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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그들만의 ‘깜깜이 지방권력’, 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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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권’과 ‘돈’ 때문에 중앙정치에 예속… 감시받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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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치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지방정치. 깜깜이 선거. 줄줄이 투표.

지방선거 평가에서 흔히 지적되는 개선점이다. 과연 바꾸는 것은 가능할까.

대선이나 국회의원 선거에 비해 지방선거에 관심 없는 시민들만 탓할 일은 아니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 지방선거 훨씬 전부터 기자의 SNS엔 여야를 막론하고 기자가 사는 지역구 기초광역의원 여럿이 ‘친구’로 등록되어 있다. 촛불시위 현장에서나 SNS 댓글로 꽤 말도 섞은 사이인데도 막상 공보물에 등장해 웃고 있는 후보자와 매치시키긴 쉽지 않았다.

기자 역시 선택기준은 기호, 소속정당이었다. 어느 정당 소속이었냐에 따라 줄줄이 투표를 했다.

“지방정치가 중앙에 예속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다. 공천권과 돈.” 신철우 정치컨설턴트의 말이다. 선택의 기준이 인물보다는 정당이기 때문에 공천 여부는 정치인으로서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이번 선거에서 수도권 시장에 도전했다 당내 경선에서 컷오프되었던 한 인사의 말이다. “시장과 배지(국회의원) 중 누가 더 힘이 셀까. 배지다. 국회의원이 보통 정당에서는 지역위원장, 시·도위원장을 맡는다. 현직 의원이 원치 않는데 시장이 될 수 없다. 경쟁자가 될 사람은 싹부터 잘라낸다. 풀뿌리 민주주의? 그런 거 없다. 오히려 대선 때는 작동될지 모른다. 지방권력이라는 게 지방 유지들, 하다못해 체육사나 간판가게 하더라도 자기네가 미는 사람이 시의원이 되고, 자기가 미는 모임이 당원모임이 돼야 하는 것이다.”

그는 지역 모 국회의원 사례를 들었다. 지난 총선 출마를 준비하면서 수천 명을 권리당원으로 ‘당겨왔다.’ 그런데 당시 지역위원장을 맡은 인사가 당원 가입을 가로막았다. “별 수 있나? 다른 당으로 가야지.” 그는 입당을 원했던 당이 아니라 다른 당 간판으로 당선됐다.

시장 vs. 국회의원, 누가 더 힘이 셀까



둘째 돈. 이것이 진짜다. 선거의 화려한 조명이 꺼진 뒤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는, 유권자들은 어렴풋이 짐작만 하는 그들만의 세계다.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재정자립도가 낮다. 중앙교부금이 만약 없다면 지방재정은 거의 다 파산한다. 지방정부가 쓸 수 있는 돈은 등록세나 취득세, 재산세 등인데 기껏해야 예산의 17~20% 선이다.

실제 시장의 ‘유능함’은 중앙으로부터 돈을 얼마나 잘 끌어오느냐다. 다시 앞 인사의 말.

“예를 들면 복지예산은 다 중앙에서 온다. 음성 꽃동네 같은 큰 기관이 지역에 있으면 골치 아플 수밖에 없다. 왜? 돈이 다 그쪽으로 가니 쓸 돈이 없거든. 교과서적으로 정치가 권위나 자원에 대한 배분이라고 하는데 지방정부는 돈을 빼낼 수 없다. 결국 ‘배지’의 예산 배분을 쳐다볼 수밖에 없다. 농촌 지역구 의원은 더 심각하다. 지역구가 여러 군에 걸쳐 있으니 군수들이 맨날 의원실에 와서 우는 소리를 한다. 도지사도 예산을 끌어올 때는 의원들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갑’은 국회의원이라는 이야기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정말 좋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바라며 산다. 그런데 대부분의 국민은 나도 좀 잘살고 싶은 거야. 설령 조금 부패하고 타락하더라도, 좀 잘살고 싶은 거다. 그게 그동안 민주당이 표를 못 모은 이유다. 그게 지역정치의 기반이고, 작동원리였기 때문에.”

국회의원 보좌관을 역임하고 서울시의회 수석전문위원으로 수년간 일했던 인사를 만났다.

그는 이번 선거 결과에서 ‘민주당 싹쓸이’가 오히려 걱정된다고 말했다.

“결과가 7대 3 정도였으면 어느 정도 견제는 된다. 그런데 결과는 민주당 102명 대 자유한국당 6명이다. 비례에서 바른미래당, 정의당이 한 명씩 되는데 이들을 포함, 야당은 아무 역할도 못할 것이다.”

