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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박수찬의 軍]“누가 군대가겠나”…대체복무, 군 뒤흔들 폭탄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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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양심을 보호할 때가 됐다.” “누군 좋아서 군대 가는 줄 아느냐.”

지난 28일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하면서 여론이 양분되고 있다. 민주주의 의식이 발전한만큼 다양성 존중 차원에서 개인의 신념과 양심을 지켜줘야 한다는 주장과 시대가 바뀌어도 분단국가라는 특성은 변하지 않았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요원한 현실에서 시기상조라는 주장이 부딪혀왔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대체복무 도입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 하지만 이를 구현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대체복무제 시행을 앞두고 ‘군복무=시간낭비’라는 인식을 개선하지 않을 경우 징병제에 기반한 병역 시스템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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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격훈련에 참가한 육군 장병들이 사전에 설정된 진지로 신속하게 이동하고 있다. 육군 제공


◆대체복무가 병역의무에 포함될 수 있나

대체복무의 핵심은 종교적 신념이나 개인적 양심을 이유로 집총(총을 드는 행위)을 거부하는 사람에게 일정 심사를 거쳐 군복무를 대신하는 비전투적 성격의 업무를 맡기는 것이다. 군복무와 유사하거나 군을 지원하는 활동과 관련이 없는 사회복지 등의 대체복무가 주로 거론된다.

문제는 군과 관련이 없는 대체복무가 병역의무에 포함되느냐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판결에서 “비군사적 성격의 복무도 병역의무의 내용에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체복무제 논의가 본격화되면 정치적,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불가피하다. 특히 헌법재판소와 국민의 시각에 차이가 발견될 경우 논란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대체복무를 주장해온 시민단체의 주장이나 국회에 제출된 병역법 개정안 등을 종합하면, 지금까지 거론된 대체복무제는 집총을 하지 않는 사회복지나 공익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대체복무자를 선발하는 기구도 국방부나 병무청을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합숙보다는 출퇴근 형태의 복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군을 지원하거나 군복무와 유사한 성격은 안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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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육군훈련소에 입소한 입영대상자들이 전방을 향해 경례를 하고 있다. 육군제공


이는 대체복무를 병역의무의 일부에 포함하는 과정에서 반발을 부를 소지를 안고 있다. 헌법 39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방법으로 통용되는 것은 병역 이행이다. 바꿔 말하면 병역 이행이 어떤 형태로든 국방과 관련이 있어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연예인이나 스포츠선수들이 군악대나 경찰악대, 국군체육부대나 경찰 야구단 등에서 복무하고, 국민들이 이를 병역의무 이행으로 인정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대체복무를 지지하는 시민단체 등에서 제시하는 방안대로라면 “군이나 국방과 관련이 없는 대체복무가 병역의무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군복무 면제라 불리는 전시근로역(전시 전쟁지원업무 담당)도 일정 부분 국방의 의무와 관련이 있다. 대체복무를 시행중인 이탈리아는 전시에 민간인 보호나 적십자 지원 등의 업무를 대체복무자에게 맡긴다. 그리스와 러시아는 국방부 산하 위원회가 대체복무심사를 맡는다. 어떤 형태로든 국방과 관련이 있는 셈이다. 대만, 그리스 등에서는 사회복지나 행정사무 지원, 과학 연구 등에 대체복무자를 투입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사회복무요원이나 예술체육요원, 공익법무관, 승선근무요원, 산업기능요원 등 군과 관련이 있는 대체복무자들이 이미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직접 적용은 무리라는 반론도 나온다.

법적 문제보다 해결하기 더 힘들고 어려운 부분은 국민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현역 군복무는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총기와 폭발물을 취급하며 공포와 스트레스가 일상화된 채 사회와 격리된 채 생활한다. 병영에서 단체생활을 하므로 경력관리는 불가능하고 신체와 사생활의 자유도 제약을 받는다. 처음보는 사람들과 함께 고된 훈련을 받으면서 몸은 지치고 스트레스도 잘 해소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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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이 119구급대원과 함께 환자를 구급차에 태우는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병무청 제공


그러한 생활을 2~3년씩 했거나 곧 겪게 될 사람들, 자녀를 군에 보낸 부모의 시각에서 보면, 대체복무는 난이도가 높다고 해도 자신의 생명에 위협을 느끼지 않으므로 대체복무를 군복무와 동등한 병역의무로 인정할 가능성은 낮다. 대체복무제를 놓고 “군대 안가야 하는 이유는 누구나 있다. 왠만해선 현역 복무와 절대 같을 수 없다” “신념이 다르다고 입대 안하면 군대는 누가 가느냐”는 주장이 벌써부터 나오는 상황이다.

