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9 (일)

[김세형 칼럼] 삼성 20兆 풀라는 홍영표 뭘 모르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삼성(전자)이 지난해 60조원의 순익을 냈는데 여기서 20조원만 풀면 200만명에게 1000만원씩을 더 줄 수 있다는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발언이 히트했다. 누구에게 돈을 준다는 대상은 없으나 아마 하청업체나 서민층에 돈이 흘러가기를 바란 심정 같다. 이 발언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에서 이재용 부회장에게 투자, 일자리를 부탁한 데 이어 화해 무드로 가는 조건이 아닌지 좋게 보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 기업인들은 "큰일 날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걱정이 대단하다. 워낙 말이 많으므로 차제에 홍영표의 발언을 검증하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기업을 연구해 노벨경제학상을 탄 로널드 코스는 기업이란 존재를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라고 했다.

기업의 역할은 사업으로 이익을 내면 정부에 세금을 내고, 근로자에게 급여를 주고, 주주에 배당을 준다. 오늘날은 이 세 가지 역할 가운데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해 세계적 임금을 주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친다.

홍영표는 20년 전과 비교하면 가계소득은 줄고 기업은 부자가 됐는데 삼성이 하청업체를 쥐어짜서 돈을 그렇게 벌었다는 식으로 말했다. 정말 그런가. 삼성 하청업체 이익률이 8.5%로 다른 곳의 배나 높다는 사실을 차치하고라도, 20년 전 잘못된 대우그룹 등은 쥐어짜지 못해 망했나. 삼성그룹 내에서도 중공업을 비롯해 잘된 계열사가 별로 없고 유독 삼성전자만 세계 초일류로 발돋움했다. 슘페터가 깔끔하게 정리했듯이 독점적 이익은 창조적 혁신의 대가다. 애플, 아마존이 그렇듯이 요즘은 세계 1등만 큰돈을 번다. 삼성전자는 수년간 핸드폰에서 세계 1등을 하다가 요새는 반도체가 1등이어서 화수분이 된 것이다.

그러나 삼성전자도 모바일은 중국 기업에 쫓겨 위태롭고, 중국이 100조원을 투입해 반도체를 육성하고 있어 언제 따라잡힐지 불안하다. 미국의 애플이 보유한 현금은 300조원이 넘고 알파벳(구글)도 200조원가량 들고 있지만 20조원만 풀라는 정치인은 없다. 이들은 모두 삼성의 경쟁자들이고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에서 사활을 걸고 싸우고 있다. 아무리 공룡이라도 차세대에서 승리를 못하면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 우리는 에디슨이 세운 그 유명한 GE가 111년 만에 다우지수 종목에서 사라지는 장면을 올해 목격했다.

이 모든 장애를 넘어 홍영표의 말대로 진짜 삼성전자가 현실적으로 정말 돈을 풀 방법은 있나. 없다. 우선 번 돈을 현금이 아닌 공장, 원자재, 하청업체 매출 등의 형태로 갖고 있다. 그래도 돈을 내라면 공장 시설을 팔아야 하니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게 된다. 삼성이 20조원을 내려면 회사 주인인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55%가량이 외국인 주주다. 그들의 허락 없이는 배임죄가 성립한다.

홍영표는 또 자사주 20조원어치를 매입해 소각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한번 '애플 자사주 매입'을 검색해 보시라. 그러면 올 5월 1000억달러(100조원)를 매입기로 했다는 기사가 뜬다. 회사 주인인 주주가 보상 방법으로, 그 방법으로 주가를 올려 달라고 했기 때문에 그랬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주총에서 회사의 주인인 외국 주요 주주들이 그러한 방법을 원해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경영학자 크루거와 페럴은 "주주 가치 제고를 무시하고 정치인 등이 기업의 사회적 역할(CSR)을 강요하면 기업에 해(害)롭다"는 논문을 냈다.

매일경제

이상의 검증을 통해 삼성전자가 20조원을 내라는 것은 자본주의의 설계를 부정하는 로빈 후드식 사고임을 알았을 것이다. 로빈 후드는 1000년 전에 활동했다는 가상의 인물이며 국가 개념은 그 후 생겨 세금으로 해결한다. 레이건 대통령, 대처 총리 취임 이전에 법인세는 최고 93%까지 치솟았다가 시행착오를 거쳐 오늘날의 세율이 정착했다. 그 변천사는 민주당처럼 진보 성향인 폴 크루그먼이 '미래를 말한다'는 책에서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썼으니 한번 읽어 보시라.

재계는 문 대통령의 인도 발언을 재벌·대기업과의 화해 신호로 읽었다. 문 대통령은 워싱턴과 인도에서 "이 순간 대한민국에 투자하는 게 최적기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고 외쳤었다. 홍영표의 20조원 발언은 대통령의 의향을 헛수고로 만들 위험이 매우 높다.

[김세형 논설고문]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