한국의 정치제도에서 선출직 의원은 국회의원, 광역의원, 기초의원이다. 그는 제일 주목도가 떨어지는 것은 광역의원이라고 말한다.

“기초의원은 그나마 동네에서 보기라도 하는데 광역, 이를테면 서울시의원은 존재 자체도 모른다. 뒤집어놓고 말하면 감시 받지 않으니 무슨 짓을 하더라도 편하게 할 수 있다.”

시의원은 움직이면 돈이다. 국회의원만큼은 아니지만 대부분 이권 관련 민원이다.

“돈 없는 사람이 국회의원 찾아가 만날 수 있나. ‘빽’ 없는 사람은 밀려서 시의원을 만나고 더 밀린 사람은 구의원을 만난다. 초선은 적어도 자기가 밀어넣은 사업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민원이나 공약은 어떻게 할 거냐. 예산을 만들어주세요, 조곤조곤 말해서 안되면 윽박지른다. 공무원도 골치 아프다. 정말 말이 안되는 이야기면 일부러 흔적을 남긴다. 페이퍼를 남기면 적어도 책임을 면피할 수는 있으니까.”

이 인사의 주장에 따르면 문제는 ‘해먹으려고 해도 모르기 때문에’ 못한다는 것이다.

“수석전문위원들이 ‘예예’ 하면서 가지고 논다. 심하게 말하면 그들의 놀이터다. 4년 임기 동안 기본 지방행정 시스템도 파악 못하고 나간다. 국회에서 예산 좀 만져봤다고 하더라도 여기는 다르다. 예산서에 사업명도 없다. 자기들끼리만 하는 예산은 따로 있다.”

의문. 주목도가 떨어져서 그렇지 시의회 회의록이나 회의영상은 시의회 홈페이지에 다 공개되어 있지 않은가. 정말 ‘눈 가리고 아웅’ 식이라면 언젠간 다 드러나지 않을까.

“회의하기 전에 미리 모여 자기들끼리 다 결정한다. 나는 상임위원장 방에도 CCTV를 24시간 돌려야 한다고 본다. 어디 음식점에서 모이는 것까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건 기록에도 남지 않는다. 회의록 만 보면 회의가 매끄럽게 진행되는 것 같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회의 전에 다 결정해뒀으니까.”

‘그들만의 리그’는 유권자의 선택과 무관하게 작동한다.

감시 받지 않은 지방권력 이권거래들

“지방의원 몇 선씩 한 사람들, 재산공개되어 있으니 한 번 찾아보라. 건물주나 땅부자가 부지기수다. 여야 모두 마찬가지다. 자산가들이다.”

그에 따르면 이권 결탁의 징표는 또 하나가 있다.

“기초나 광역 당선인들 석·박사를 무엇했는지 체크해 봐도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상당수가 도시공학, 도시계획. 부동산 관련이다. 돈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재개발·재건축 인·허가권은 구청에 있지만 심의 의결권은 시 도시계획위원회에 있다. 밖에서 봤을 땐 서류만 넘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감시가 소홀하니 은밀한 이권을 주고 받기가 수월하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나마 퀄리티가 된다는 서울조차도 후보자가 누군지 알고 찍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지역협회장들, 조직·기관 갖고 있는 사람들, 하다 못해 그 동네 유명한 고깃집 사장 같은 사람들이 다 돈과 조직을 갖고 있으니 그 사람들 입맛에 맞춰서 움직이는 것이다. 민주당이나 자유한국당이나 똑같다. 지역엔 이런 말이 있다. 지방선거는 공천 때만 당이 있고 당선되면 당은 상관없다. 무소속 당선된 곳, 다 정당 보고 찍는 판인데 누가 처음부터 무소속으로 나오려 했겠나. 공천에서 자기사람 심으려니 밀려난 거지. 벌써부터 ‘2020년 총선 때 누구누구는 어렵겠다’는 말이 돈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했으니 탈이 난 것이다. 선거가 끝난 이제부터 동네에서는 보이든 보이지 않든 쌈박질이 시작될 것이다. 터지면 난장판이 될 것이다.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오죽했으면 청와대에서 한마디 했겠나.”

6월 18일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민정수석실에 “대통령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과 청와대 및 정부 그리고 지방권력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열심히 감시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말 이제부턴 실망할 일만 남은 걸까. 즉시 “당연 그렇다”고 답한 이 인사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나. 똥통에서도 우연히 꽃 한 두 송이가 피어날 순 있다. 그렇게라도 희망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번 선거에서 서울 강동구에서 시의원으로 당선된 김종무 당선인(48)을 만났다. 그는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이다. 지하철 입구에서 출근 주민들에게 아침인사를 마친 직후였다. 아직 선거열기가 채 식지 않았다. 지하철 입구 사거리에는 각 당의 당선·낙선사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 역시 중앙정치의 영향을 벗어나긴 어렵다고 말한다. 보좌하던 국회의원(진선미 의원)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한 번 해보라는 의원 권유도 출마 결심에 작용했다.

