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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전민희의 교육 살롱]대입개편과 ‘프로듀스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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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 2016년 방영돼 큰 인기를 끈 프로듀스 101에 참여한 연습생. 보이그룹을 탄생시킨 시즌 2에 이어 현재 한일합작으로 시즌3이 방영 중입니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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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사에 소속된 연습생 101명이 무대 위에서 각자 준비한 노래와 춤을 선보입니다. 연습생들은 카메라를 향해 웃으며 자기 매력을 한껏 뽐냅니다. 시청자들은 자기 마음을 사로잡는 연습생을 온라인 투표에서 찍어줍니다. 말하자면 인기투표입니다. 투표 때마다 연습생 순위가 매겨지고, 단계별로 일부가 탈락합니다. 최종 11인에 든 연습생은 아이돌 가수로 데뷔해 1년간 활동을 이어갑니다.

#대입개편 공론화 시나리오를 설계한 당사자 4명이 무대 위에 섭니다. 각자 자신이 중심이 돼 설계한 시나리오의 장점을 국민 앞에서 소개합니다. 최종적으로 시민 400여명이 자기의 마음이 끌리는 시나리오에 표를 던집니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 간에 토론 등을 거치기는 합니다. 아무튼 시민의 지지를 많이 받은 시나리오가 새로운 대입제도로 채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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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학년도 대학 입시제도 개편을 위한 권역별 순회 첫 행사인 충청권 토론회가 26일 오후 대전평생교육진흥원 식장산 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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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대전평생교육진흥원에서 열린 ‘대입제도 개편을 위한 국민대토론회’를 지켜보며 ‘프로듀스 101’이 떠올랐습니다. 2016년 처음 선보여 ‘아이오아이’ ‘워너원’ 등의 걸그룹·보이그룹을 탄생시키고, 현재 한일합작으로 시즌 3이 방영 중인 프로그램입니다.

국민 프로듀서의 선택을 받기 위해 무대 위에서 자신이 갈고닦은 춤과 노래 실력을 뽐내는 연습생과 자신이 지지하는 시나리오가 시민참여단 400명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무대 위에 선 발제자들의 모습이 비슷해 보였습니다. 두 가지가 전혀 다르면서도, 묘하게 비슷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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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대전평생교육진흥원에서 열린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을 위한 대국민토론회' 에는 70여명이 자리를 채워 저조한 참여율을 보였습니다. [뉴스1]


대입개편 공론화위원회(공론화위)가 지난달 “학생·학부모·교사·대학관계자 등 20~25명이 공론화 범위를 조합해 4~5가지 시나리오를 만든다”고 할 때까지는 현장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토론회에서 그들이 발제자로 나서고, 참가자들과 질의응답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니 ‘책임 전가를 위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더군요.

현재의 대입개편 논의는 교육부→국가교육회의→대입제도개편특위→공론화위→400명 시민참여단으로 이어지는 ‘4중 하도급’ 구조입니다. 쉽게 말해 결정에 대한 책임이 분산된 구조라고 볼 수 있죠.

프로듀스 101은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연습생이 최종 선택되는 프로그램입니다. 엔터테인먼트는 이성이 아니라 감성에 호소하는 분야입니다. 국민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연습생을 응원하는 게 본질이고 핵심입니다.

그러나 대입제도 개편은 차원이 다릅니다. 인기투표로 대입제도를 정해선 곤란합니다. 사지선다형에서 정답을 고르는 방법으로 대입제도를 개편해도 될지 의문입니다.

“1안과 4안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수능 절대평가·상대평가뿐 아니라 수시·정시 비율까지 복잡하게 얽혀있어 어떤 시나리오를 지지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토론회에 참가한 학부모 정모(45·대전 갈마동)씨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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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론회장엔 의자가 200개가 넘었습니다. 하지만 토론회에 참가한 청중은 70여 명에 그쳤습니다. 또 발제 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도 심도 있는 갑론을박은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해당 시나리오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앞으로 3번의 토론회와 TV 토론회 등이 남았지만, 제대로 의견 수렴이 이뤄질지 의문입니다.

4차례의 토론회 결과는 ‘인기투표’를 할 시민참여단에 전달됩니다. 어떻게 전달될까요. 토론회에서 나온 발언을 문자 그대로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고 합니다. 시민참여단이 이를 토대로 어떤 시나리오를 선택해야 하나 혼란스러울 게 불 보듯 훤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4지 선다형 문제를 풀어본 경험이 있습니다. 더러는 시험 문제가 묻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시험문제가 묻고자 하는 바는 이해하지만, ‘보기’ 문항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럴 때는 행운을 바라면 보기 중 하나를 ‘찍어’ 정답으로 적습니다. 프로듀스 101의 투표에선 그렇게 해도 별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대입제도 개편을 이렇게 해도 될까 걱정이 앞섭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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