이같은 상황을 해소하지 않은 채 국방부와 국회가 제시할 대체복무제가 국방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으면 국민적 동의를 얻지 못해 헌법재판소 판결 취지를 대체복무제 법안에 담는 과정조차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총선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국민적 합의나 동의가 없는 법안을 밀어붙일 정치인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평시에는 사회복지분야에 종사하되 전시나 국가비상사태 시 민간인 대피, 시설 복구 지원 등 군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임무를 수행하도록 대체복무제를 규정해 국민들의 이해와 동의를 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역 병역의무 이행자와의 형평성과 국민감정을 고려해 군 내에서 대체복무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총을 쓰지 않는 비전투임무는 군에서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핵소 고지(2016)의 실존 인물로 유명한 데즈먼스 도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집총을 거부했다. 총기 없이 의무병으로 참전한 도스는 오키나와에서 치열한 전투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남아 100명의 부상자 중 75명을 치료해 미군 최고의 영예로 불리는 명예 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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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대체복무제 도입에 직면한 국방부는 관련 정책 수립을 서두르고 있다.


◆軍, 대체복무 시대 걸맞는 개혁 서둘러야

국방부는 이르면 올해 안으로 대략적인 수준의 대체복무안을 제시한다는 목표하에 정책 검토를 진행중이다. 국방부는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7년 말기 암환자 간호 등 사회복무 중에서 난이도가 가장 높은 분야에서 합숙근무 형태로 36개월 대체복무를 하는 방안을 발표했으나 2008년 국민적 합의 미비를 이유로 철회했다. 10여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노무현정부의 대체복무제를 그대로 도입하기는 어렵지만 국방부 입장에서는 하나의 참고 자료가 될 전망이다.

문제는 대체복무제의 강도를 어느 정도로 설정하느냐는 것이다. 국방부는 “군복무가 더 낫다 싶을 정도로 힘들게 대체복무를 설정한다”는 방침이지만, 사회와의 단절성이 현역 군복무보다 낮아 경력 관리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업무가 힘들어도 대체복무를 선택할 사람들의 숫자는 헌법재판소나 국방부 전망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연간 500~600명 정도가 병역을 거부하고 있지만 대체복무 강도가 현역 군복무보다 낮다고 판단되면 병력 수급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대체복무를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 이를 방지하려면 합숙근무, 복무기간 장기화 등을 통해 업무강도를 높여야 하지만, 군 조직과의 유사성 또한 높아지므로 대체복무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반발을 살 우려가 있다. 국방부의 고심이 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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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에서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이 고령의 환자를 부축하고 있다. 병무청 제공


대체복무제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군의 신뢰도를 높이는 개혁 작업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군 의료체계 문제나 성추행, 가혹행위 등은 현역 군복무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해치고 있다. ‘현역 군복무는 피하는 것이 좋다’는 인식의 확산을 막지 못한다면, 대체복무를 고되고 힘들게 설정해도 “군복무보다는 낫다”며 대체복무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말릴 수 없다. 군에 대한 불신은 대체복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군과의 연관성을 거부하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대체복무자 증가로 징병제가 뿌리부터 흔들릴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군의 신뢰 회복과 더불어 ‘인간의 얼굴을 한 군대’ 만들기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하는 이유다.

대체복무 도입은 6.25 전쟁 이후 병역제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반드시 총을 잡아야 했던 기존 방식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병역 자원은 감소하고 군복무기간도 줄어드는 상황에서 산업기능요원을 비롯한 대체복무에 더해 양심적 병역거부에 의한 대체복무가 겹쳤다. 병사가 다수인 냉전 시절 군 구조를 유지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실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현재 진행중인 군 구조 개편 작업을 가속화하고 간부 중심의 군대로 탈바꿈해야 대체복무 도입에 따른 징병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대대적인 국방개혁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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