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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사설] 국민연금, ‘코드’ 도입보다 독립성 확보가 더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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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드십 코드는 양날의 칼 / 제도 도입 서두르기에 앞서 / 오남용 방지책 정교히 다듬어야

보건복지부 고위 관계자가 어제 “26일이나 27일 국민연금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안을 심의, 의결하기로 했다”고 했다. ‘7월 시행’을 기정사실화해 논란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가가 주인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스튜어드)처럼 국민이나 고객이 맡긴 돈을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해 관리·운용한다는 행동지침이다. 영국에서 2010년 맨 처음 도입됐다. 도입안이 의결되면 국민연금도 활동적인 집사 역할을 하게 된다.

635조원 규모의 국민연금을 운용하는 기금운용본부는 복지부와 국민연금관리공단의 하부 조직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바람직한지를 두고 찬반 양론이 팽팽히 맞서는 데는 이런 구조가 작용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어제 주최한 ‘기업과 혁신생태계’ 특별대담에서도 양 시각이 충돌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국민연금이 국민경제적 입장에서 주요 기업의 경영에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국민연금이 주요 기업 지분을 과다 보유한 비정상 구조를 지적하며 “정부 정책을 따라 의사결정을 하면 연금사회주의가 된다”는 반론을 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양날의 칼이다. 제도가 선용되면 기업 가치와 국민 이익을 키우는 긍정 효과가 창출된다. 반대로 정부나 정치에 휘둘릴 경우 부작용과 역기능은 엄청나게 클 수 있다. 최근 기금운용본부장 후보 공모에 청와대가 개입한 사실도 드러났다. 자칫 국민연금이 재벌개혁의 도구로 오남용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 시장경제가 흔들리고 국민 노후가 위협받을 수 있다.

위험과 우려의 요소를 최소화하는 정밀 대응이 필요하다. 그 무엇보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독립성과 전문성 확보가 급선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경청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보유분 45%의 의결권 행사가 외부 위탁운용사에 위임된다는 발표가 그제 나왔다. 일본처럼 주식 운용뿐 아니라 의결권 행사도 민간에 맡겨야 한다는 지적을 일부 수용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충분할지 의문이다. 국민연금의 독립성 확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 기금운용본부의 공사화도 검토할 수 있고 금융통화위원회 모델을 차용하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다. 복지부는 코드 도입안 처리에 앞서 17일 공청회를 연다고 한다. 요식절차에 그쳐선 안 된다. 생산적 논의의 장으로 삼을 일이다. 거듭 명심할 것은 코드 도입보다 독립성 확보가 더 급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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