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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황혼 육아에 기대야 하는 한국사회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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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면서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는 `황혼육아`가 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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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엄마 잡학사전-49] 통계청에 따르면 부부 2명 중 1명은 부모님께 육아 도움을 받는다.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면서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는 '황혼육아'가 더욱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의 황혼육아 비율이 2009년 33.9%에서 2012년 50.5%로 급증했다. 2015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전국의 맞벌이 가구는 510만가구 정도 되는데 이 중에 절반가량이 조부모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육아휴직 기간에는 독박육아가 힘들어 매일 친정으로 출근했고, 복직 후에는 친정엄마가 어린이집 등·하원을 도와 주셔서 일을 할 수 있었다. 두 아이를 둔 회사 선배가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시댁에 아이 둘을 맡기고 출근한다는 얘기를 했을 땐 결혼 전이라 별 감흥이 없었는데 복직 후에는 그게 내 일이 됐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마치면 자고 있는 첫째를 둘러업고 무작정 차에 태웠다. 10분이라도 늦어지면 차가 막혀 출근이 30분이나 늦어지니 조금도 지체할 수 없다. 주차장에 먼저 내려와 계신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난 후 나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다. 먼저 출근한 신랑을 대신해 나는 둘째 임신 중에도, 만삭 때도 아침마다 첫째를 둘러업고 친정으로 향했다.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는 황혼육아가 늘면서 서초구에서는 '손주돌보미' 서비스를 도입했다. 조부모들이 육아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로부터 현대식 보육 방법을 교육받고, 한 달에 40시간씩 직접 손주를 돌보면 최대 24만원의 수당을 지급받는 제도다. 적은 돈이라도 드릴 수 있어 다행이지만 '알바비' 수준의 재정적 지원에 그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조부모의 황혼육아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도 문제다. '손주니까 당연히 돌봐 줘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정당한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부모들도 가족이란 이유로 자녀에게 '육아 보상'을 선뜻 요구하지 못하면서 갈등이 생긴다.

복지부에 따르면 육아를 전담하는 조부모 가운데 자녀로부터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하는 비율이 61.4%(2015년 기준)에 달했다. 조부모 10명 중 6명이 '공짜 육아' 서비스를 제공하는 셈이다. 자녀가 부모에게 지불하는 비용은 월평균 62만2000원으로 집계됐다. '베이비시터'들이 받는 월 150만~200만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어린이집 보육료는 지원하면서 조부모의 육아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문제"라면서 "출산율 제고를 위해 조부모의 육아에 대한 법적·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육아로 인한 건강 악화도 조부모 육아의 부작용 중 하나다. 조부모가 육아노동으로 허리, 팔다리, 심혈관계, 우울증 등 심신 건강에 문제가 생기며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친정엄마도 얼마 전 허리가 안 좋아 병원에 갔더니 척추협착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출산과 육아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바라보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복직을 앞두고 두 사내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출근하려니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하다. 부디 조부모 도움 없이도 맞벌이 가정이 스스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권한울 프리미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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