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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나의 삶과 노동 갈아넣은 가게엔, 건물주·가맹본사의 빨대가 꽂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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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전문점·김밥집·빵집·편의점 영세 자영업자 4인

인건비 부담에 쉬지도 못해…가맹본사 비싼 식재료 강요

임차료가 매출 40% 넘기도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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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작년이 다르고, 올해 또 달라요. 매출은 매년 줄지만 임차료는 매년 오르고, 재료비와 프랜차이즈 가맹비는 손댈 수도 없어요. 상인들이 그나마 아낄 수 있는 비용은 인건비뿐인데 최저임금이 이렇게 오르니 민감할 수밖에요.” 16일 경향신문이 만난 영세 자영업자들은 내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8350원으로 오른 것을 우려하면서도 불공정한 환경부터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인근 상가와 서로 물고물리는 경쟁을 벌이면서 벼랑으로 내몰린다고 했다. 한 상인은 월 매출의 40%를 임차료로 낸다. 최저임금 상승 부분은 자신이나 가족이 노동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부담했다. 커피전문점, 김밥집, 프랜차이즈 빵집, 편의점을 운영하는 4인의 목소리를 들었다.

■ “건물주를 위해 일했다”

이모씨(45)는 서울 구로구에서 66.1㎡(20평)짜리 커피전문점을 운영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1년간 제과업체에서 무보수로 일하면서 쿠키·와플 조리법을 배우고, 커피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 개업 후 새벽 2시까지 쿠키·와플 반죽을 빚었다. 좋은 커피를 구해 불량 생두를 손으로 골라내는 ‘핸드픽’ 작업을 벌였다. 아파트 주민과 인근 원룸촌 20대가 주 고객인데 입소문이 나면서 3년을 버텼다. 자영업자의 ‘3년 생존율’이 37%인 사실을 고려하면 오래 버틴 셈이다. 최근 인근에 커피숍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매출이 월 400만원 수준으로 줄었다.

이씨는 “임차료, 재료비, 인건비가 3대 비용인데 이 중 가장 큰 부담은 임차료”라며 “임차료는 ‘노터치’ ‘신성불가침의 영역’ ”이라고 했다. 건물주는 전 세입자가 낸 금액의 두 배를 요구했다. 지금 월 임차료는 170만원으로 한 달 매출액의 42%를 차지한다.

재료비도 만만찮다. “재료비 아낀다고 ‘퓨어버터’를 ‘마가린’으로 바꿔서 구워봤어요. ‘이 집 와플 맛 변했다’는 소리가 나오겠더라고요. 계란 파동 때는 와플 위에 올리는 아이스크림 값까지 뛰었죠. 그만큼 가격을 올리면 손님들이 찾지 않아요. 재료비 부담을 제가 안고 갈 수밖에 없어요.” 결국 2년 전 아르바이트 직원을 해고했다. 하루 종일 일한다. 건물주와의 계약이 끝나는 내년에는 가게 문을 닫을 생각이다. “내 노동력을 갈아넣으며 일한 건 모두 건물주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 “경기 안 좋은데 경쟁업체까지”

서울 관악구에서 24시간 김밥집을 하는 황모씨(59)는 16일 오후 가게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안 쉬면 너무 힘들어요. 어쩔 수 없이 오후에 손님 없을 때 좀 쉬는 거예요.” 전날 3시간을 자며 하루 종일 가게를 지켰다고 했다. 2012년 황씨는 밥을 거르고 다니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김밥을 팔면 장사가 되겠다 싶어 1억원을 들여 가게를 열었다. 아르바이트 직원도 4명을 두고 장사했다. 황씨가 가게를 연 이후 김밥집만 5개가 생겼다. 황씨는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얼마 못 버티고 망해서 나가면 또 다른 김밥집이 들어온다. 그런 일이 반복된다”고 했다. 경기도 좋지 않았다. 대학생 손님들이 선택하는 메뉴도 변했다. 비싼 ‘특제김밥’보다는 ‘참치김밥’, ‘참치김밥’보다는 ‘일반김밥’을 주문한다.

최저임금은 매년 상승했다. 직원을 한 명 두 명 줄이다 지난해 말부터 혼자 일한다. “식당은 옛날부터 최저임금보다 더 많이 시급을 쳐줬어요. 최저임금 6000원 하던 시절에는 8000원을 줬고, 이제는 시급 1만원은 준다고 해야 사람들이 일하러 와요. 지금은 가끔 제가 힘들 때만 시급 1만원 주고 ‘알바’ 한번 불러요.” 황씨는 “올해 초 아파서 하루 반나절 쉰 것 외에는 한번도 쉬지 못했다”고 말했다.

■ “더 비싼 본사 재료만 사라니”

서울 종로에서 프랜차이즈 빵집을 하는 박모씨(49)는 가맹계약이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박씨는 “시장에 가면 더 좋은 상품, 식재료를 싸게 구입할 수 있지만 본사 제품만 구입해야 한다는 계약 조항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달걀 가격이 급상승한 지난해 초에도 박씨는 인근 대형마트에서 파는 1판 7000~8000원짜리 달걀 대신, 본사에서 제공하는 1만원짜리 달걀을 사야 했다. 본사에서 제공하는 재료 구입비가 전체 매출액의 30~40%를 차지한다. 매일 들어가는 물품도 본사로부터 받는다. 박씨는 매장에 항상 진열해야 하는 사탕, 초콜릿, 아이스바, 비닐, 초, 쇼핑백 등의 구매비로 매출액의 20%가량을 쓴다. 일부는 마트에서 싸게 살 수 있는 상품이다.

박씨는 “가맹점주들이 계속 본사를 상대로 투쟁하고 대화를 요구하면서 이제야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오이나 양파 같은 채소류는 점주가 전통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가맹계약이 변경됐다”며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 여전히 바꿔나가야 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상인들이 최저임금에 반발하는 것은, 최저임금 상승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상인들이 좀 더 장사할 수 있게끔 근본 대책을 세우라는 소리”라고 했다.

■ “상생협약, 실효성 없다”

심모씨(37)는 경기도에서 편의점을 운영한다. 그는 정부가 주도하는 본사와의 ‘상생협약’이 큰 효과가 없다고 했다.

“편의점 옆에 편의점이 생기는 일이 잦다보니 공정거래위원회가 출점을 제한하는 상생협약을 맺도록 했지만 실효성이 없어요. 가맹계약서에 ‘다른 점포는 출점하지 않겠다’고 본사가 출점 제한 규정을 만들었지만 대신 ‘타 브랜드가 근처에 입점할 우려가 있을 때는 방어 차원에서 점포를 개설할 수 있다’는 조항도 넣어놨거든요.”

심씨의 지역에도 인근에 같은 브랜드 편의점, 다른 브랜드 편의점이 여럿 생겼다. “작년 1월에 문을 열었어요. 한 달 반 지나 약 70m 거리에 또 다른 편의점이 들어왔어요. 월 순이익이 140만~150만원에서 60만~100만원으로 감소했죠. 서로 다 죽어나가는 상황이죠.” 경쟁 편의점은 늘고 매출은 줄지만 “본사는 절대 손해 보지 않는다”고 했다. “본사에서 먼저 수익을 가져가면, 남는 돈으로 인건비와 임차료를 내야 해요.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죠. 위약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그만두고 싶어도 그럴 수 없죠. 일단은 돈이 많이 드는 야간 알바를 없애고 가급적 저희 부부가 일을 늘리려고 해요.”

<이재덕·허진무·김찬호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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