“보좌관을 14년 했다.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치가 본인이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내 고향이 경북 안동이다. 농반 진반으로 내 마지막 소원이 고향에 민주당 깃발을 꽂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일단 선택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시의원이었다. 강동갑 지역에는 4개 권역이 있는데 이번에 그가 당선된 지역에선 지금까지 일곱 차례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처음으로 승리했다.

“내 이름에 무가 들어가니 작은 열무를 어깨띠에 붙이고 다녔다. 의원님도 같이 무를 붙이고 돌았다. 사람들이 재미있어 했다. 분위기가 좋았다. 예전엔 상가를 돌면 받은 명함을 받아 구겨 다시 후보자에게 던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번엔 반대였다. 오히려 자유한국당 쪽 출마한 사람들이 몇 차례 그런 경험을 했다고 들었다.”

그는 자신이 당선된 이유로 전부터 지역 현안을 챙기면서 지역인사들과 안면을 터왔고 보좌관 경험을 통해 예산이 나오는 시스템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꼽았다.

“국비나 행안부, 서울시, 특교(특별교부금)가 돈 나오는 곳이다. 보좌관을 하면서 어디서 쏙쏙 빼올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돈을 가져올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으니 당을 떠나 구청장 등과 팀플레이가 중요하다. 민원도 시스템을 알아야 해결 가능하다. 며칠 전에도 재건축조합 민원이 있었는데 서울시 조례를 바꾼다고 하는데, 일반 주민은 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잘 모른다. 바로 앞에서 시 담당자와 연결해서 바로바로 해결해주니, 짧은 기간이지만 저를 접해본 사람은 ‘기존 지역 정당 사람들과 다르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무적인 판단까지 겸비해 조언해주니까.”

‘악성민원’을 부드럽게 거절하는 법

민원 중에는 악성민원도 없지 않다. ‘상대방의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부드럽게’ 거절하는 법도 그가 14년 동안 여의도에서 터득한 노하우다.

“명분이 있는 것이라면 강하게 밀어붙이는데 명분 없는 것은 민원 제기하는 절차를 알려주는 식이다. 완전히 무시하면 안되겠지만 영향력 행사가 불법이 될 우려가 있는 건 당연히 하면 안된다.”

악성민원의 대표가 인사 청탁이다. 한 사람이 되려면 또 다른 사람은 반드시 밀어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앙만 바라보는 대한민국 지방자치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없지 않았다. 풀뿌리 의원들의 수평적 네트워크 조직을 시도했던 거버넌스지방의정연구회의 활동이 대표적이다. 이번 지방선거 출마자들을 중심으로 ‘주민주권자치분권후보연대’라는 초당적 모임을 만들어 아래로부터의 네트워크와 협치 실현 등을 목표로 활동했다. 3차에 걸쳐 참가한 출마자는 총 125명. 성과는 있었을까.

연구회를 주도하고 있는 이형용 거버넌스센터 이사장은 “지방 독립이라는 이상을 실현하려면 물론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현실적으로 자치는 쟁취하는 것이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번 선거 당선자들을 중심으로 지역사회에서 협치를 통해 다양한 네트워크를 만들어내 분권자치를 이뤄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싹쓸이’로 판명난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2020년 총선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까.

꼭 그렇지만 않을 것이라는 것이 박신용철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 선임연구원의 말이다.

“아직 2년이나 남았다. 그때까지 대통령 지지율이 60%를 유지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여차하면 다른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지방에서 한두 개라도 사고가 터진다면 ‘싹쓸이까지 하도록 밀어줬는데 이게 뭐냐’는 실망감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게 총선 패배와 하반기 국정운영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김종무 당선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하는 걸 보면서 유권자 인식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요. 문 대통령도 대중 앞에 나서기 좋아하는 정치인 스타일이나 정치인의 언어를 쓰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수년간 연습해 많이 바뀌긴 했지만. 저도 안 바꾸려고요. 제 고집대로, 가식적으로 주민들을 만나진 않을 겁니다. 지역민들이 그걸 또 못받아들인다면 어쩔 수 없고요.”

인터뷰를 마친 그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점심 배식봉사 활동을 하러 떠났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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