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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영국 SUV ‘신예’ 재규어·‘전통’ 랜드로버 비교해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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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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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칼처럼 예리한 핸들링은 아니다. 자갈과 진흙이 가득한 최악의 오프로드를 단박에 헤쳐나올 것 같은 강인함도 찾기 어렵다. 하지만 최고급 가죽으로 시트와 도어 패널을 마무리하는 ‘귀족주의’ 고집이 살아있다. 실용성을 우선하지만 디자인만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멋스러움도 지녔다. 영국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이런 이미지에 가깝다.

독일산 SUV들이 ‘디젤 게이트’로 움찔대는 동안 영국산 SUV들이 한국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고 있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는 지난해 매출이 국내 판매 이후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전통의 오프로더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 SUV 분야에 갓 뛰어든 재규어 E-페이스로 영국산 SUV의 숨은 매력을 찾아봤다.

■ 재규어 E-페이스 P250 퍼스트 에디션

엔진 진동·풍절음 거의 없어…운전대 무겁고 왼발 자리 불편

재규어 E-페이스로 경기 파주와 연천, 강원 철원 일대 450㎞를 달렸다. E-페이스의 ‘심장’은 가솔린 엔진이다. 터보차저를 사용하는 2ℓ 직렬 4기통 엔진으로 최고출력 249마력, 최대토크는 37.2㎏·m가 나온다. 토크가 디젤엔진에 뒤지지 않고, 6000rpm 안팎으로 엔진을 회전시킬 수 있어 스포티한 운전이 가능하다. 마력이 높아 고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속도가 붙는 장점도 있다. 무엇보다 디젤엔진처럼 ‘호흡’이 거칠지 않고, 엔진 진동도 거의 없어 시트 위 엉덩이나 운전대를 잡은 손이 평화롭다.

E-페이스는 풍절음을 잘 잡았다. 빠른 속도로 달려도 앞유리창이나 사이드미러를 휘감아 도는 바람 소리가 절제된 채 승객에게 전해진다. 공조장치 조작이 손쉬운 것도 E-페이스의 특징이다. 다이얼이나 버튼 대신 전자식 액정 모니터의 터치스크린으로 공조장치를 조작하는 차들이 늘고 있지만 직관적으로 조작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지름 4㎝가량 되는 다이얼을 좌우로 돌려 실내 온도와 풍량을 조절한다. 어린아이도 쉽게 조작할 수 있을 정도로 쉽다. 더 큰 장점은 조작감이다. 고급스럽고 부드럽다.

가죽으로 잘 마무리된 시트는 가정집 거실에 놓인 소파처럼 푸근히 몸을 감싸준다. 카오디오 음질도 매력 있다. 시승한 P250 퍼스트 에디션은 메리디언을 선택했다. 뛰어난 음질과 진보적인 디자인으로 가정용 오디오 마니아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브랜드다. FM에서 들려오는 클래식 음악을 들어보라. 탄탄한 저음에 고음은 찰랑거리고 중음은 달콤하다. 비가 많고 습도가 높은 영국에서 개발된 차여서일까. 시승한 날 폭우가 쏟아졌음에도 햇살 비치는 맑은 날처럼 실내가 쾌적했다.

운전대 무게감과 조타·조향감이 자연스럽지 않다. 저속에서는 운전대가 너무 가볍게 도는 반면 시속 80㎞ 안팎의 중고속에서는 뻣뻣하고 무겁다. 고속으로 달릴 때는 마치 운전대가 못 박힌 듯 중앙에 딱 버티고 있다. 고속 주행 중에 운전대가 너무 쉽게 돌아가는 것은 문제지만 운전 내내 너무 묵직하다는 생각이 들거나 조타가 부자연스러워서는 안된다. 전기모터식 스티어링 보조장치(EPS)는 좀 더 정밀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E-페이스에는 9단 자동변속기가 장착된다. 자잘하게 쪼갠 기어단수만큼 연비가 높아져 소비자들의 지갑이 쉬이 얇아지지 않는 장점이 있다. 변속 속도는 특별히 빠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다. 일반운전자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변속 질감도 고급스럽고 운전자가 느끼지 못할 만큼 차분하다. 저단에서 고단으로, 또는 반대로 작동될 때 쇼크가 거의 없다. 하지만 단수가 너무 많다 보니 패들 시프트 조작이 불편하다. 9단으로 시속 100㎞를 달리다 빠른 가속을 위해 엔진 회전수를 3000~4000rpm까지 올리려면 시프트 패들을 8단→7단→6단→5단→4단→3단 등 무려 5~6차례나 눌러야 한다. 이럴 땐 차라리 가속페달로 킥다운을 하는 게 낫다.

차선을 감지하고, 네 바퀴를 주행 중 차선 안에 머물게 하는 차선유지장치 등 반자율주행 기능은 대부분의 차량처럼 완벽하지 않았다.

운전석에 앉으면 왼발을 둘 공간이 마땅치 않은 점도 걸렸다. 운전 내내 왼발이 제자리를 잡지 못해 안절부절못했다. 왼발이 편하지 않으면 운전자가 쉬이 피로를 느끼고 운전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왼발을 얹을 풋 레스트가 필요하다. 장대비가 쏟아지긴 했지만 윈드실드와 파노라믹 선루프를 때리는 빗소리는 귀에 조금 거슬렸다.

