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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동물은 죽어 나가고 보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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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애니멀피플] 실내동물원 사육사 3인의 퇴사 이유

“동물은 소모품…‘다시 사면 된다’는 말 들어”

“만지고 사진만 찍고 가는데 교육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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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업계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은 실내동물원에 안 간다.”

동물을 가까이에서 살피는 사육사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진실이라고 한다. 경력 10년 이상의 한 공영동물원 사육사는 “그곳은 동물 좋아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이 가는데, 다들 금방 그만 둔다. 항상 채용 중이라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건물 안에 동물원을 만들어두고 손님을 맞는 실내동물원은 동물보호단체로부터 ’동물 학대’라고 오랫동안 비판받아왔다. 하지만 ‘체험 동물원’이라고 포장되어 쉽게 동물을 볼 수 없는 도시 시민들을 유혹한다. 특히 어린이집 아이들의 단체 방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어떻게 운영되기에 사육사들이 이런 말을 할까 궁금했다. 전직 실내동물원 사육사 3명은 자신이 왜 실내동물원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는지를 털어놓았다. 3명의 재직 기간은 3개월, 5개월, 1년 6개월로 모두 길지 않았다. 재직한 시기는 2015년부터 2018년 사이이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지난달 발표를 보면 실내동물원을 포함한 동물체험시설은 전국에 95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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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사는 앵무새


ㄱ씨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자신이 돌보던 알파카가 죽었을 때라고 했다. 외국에서 수입되어 실내동물원으로 왔는데 적응을 하지 못하다 8개월 만에 떠났다. ㄱ씨는 실내동물원에 어울리지 않는 알파카를 야외 공간이 있는 동물원으로 보내자고 했지만, 업체 쪽은 운송 비용을 세느라 늦게 보냈다고 한다. ㄱ씨는 “많이 죽는다. 다양하게 죽는다. 수입돼 처음 들어왔을 때 제대로 안정을 찾지 못하면 먹이를 먹지 않는데 그러다 많이 죽는다. 야행성인데 낮에 체험에 나가야 하는 친칠라(설치류), 햄스터, 여우 등은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소형 동물은 아이들이 살짝만 만져도 죽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ㄴ씨는 아이들 손에 앉아 먹이를 먹는 작은 앵무새들의 수명을 15~30일이라고 했다. ㄴ씨는 “손님 앞에서 먹이 체험을 할 때 새들이 많이 와야 하는데 (새도) 배가 부르면 오지 않는다. 그래서 체험할 때만 먹이를 줘서 유인했다. 이때 약한 개체는 먹이를 못 먹을 확률이 높아 잘 죽었다”라고 돌아봤다. ㄷ씨도 “동물 무덤”이라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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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 곧 돈’인 공간


동물원의 자산은 동물이기 때문에, 동물은 곧 돈이 되었다. ㄴ씨는 아프고 적응을 잘하지 못 하는 동물도 체험 시간이 되면 데리고 나가야 했을 때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아침에 동물 컨디션을 보고 내보낼지를 결정하는데 무조건 나가라고 했다. 그때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데 관리자가 ‘다시 사면 된다’라고 말하며 나를 위로해서 더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ㄷ씨는 실내동물원 동물은 “소모품”이라고 했다. ㄷ씨 역시 관리자로부터 “또 사면 된다”라는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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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급적 동물에게 들어가는 돈을 아끼는 것이 사육사의 능력이었다. ㄴ씨가 일하던 곳의 동물들은 사과 한 박스를 이틀 만에 다 먹을 만큼 먹성이 좋았다고 한다. 한 달에 먹이값만 100만원 이상 나가는 게 당연했는데, 업체 쪽은 체험하러 가지 않는 동물에게까지 먹이를 줘야 하느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ㄱ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유는 조금 달랐다. 돼지나 염소의 경우 너무 많이 먹어 몸집이 커지면 실내동물원이 비좁아지기 때문에 많이 먹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돼지가 몸집이 커지면 농장에 팔고 아기 돼지를 사 왔다. 해바라기 씨 같은 소형 초식동물의 먹이는 유통기한 지난 것을 줄 때도 있었다. 판매는 불가하지만, 먹어도 이상 없을 정도의 상품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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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좋아했지만 배울 게 없었다


모두 동물을 좋아해서 온 이들이었다. 일을 그만둔 가장 큰 원인은 사육사로서 보람을 느끼지 못해서였다.

