 아득한 옛날의 일이다. 품격과 절제, 위트와 유머가 넘친 오바마의 연설에 익숙해졌던 많은 미국민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입이 열릴 때마다 좌절하고 있다. 문제는 많은 미국인들이 ‘트럼프현상’에서 여전히 트럼프만 보고, 저변의 큰 흐름은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만 시선이 머무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트럼프는 얼굴마담에 불과하다.

오바마가 오랜만에 감동적인 연설을 내놓았다. 적절한 예를 들어가며 세계의 현주소를 짚었다. 부시 덕에 오바마가 더욱 빛났었다면, 이번엔 트럼프 덕에 주가가 올라갔다. 오바마는 지난 17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넬슨 만델라 탄생 100주년 기념식 기조연설에서 “스트롱맨들의 정치(Strongman politics)가 민주주의 제도와 규범을 망치려 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이상하고도 불확실한 시대다. 매일매일 더 골치 아픈 헤드라인들이 뉴스에서 쏟아진다… (극우 포퓰리즘)지도자들은 몇년 전만 해도 불가능했던 속도로 공포와 분노, 뺄셈의 정치를 받아들이고 있다.” “(포퓰리즘) 정치지도자들 사이에 부끄러움이 사라지고 있다. 거짓말이 탄로나면 되레 거짓말을 두 배로 한다. 정치인들은 늘 거짓말을 해왔지만, 그나마 과거엔 탄로가 나면 머쓱해하기라도 했다”고 꼬집었다. 정치인이 앞장서 ‘가짜뉴스’를 확산시키면서 진실이 사라진 세태를 도마에 올려놓은 것이다. 이날 연설은 지난해 1월 퇴임 뒤 공식활동을 자제했던 그가 처음으로 한 대규모 대중연설이었다. 오바마는 A4용지 16장 분량의 긴 연설 중에 ‘도널드 트럼프’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누가 들어도 트럼프를 겨냥한 독설이었다. 요하네스버그 크리켓 경기장을 메운 수천명이 환호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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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구미 각국에서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리는 원인을 제대로 짚었다. 기실, 이민과 난민은 지엽적인 문제다. 포퓰리즘의 독버섯은 세계화의 폐단이라는 뿌리에서 자라났다. 그는 “미국과 유럽연합 내부에서 세계화에 대한 도전이 처음엔 좌파에서, 이후엔 우파에서 더욱 물리적으로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한 움직임이 도심 외곽 거주민들의 불안정과 경제적 안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공포를 자극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사회적 지위와 특권이 없어짐에 대한 공포, 문화적 정체성이 아웃사이더들에 의해 위협받음에 대한 공포를 자극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재임 때나 퇴임 후나 “민주주의”

세계질서 바꿀 ‘희망’ 주지 못해

오바마의 ‘변화’도 기대 못 미쳐

민주당에 희망 거는 미국인 희박


오바마는 그러나 세계화의 폐단을 방치한 자신의 책임은 언급하지 않았다. 세계화의 부작용으로 드러난 포퓰리즘을 비난하는 데는 열을 올렸지만, 정작 자신이 그 부작용과 타협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은 감춘 것이다. 물론 임기 중 보건의료개혁을 통해 기본적인 의료혜택조차 누리지 못했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초석을 놓았다. 그의 민주당은 의회에서 ‘토드-프랭크법’을 제정, 금융자본 규제 노력도 기울였다. 하지만 대공황 이후 최대 경제위기 속에서 근본적인 개혁은 외면했다. 자본의 논리도 무시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를 비롯해 도산위기에 처한 월가 금융업체들은 수천억달러의 공적자금을 수혈받아 명줄을 유지했다. 기업은 자본의 소유 아니던가. 그 자본이 공적자금이면 당연히 국가소유가 돼야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누리엘 루비니 등 민주당계 경제학자들이 은행 국유화를 주장했던 까닭이다. 심지어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까지 나서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업체들을 한시적으로나마 국유화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그린스펀이 누구인가. 클린턴 행정부 당시 금리를 1%대로 낮춰 부동산·정보기술(IT) 버블의 환경을 조성하고, 파생금융상품을 기술혁신(innovation)이라고 찬사를 보낸 장본인이 아닌가. 그런 그린스펀까지 나서 진로 수정을 권했지만 오바마는 흘려들었다. 그러고선 뒤늦게 남아공으로 날아가 점잖게 포퓰리즘을 비난하는 데 그 좋은 언변을 구사한 것이다.

