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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길은 아름다우나 중국 관문은 고통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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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파미르고원 넘어 중국 가는 길

황하보다 붉은 크즐강 흐르고

초원의 말은 흑요석 뿌린 듯

순박한 키르기스 국경 넘자

눈알 부라리는 중국 관리들

휴대폰 뺏고 카메라도 뒤져

검문소 두곳 겨우 통과하니

택시에도 감시카메라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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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공원국의 유목일기

(17) 한 고원인의 중국 나들이

논문 개요 심사를 위해 중국 상하이의 학교로 가는 날, 비행기를 포기하고 육로로 키르기스-중국 국경을 넘기로 했다. 국경의 풍속도를 살피는 것도 일 중의 하나지만 파미르고원에서 카슈가르로 이어지는 ‘하늘길’의 아름다움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없이 해바라기 씨를 한 움큼씩 안기곤 하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의 트럭을 사르타시에서 운 좋게 빌려 탈 수 있었다.

석탄을 가득 실은 대형 트럭들이 이 고원을 지나 끊임없이 중국을 향해 달린다. 크즐강의 원류를 따라 길이 솟구칠 때나 정점에 달하여 경사지를 내려갈 때 트럭은 게걸음으로 가기에 바쁠 것 없는 나는 경치를 더욱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

6월은 좋은 말젖이 나오는 계절이다. 새끼를 가져 배가 봉긋하게 부푼 암말들이 초원에서 무리를 짓고 풀을 뜯는다. 재갈과 안장을 벗어난 말처럼 의젓한 동물은 찾기 힘들 것이다. 새 풀을 먹어 털에 윤기가 오르니 멀리서 보면 반짝이는 흑요석 덩어리가 초원에 흩뿌려진 듯하다. 다리만 겅중하고 몸이 비쩍 마른 망아지들은 주둥이로 어미 젖통을 쿡쿡 들이받으며 힘차게 빨아댄다. 녀석들도 가을이면 중키에 이르고 어미만큼 빨라질 것이다. 차의 속력이 줄어드는 굽이마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나와 마유주 병을 흔드는데, 1리터에 한국돈 천원이 안 된다. 이 계절, 마유주를 사지 않는 이는 마음이 각박한 사람이다. 젖이 물보다 싼 곳, 여름 파미르고원은 목축민들의 가나안이다.

수염 난 얼굴 못 알아보는 안면인식기

시큼한 마유주를 한 모금 머금는 동안 고도는 계속 올라가고, 숨은 차 온다. 붉은 물줄기를 쏜살같이 내려보내던 크즐강도 실개천처럼 가늘어지다, 멀리 분수령이 보이는 고개 가까이에 이르면 물은 눈으로 바뀐다. 이 두터운 눈이 천천히 녹으며 다시 서설이 내릴 때까지 초원에 물을 공급하리라. 분수령에 오르면 멀리 중국 쪽 카슈가르 오아시스를 향해 달리는 또 다른 붉은 물줄기가 보인다. 마유주 한잔에 이백의 시가 저절로 나온다. ‘군은 보지 못했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 위에서 내려와, 바다로 달려 다시 돌아오지 못함을.’ 황하의 발원도 보았으나, 그 물의 시작은 지금 저 물만큼 웅장하지 못했다. 출발부터 붉은 물줄기를 이뤄 내달리는 물줄기는 오직 이 파미르 땅에만 있다. 여기서부터 산은 급격히 낮아지지만, 낮아질수록 봉우리들의 뾰족함이 더해져 웅장함이 줄어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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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으로 달리는 물을 따라 한참 내리막길을 달리면 국경 에르케치탐이 나온다. 중국 국경으로 들어갈 때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한때 당나라 조정의 권신들이 ‘귀양 온 신선(謫仙)’에게 눈을 부라렸듯, 국경의 깐깐한 관리들은 높은 곳에서 내려온 이를 흘겨보는 버릇이 있다. 옥리에게 취조당하는 대장군이나 된 듯 애써 정신승리법을 써보지만, 매번 저들에게 속옷까지 털리고 나면 허탈한 분노만 남는 법이니까.

에르케치탐 국경에 도착하니 마침 점심시간이다. 닫힌 문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으니 식사를 마친 듯한 군인 한명이 어슬렁어슬렁 걸어와 덥다고 나를 자기 초소로 불러들인다. 총 한자루를 거꾸로 메고 있으나 시커먼 얼굴에 비뚜름하게 모자를 쓴 모양이 영락없는 보통 목동이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이력을 대충 파악하니 지금 내 처지를 동정한다.

“뭐, 그 마을에서 겨울까지 있을 거라고? 그럼 지금까지 여자는 아무도 못 만난 거야?”

