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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시론] '한달살이'를 보는 우려와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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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달살이'가 유행이다. 한 곳에 정처를 정해 놓고 살림살이를 통해 지역을 보고, 배우고, 느끼겠다는 의지들이 모여 새로운 풍조를 만들어냈다. 그 시작은 20, 30 젊은 층이 주도했고, 대세는 제주도였다. 감히 3박 4일 정도 단기여행으로 '대한민국의 특별부록 제주'를 만난다는 것은 아쉽고 어리석기까지 한 일이니, 아예 '당분간' 눌러 앉아 살면서 여행도 하고 일종의 체험학습처럼 '제주살이'를 경험해 보겠다는 것이다.
제주도 읍면지역인 성산읍 신풍리에서 10년 가까이 살면서 지켜보니, 한달살이를 결행하는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특화된 자연과 습속을 벗하고 살면서 기량을 닦아 가겠다는 젊은 문화예술인부터, 내 아이들에게 맘껏 뛰놀 수 있는 자연환경과 교육 기회를 베풀어주고 싶다는 젊은 학부모들에게 이르기까지 제주는 단연코 매력적인 지역이다.

제주에서는 집을 얻어 살려면 1년 방세를 한꺼번에 지불해야 한다. 이른바 '연세'다. 10년 전만 해도 200만~300만 원 선이면 읍면지역에서 어렵지 않게 살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이것이 제주에서 살아보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구하려는 사람은 많고 살집은 적은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가파르게 상승세를 타더니 3년 전쯤부터는 '제주는 다 비싸!'라는 말과 함께 500만~600만 원을 호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제주에서 살아보기는 연 단위보다 한달살이 쪽으로 선호도가 기울었다. 그 사이 사드 문제를 둘러싼 중국관광객 급감, 이에 따른 제주관광산업의 정체, 제2공항 등 개발호재에 주목한 외부 투기자본의 유입으로 인한 지가 상승 등 여러 가지 변화가 뒤따랐다.

'한달살이'는 가족여행의 새로운 형태, 지역체험 방식의 진화 등 여러 가지 순기능이 있을 수 있으나, 한 가지 대상지역에 대한 애증이 구체적 체험을 통해 왜곡된 이미지와 경험치로 고착화될 수 있다는 점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한달살이에서 한 달은 절기로 따지면 두 절기 정도를 경험하는 일이고, 날수로 따지면 고작 30일이다. 여행자의 시각으로는 29박 30일간의 장기 여정이겠으나 살림살이의 기준으로는 정은커녕 인사치레도 제대로 못하고 떠나는 뜨내기 생활에 다름없다.
그러다보니 거주자의 입장에서는 잠깐 머물다 떠날 외지인인 한달살이 객들을 보는 시각이 다정할 수만은 없다. 게다가 사전지식이나 예의범절을 가다듬음 없이 불쑥 거주민들이 기존 질서에 비집고 들어온 경우라면 불을 보듯 뻔하게 갈등과 실망이 커진다. 그러다보면 다소 비약이겠으나 짝사랑의 관계가 비련을 넘어 증오의 관계까지 갈 수도 있으리라 본다.

이번에 서울시정 책임자인 박원순 시장이 한달살이를 시도한다는 뉴스를 보면서 착잡함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선출직 광역단체장이 공약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진정성 있게 지역민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 어깨를 겯는다는 것에는 백 번 박수를 친다.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에서 한달살이를 하며, 주민여론을 직접 듣겠다는 박 시장의 특별한 한달살이는 앞으로 많은 단체장들에게 또 다른 소통과 실천의 방식으로 본보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소통이라 함은 근본적으로 익히고 묵히는 숙성의 과정을 가져야 더욱 빛나고 실효성을 획득하는 법이다. 그런 뜻에서 이번 박 시장의 한달살이가 늘상 정치인들이 잘하는 이벤트로 그치지 않고 시민을 위한 민생정치의 구체적 실천을 쌓아나가는 진중한 걸음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정희성 시인ㆍ제주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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