월가는 세계화 체제의 핵심이다. 오바마가 월가의 방종한 자본에 굵직한 고삐를 조여매고, 세계화를 대체할 새로운 체제를 고민했다면 결과적으로 포퓰리즘이 뿌리를 내린 증오의 토양은 척박해졌을 것이다. 월가 자본의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오바마 본인보다도 그의 민주당이었다. 금융위기 이후 2010년까지 월가 헤지펀드들은 공화당보다 민주당에 더 많은 정치자금을 투여했다. 2016년 대선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은 월가 정치자금을 당겨오는 데 우등생이었다. 비영리 정치자금감시단체 ‘반응하는 정치센터(CRP)’에 따르면 2015년 하반기에 받은 2500만달러의 자금 중 1500만달러를 월가에서 조달했다. 오바마는 외곽에서 온 아웃사이더임을 강조하면서 워싱턴 정치를 개혁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기존 체제 내에서 따뜻한 한 세월을 보낸 인사이더 정치인에 불과했다. 바로 트럼프가 공격하는 제도권 정치의 선봉이었던 것이다. 정치가 금융자본에 의지하기보다 소액 기부자들의 풀뿌리 민심에 의지해야 더욱 독립적일 수 있다. 백발의 정치인 버니 샌더스가 2016년 민주당 대선 경선과정에서 보여준 놀라운 저력이었다.

돌이켜 보아도 당시 스티글리츠를 비롯한 민주당계 경제학자들의 처방이 옳았다. ‘고 위험, 고 수익(high risk, high return)’에 취한 월가는 더 큰돈을 벌기 위해 더욱 위험한 도박을 다시 시작한 지 오래다. 오바마가 내놓은 대안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비롯한 자유무역협정(FTA)의 활성화였지만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었다. 그나마 트럼프의 ‘FTA 혐오’에 막혀 표류하고 있다.

각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양축으로 하는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몰락을 한탄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을 필두로 스트롱맨들이 주도하는 권위주의 질서의 도래를 경계하고 있다. 오바마는 재임 당시나 퇴임 이후에나 그중 한가지, 민주주의만 말한다. 구구절절 옳은 말들이다.

서유럽의 중도좌파, 중도우파 정당들이 극우 포퓰리즘 정당에 전통적인 표밭을 잃는 것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특히 세계화의 흐름에 편승함으로써 제 발등을 찍고 있는 서구 중도좌파 정당들은 여전히 근본적인 체제전환보다는 미봉책만 궁리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포퓰리즘이 성하고, 중도 정당들이 쇠할 것은 불문가지다. 미국 민주당이나 서구 중도좌파 정당들이나 기성 정치 엘리트들은 세계화에 치이고, 정치권의 무응답에 다친, ‘잊힌 그들’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오바마의 조리 있는 연설문은 민주주의 학습 또는 영어 학습의 텍스트로나 유용할 것 같다. 하지만 포퓰리즘을 욕하면서 기존 세계화 체제에 머무는 한 해법이 될 수 없다. 구미 중도좌파의 공통된 패러독스다. 트럼프의 일상화된 분탕질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 민주당에 희망을 거는 목소리가 희박한 까닭이다. 세계는 더욱 묵직한 고민을 해야 한다. ‘변화’와 ‘희망’은 더 이상 오바마를 따라다니지 않는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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