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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한국 무용 콩쿠르를 세계 스타 산실로 키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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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무용콩쿠르 집행위원장 15년째 맡은 허영일 前 한예종 교수

러시아 마린스키의 김기민과 예카테리나 오스몰키나, 볼쇼이의 세묜 추딘, 워싱턴발레단의 브루클린 맥과 정영재, 이은원, 보스턴발레단 한서혜…. 지금 최고로 꼽히는 이 무용수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올해 15주년을 맞는 '서울국제무용콩쿠르'에서 수상하며 스타 무용수로 도움닫기를 했다는 것.

허영일(68) 집행위원장은 발레·현대무용·민족무용을 모두 아우르는 이 콩쿠르를, 스타 산실이자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우리 무용계의 자산으로 키워온 주역이다. 올해 콩쿠르가 진행 중인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18일 만난 그는 "시작할 땐 이렇게 험한 길인 줄 몰랐다"며 웃었다.

조선일보

허영일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집행위원장이 춤추는 포즈를 해 보였다. 그는“15년간 별일이 다 있었다”며“2011년 예술의전당서 열린 콩쿠르 땐 우면산 산사태로 로비까지 민물고기가 떠밀려 왔다”고 했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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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교수를 지낸 허 위원장은 원래 무용을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민족무용 전공자다. 2004년 우리나라의 첫 국제 무용 콩쿠르가 만들어질 때 그가 집행위원장을 맡게 된 데는 발레나 한국무용 실기 전공이 아니라는 배경이 역설적으로 덕이 됐다. "학맥·인맥에 휘둘리지 않을 거라 본 거죠. 편 가르기나 내 사람 밀어주기 없이 공정하게 운영할 수 있을 거라고."

시기 질투 만만치 않은 무용계에서, 이론 전공 교수가 국제 콩쿠르를 15년째 이끌어온 것 자체가 어쩌면 기적에 가깝다. 그는 "콩쿠르를 맡은 뒤론 실기 전공 교수들과 밥 먹기도 조심스러웠다. 스스로 더 절제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저한테 서운한 분들 엄청 많다"며 또 웃었다. "힘들 때면 '선생은 거름이 돼야지 본인이 빛나면 못쓴다'고 했던 이화여대 무용과 은사 고(故) 박외선 교수의 말을 되새기며 견뎠어요."

처음부터 그는 콩쿠르를 단순한 경연이 아닌 교육장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결선에 못 오른 참가자들도 세계 최고 무용수 출신인 심사위원들에게 '원 포인트 레슨'을 받을 수 있도록 했어요. 수상자들은 런던, 모스크바, 파리 등의 세계 유수 무용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공부하도록 보냈죠. 미국 캘리포니아 예술학교도 4년 장학생을 매년 최대 3명 선발할 계획입니다." 젊은 무용수들에게는 꿈같은 기회다.

콩쿠르 수준이나 운영은 궤도에 올랐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도 많다. "안정적으로 공연장을 빌려주는 곳이 없어 여전히 매년 다른 장소를 옮겨다녀요. 최고 심사위원을 섭외해 콩쿠르 수준을 지켜내려면 예산 안정성이 중요한데, 매년 지원이 줄지 않을까 가슴 졸이는 것도 쉽지 않고요."

콩쿠르에는 올해도 12개 나라의 샛별 같은 무용수 536명이 참여하고 있다. 결선과 시상식을 거쳐 27·28일엔 콩쿠르 출신 스타 무용수들 중심 공연 '월드 갈라'도 연다. 허 위원장은 "병아리 무용수들이 어엿한 백조가 돼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라며 웃었다. 러시아 마린스키와 볼쇼이, 미국 워싱턴 발레단, 한국 국립발레단과 국립무용단 등에서 활동 중인 스타들이 자신 있는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그는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매년 새로운 젊은 무용수들이 주는 새로운 감동의 힘으로 버텨온 것 같다"고 했다. "한예종 퇴임할 때 '일생연소(燃燒), 일생감동, 일생불오(不悟)'라는 말을 했어요. 제 좌우명 같은 건데, '평생 불태우고 평생 감동해도 평생 깨닫지 못한다'는 뜻이에요. 평생 무용을 연구해도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불타오르듯 뜨거운 감동을 주는 콩쿠르는 매년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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