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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유해송환 회담, 美 바람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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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판문점 회담장 안나와… 美측 5명 4시간 기다리다 철수

유엔사 "왜 안왔나" 전화에 北 "15일 장성급 회담하자" 제안

북한이 12일 판문점에서 열릴 예정이던 미국 측과의 미군 유해 송환 실무회담에 불참했다. 이로 인해 미·북 정상회담 한 달을 맞아 당시 합의 사항이었던 미군 유해 송환이 또다시 늦춰지게 됐다. 실무회담에 나오지 않은 북한은 대신 유엔군사령부 측에 뒤늦게 15일 장성급 회담 개최를 제의했다.

미측을 대표하는 유엔군 사령부 관계자 5명은 이날 오전 10시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T3)에 도착했다. 유엔사 쪽에는 북한으로부터 미군 유해를 넘겨받는 데 쓰일 나무 상자 100여 개가 지난달 24일 이후 계속 대기 중이었다. 하지만 북측은 이날 약속된 시간에 회담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2시까지 아무런 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다. 유엔사 관계자들은 결국 4시간 만에 철수했다.

미군 유해 송환은 6·12 미·북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공동성명을 통해 약속한 사안이다. 지난 6~7일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12일쯤 판문점에서 유해 송환 실무 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했다. 미국 측도 이날 북한이 실무회담에 나올 것으로 믿고 갔지만, 북한은 사전 통보도 없이 바람을 맞힌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미·북 정상이 만난 지 딱 한 달째 되는 날까지 비핵화 논의는 물론이고 이미 약속한 유해 송환까지 전혀 진전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북한은 기다리던 유엔사 측이 전화를 걸자 그제야 "유해 송환 문제 협의의 격을 높이자"며 장성급 회담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사 측은 북한의 제안 내용을 미 국방부에 전달했다. 이에 따라 15일 북한군과 미군 장성이 회담 대표로 만나 미군 유해 송환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북한군과 유엔사 간 장성급 회담이 성사될 경우, 2009년 3월 이후 9년 4개월 만이다.

미군 유해 송환을 위한 실무 회담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 6~7일 3차 방북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내세웠던 유일한 가시적 성과였다. 당시 북측도 6·12 미·북 정상회담 합의 사안 중 가장 이행하기 쉬운 미군 유해 송환과 관련, 폼페이오 장관에게 "실무 협상 개시 문제를 논의하자"고 했다.

그랬던 북측이 이번 실무 회담을 늦춘 이유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일정 조율이 확실히 이뤄지지 않았던 것 아니냐는 해석과 함께 북한의 전형적인 뻗대기 전술이란 관측이 나왔다. 외교 소식통은 "폼페이오 장관은 '7월 12일'을 회담일로 제안했고, 북측이 확답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측이 이를 공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7일 실무 협의 계획을 밝히며 "7월 12일, 하루나 이틀 옮겨질 수도 있지만…"이라고 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발표 이후 북한은 회담 날짜를 공식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하지만 미국이 회담 날짜도 조율하지 않고 무작정 갔을 가능성은 떨어진다는 얘기도 나온다. 북한이 대미 협상에서 주도권을 갖기 위해 고도의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해석이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 요구를 낮추기 위해 유해 송환 협상을 활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실제로 폼페이오 방북 직후 "강도적"이라며 미국을 강하게 비난했었다. 결국 미·북 간 비핵화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것이란 비관론도 나온다. 비교적 단순한 유해 송환 협상도 이처럼 쉽지 않은데 북한이 비핵화에 쉽게 응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미군 유해 송환 규모와 비용 문제를 놓고 양측의 입장 차가 아직 크다는 관측도 있다. 미군 유해는 1990년부터 2005년까지 총 334구가 송환됐다. 미국은 보통 발굴 유해 1구당 약 3만5000달러(약 3900만원)를 북측에 지급했다. 이에 미군 유해 송환에 드는 제반 비용, 1차로 송환될 유해 규모를 놓고 양측이 아직도 줄다리기 중이라는 것이 일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측은 당장 200구 송환을 요구하는 반면 북측은 우선 30~50구 안팎 송환을 제시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유엔사에 장성급 회담을 제시한 것도 유해 송환 규모·비용과 관련해 강하게 북측 의사를 피력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것이다.

다만 북한이 미·북 정상회담 합의 이행 조치를 계속 미루면서 미국 내에서 불거졌던 미·북 정상회담 회의론은 한동안 더 빗발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평양에서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폼페이오 장관의 입지도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또 그가 "곧 열릴 것"이라고 밝혔던 북한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기 실무 협의도 상당 기간 지연될 수 있다.

[안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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