ㄱ씨는 “사육사로서의 본질을 다 하지 못하게 해서”라고 퇴사 이유를 밝혔다. 팀장이 동물과 동물원을 대하는 태도가 존경스러워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했다. “사육사 일을 실내동물원에서 시작하면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를 절대 배울 수 없다”는 ㄱ씨는 사육사의 역할을 고민했다고 한다. 동물의 이름, 사는 곳 같이 책에도 나오는 단순한 정보를 알려주고 동물의 몸을 만지게 해주는 사람이 사육사가 아니라는 믿음이 있다. “지금 동물원에서 보고 있는 동물들이 야생에서 쉽게 볼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 친구들을 사진으로만 보기 싫다면 쓰레기 만들지 말고 동물을 아껴주라고 (최대한) 말하려 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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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는 대부분의 실내동물원에 대형 맹수는 없지만 육식성 동물을 순치시키는 초반에는 위험한 일이 많다고 했다. “(거기 가면) 최소 인력으로 최대 효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많다. 동물 때문에 다치면 병원은 보내주지만 예방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라고 했다. 동물 이빨이나 발톱에 긁히는 일이 많아서 인수공통전염병을 우려했다고 한다.

노동 환경뿐 아니라 급여나 복지가 좋지 않은 것도 이직의 주된 이유였다. 업체는 동물 사육 경력이 있는 사람을 선호했지만 경험이 없는 신입을 채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직원의 전공이 동물 관련인 경우도 있었고 아닌 경우도 있었다. 3명 모두 150만원이 되지 않는 월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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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사육사들이 하고 싶은 말


전직 사육사들은 같은 실내동물원이라도 수준 차이가 있다고 했다. 시간이 갈 수록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점점 동물복지적으로 나아진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비판받을 지점이 너무나 많은 실내동물원이 ‘큰 변화 없이’ 이토록 순항 중인 이유는 사람들이 많이 찾기 때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ㄱ씨는 그 지점을 안타까워했다.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으니 실내동물원을 오는 게 잘못됐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와서 대부분 사진만 찍고 간다. 생명의 소중함, 서식지의 중요성 등을 알아가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햄스터를 던져서 죽인 아이에게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옆에서 ’(햄스터 살)돈 줄 테니 아이에게 사과하라’라는 엄마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ㄴ씨는 아이들이 동물을 만질 때마다 불안했다고 한다. 물리거나 긁히는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ㄷ씨는 “동물복지 인식 수준이 낮은 나라에나 있을 동물원이다. (앞으로)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18일 수도권의 한 실내동물원을 찾았다. 손이나 도구로 만질 수 있는 동물은 프레리도그, 토끼, 수달, 거북이, 앵무새, 카피바라 등이었다. 사육사들은 대부분 동물을 만지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몇몇 사육사들은 자신이 담당한 동물에 대해 친절하고 더 자세히 설명을 해주려 했지만 단체로 방문한 아이들의 집중력은 쉽게 흩어졌다. 동물과 ’안녕’하고 인사하는 아이도 있었고 촉감이 간지럽다며 즐거워하는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무서워하며 동물 만지기를 거부하는 아이도 있었다. 선생님이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 찍어주었다. 여우는 위험하지 않냐는 아이들 질문에 사육사가 (순치된 여우를 가리켜) 위험하지 않다고 말했다.

글·사진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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