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접출점 제한' 18년만에 수면 위로…편의점 옆 편의점 사라지나

[머니투데이 김태현 기자] [편의점협회 근접출점 자율규제 의사 공정위 전달…신규 사업자 진입 사실상 봉쇄 등 부작용도]

내년도 최저임금 10.9% 인상을 앞두고 편의점 점주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편의점 본사들이 근접출점을 자제하기로 결정했다. 가맹점주 뿐 아니라 가맹본부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비용 부담을 나눠야 한다는 비판 여론이 확산하자 스스로 근접출점을 제한하는 자율 규제 방안을 만든 것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CU, GS25,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씨스페이스 등 편의점 5개사로 구성된 한국편의점산업협회는 전날 근접출점 자제를 골자로 한 자율규약안을 마련하기로 합의, 공정거래위원회에 심사를 요청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 관계자는 "우선 근접출점과 관련해 자율규약안을 마련하기로 5개사가 합의해 공정위에 뜻을 전달했다"며 "공정위가 공식 입장을 밝히는 대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심사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심사가 완료되면 비회원사인 이마트24 등에도 근접출점 자율규약 동참을 권유할 계획이다.

이 방안이 공정위 심사를 통과하면 2000년 폐지됐던 편의점 근접출점 규제가 18년 만에 부활하게 된다. 편의점 업계는 1994년 경쟁 편의점 브랜드 간 근접출점을 막기 위해 '기존점과 80m이내에는 신규출점 하지 않는다'는 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2000년 공정위가 이를 경쟁사간 담합 행위로 판단해 협약이 무효화됐다. 현재 근접출점 제한 행위는 공정거래법상 담합에 해당돼 처벌 받는다.

편의점 본사들이 근접 출점 제한 카드를 꺼내든 것은 시장 포화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편의점 왕국'으로 불리는 일본의 경우 지난해말 기준 편의점수는 총 5만8300개다. 편의점 1개당 이용 인구수는 약 2200명이다. 지난해말 한국의 편의점수는 총 3만9277개, 점포당 이용인구는 1300명 수준이다.

점포가 우후죽순 늘면서 점포당 이용객수, 매출, 수익 등이 떨어지는 현상이 수년간 지속되면서 편의점 산업 전체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 이슈가 겹치면서 업계 스스로 자율 규제안을 마련하는 것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근접출점 규제는 편의점 가맹점주들도 요구해 온 사안이기도 하다. 현재 가맹거래법 시행규칙으로 반경 250m 내 동일 브랜드 신규 출점을 제한하고 있지만, 이 조항만으로는 국내 편의점 과밀화를 막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가맹점주들은 동일 브랜드 뿐 아니라 경쟁 브랜드의 출점까지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국편의점가맹점주협회 관계자는 "2000년대 들어 편의점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점포 당 매출이 크게 줄어들었다"며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까지 커진 상황에서 치열한 경쟁 탓에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편의점 가맹본부 관계자는 "최근 수년 간 가맹본부 회원사 사이에서도 근접출점을 규제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며 "이번 기회에 출점 속도를 조절하고, 점포 당 수익성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근접출점 규제로 인한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근접출점 규제가 시행되면 기존 대형 편의점 사업자들의 시장 점유율이 굳어져 자율경쟁을 막고, 결국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하는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중하위권 또는 후발 업체의 사업 확대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근접출점 규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충분히 듣고 있다"며 "면밀한 검토와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업계는 과거처럼 근접출점자율규약 거리 기준을 80m로 정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태현 기자 thkim1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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