■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 HSE

산길도 실개천도 거침없이…엔진 잔진동·우직한 제동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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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로버는 4륜구동 SUV의 상징이다. 디스커버리 배지를 달고 있으면 다른 SUV는 접근이 쉽지 않다. 그만큼 존재감이 있다. 무엇보다 디자인이 세련되고 멋스럽다. SUV의 원조라는 지프와는 다르다. 투박하고 거친, 우락부락한 이미지는 어디에도 없다. 영국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도련님처럼 미끈하다. 오프로드를 달리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려한 자태를 지닌 것은 분명 장점이다.

세단 뺨치는 디자인에 오프로드를 헤쳐나가는 ‘실용’을 숨겨둔 점은 더 놀랍다.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오프로드 주파 역량은 도심형 SUV와 비교할 수 없는 차원이다. 212㎜에 이르는 지상고에 25도와 31도에 이르는 접근각과 이탈각은 경기 가평군 유명산의 험로를 어렵지 않게 돌파해낸다. 깊이 파인 웅덩이를 지날 때는 앞바퀴가 흙속에 묻힐 듯 ‘쑥’ 내려가고, 뒷바퀴는 하늘을 향해 높이 매달려도 거침없이 헤쳐나간다. 공기 흡입구가 엔진룸 상단에 있어 60㎝ 깊이의 실개천이나 웅덩이를 건널 수 있다.

험로뿐만 아니다. 흔히 디스커버리를 오프로드 전용이라고 생각하는데, 착각이다. 시내와 고속도로 주행능력도 칭찬받을 만하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덩치가 크지 않고 저중속에서의 가속력이 좋아 시내에서도 기민하게 차머리를 돌려 옆 차선으로 끼어들 수 있었다. 고속주행 능력은 오프로드 주파만큼이나 맛깔스럽다. 180마력이 나오는 2ℓ 디젤 엔진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서킷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아주 빠른 속도까지 거침없이 몰아붙인다. 마력수만 높고 실제 주행에서는 속도가 붙지 않는 ‘무늬만 고출력’ 엔진과는 다르다.

고속에서의 가속성능 못지않게 인상적인 것은 고속주행 안정성이다. 지상고가 212㎜로 높지만 웬만한 고급세단 뺨칠 만큼 안정감 있게 노면에 달라붙어 달린다. 동급 최고 수준이란 감탄사가 입에서 절로 나온다.

디스커버리 스포츠 HSE도 카오디오로 메리디안을 선택했다. 볼륨을 조금만 높여도 윤기 있는 음이 실내에 가득 찬다. 제법 빠른 속도로 달려도 오디오 사운드가 흐릿해지지 않는데, 풍절음이나 노면 소음을 잘 차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풍절음은 아주 빠른 속도에 이르러서야 귀에 들어올 정도로 낮다. 소비자는 현명하다. 이 차가 국내에 수입된 랜드로버 모델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리는 이유가 있다.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디젤엔진은 장점이 적잖다. 충분한 출력에 소음도 크지 않다. 정지 상태에서 엔진음은 실내로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주행 중 회전수를 높여도 웬만해선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잔진동이 올라와 운전대로 전해지는 것은 단점이다. 대부분의 차들이 기어를 주행(D) 위치에 놓은 채 브레이크를 밟고 있으면 운전대가 조금은 떨린다. 하지만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동력이 차단된 중립(N) 위치에서도 운전대가 손바닥을 간지럽힌다.

이 차는 전통적인 막대 스타일의 기어 레버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시동을 걸면 센터 콘솔 위치에서 둥근 다이얼 형태의 기어 변환기가 솟아오른다. 기발한 발상, 심플한 디자인에 찬사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실용성 면에서는 조금 불편하다. 앞뒤로 대충 움직여도 주행과 후진(R), 중립으로 전환되는 레버식과 달리 다이얼식은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듯 조금은 세심한 조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디스커버리의 제동성능은 나무랄 데 없지만, 답력(밟는 힘)을 주었을 때의 반응을 조금만 더 고급스럽게 세팅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조금 세게 밟으면 몸이 앞으로 쏠릴 정도로, 우직한 제동이 이뤄진다. 재규어 E-페이스처럼 왼발 둘 곳이 마땅치 않은 점도 아쉽다.

재규어와 랜드로버는 영국 차지만 ‘유전자(DNA)’가 다르다. 재규어는 레이싱을 통해 성장한 고급 승용차 브랜드, 랜드로버는 오프로드의 명가로 알려져 있다. 생산 공장도 다르다. E-페이스는 오스트리아 그라츠 공장, 디스커버리는 영국 헤일우드 공장에서 생산된다. 하지만 인도 자동차 재벌 타타자동차에 속한 ‘한 가족’이어선지 겹치는 부품이 많다. 예컨대 센터페시아 중앙부의 공조장치는 E-페이스와 디스커버리 스포츠가 같은 방식, 같은 부품을 사용한다.

동일한 브랜드가 아님에도 엔진이나 변속기, 플랫폼을 공유한 차량이 적지 않다. 포르쉐 카이엔과 아우디 Q7이 그렇다.

하지만 외관이나 인테리어 디자인은 다르다.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고 개성도 살리기 위해서다. E-페이스 오너가 디자인과 기능이 동일한 ‘판박이’ 공조장치를 디스커버리 스포츠에서 발견한다면 기분이 썩 상큼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김준 선임기자 j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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