고개를 끄덕이니 전화번호까지 안기며 선심까지 쓴다.

“오시로 와, 내가 여자 소개시켜 줄게. 아무리 마누라가 있어도 그렇지… 젊은 사람이.”

마침 라마단이라 나름대로 독실한 무슬림인 그는 점심을 거른 차였다. 그러나 남자 둘이 모이니 자연스레 나오는 음담패설은 경건한 라마단도 막지 못하는 듯하다. 금식도 막지 못하는 속됨을 간직한 이들, 이들이 내가 매일 만나는 고원인들이다. 뭔가 허술하면서도 턱없이 인간적인 그들의 품새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뻔질나게 국경을 드나드니 내 여권에 도장을 찍는 흰머리 아저씨의 얼굴이 낯익다.

키르기스스탄 국경을 넘으니 중국으로 들어가는 석탄 차량이 장사진을 이루고 통관을 기다리고 있다. 트럭들 옆으로 걸어서 중국 국경에 도착하니 건물과 길 옆으로 어디나 새하얀 아연도금 철조망이 깔려 있고 지붕은 대개 선명한 빨간색이라 키르기스 쪽의 녹슨 철조망과 컨테이너 숙소의 우중충한 색감이 주는 애잔함에서 깨어나 긴장을 느끼게 된다. 관리와 군인의 수도 몇십배로 불어나 갑자기 딴 세상으로 들어온 듯하다. 이 국경은 턱없이 두텁고 차갑다.

검사장 안으로 들어가면 먼저 핸드폰을 ‘압수’한다. 그 자리에서 확인하지 않고 가져가므로 압수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그들이 그 핸드폰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마침 함부르크를 떠나 상하이까지 가는 독일 여행단이 수속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지친 노인들의 얼굴에 불만이 가득이다.

“너무 통제가 심하네. 이렇게 통제하면 관광객이 오지 않을 텐데.”

내가 덤덤하게 대답해주었다.

“관광객이야 안 오면 그만이지만, 여기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노인은 고개를 끄덕인다.

수염을 길렀더니 안면인식기가 자꾸 삑삑거리며 나를 거부한다. 여권과 지금 서 있는 이 인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뜻이리라. 슬며시 기계에게 물어본다.

‘어이 브러더. 지금 내 얼굴로 사진을 검증하는 건가, 사진으로 내 얼굴을 검증하는 건가?’

빅 브러더는 대답이 없다. 그래도 수염을 깎고 오라는 말은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얼굴을 수없이 돌려가며 브러더의 요구를 기어이 맞췄다. 앞으로 카슈가르까지 가자면 이런 기계 브러더를 여러번 더 만나야 한다.

키르기스 민족 친구 한명이 옆방으로 부르더니 내 여권을 가지고 여러가지를 물어본다.

“이란을 왜 갔소. 터키는?”

무리 없이 통과하고자 성심껏 대답하니 카메라 사진을 하나하나 검사한다.

“걱정하지 마시오. 한장도 찍지 않았으니.”

사진을 검사할 때 약간의 모욕감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이리라. 거의 두어 시간이 걸려 국경을 통과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사실 시간문제일 뿐 허락은 언젠간 떨어진다. 그러나 여기서 입경 도장은 찍어주지 않는다. 무려 150㎞ 동쪽에 있는 울룩차트에 진짜 세관이 있다. 여기는 그냥 국경 검문소에 불과하다. 수속이 끝나갈 때쯤 높은 곳에서 내려온 사람의 인내심이 대개 바닥난다.

“도장 하나 찍지 못하면서 당신들을 왜 여기 있는가? 도대체 뭘 검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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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CCTV 매일 공안에 넘겨

중견 간부인 듯한 친구의 얼굴색이 변하더니 당국의 정책 운운하며 경고한다. 나는 쏘아붙였다.

“매번 당국 당국, 당국은 바로 당신들 아닌가. 정책을 따르겠으니 여기서 울룩차트까지 가는 차를 수배해주시오.”

“차는 우리가 일체 관계하지 않소.”

협상의 여지가 없었다. 그날 차 없이 국경을 넘는 사람은 나 혼자였으므로 에르케치탐과 울룩차트를 오가는 차를 운행하는 ‘하나뿐인’ 어떤 친구에게 400원(한국돈 7만원)을 내고 갈 수밖에. 관원들은 그 운전사에게 내 여권을 넘겼다. 재미있는 행정 절차다. 나는 또 한마디 했다.

“당신들은 차량에 일체 관계하지 않는다면서 왜 내 여권을 저 사람에게 넘기나? 공무원도 아닌데. 내가 도망갈까봐?”

도망이라는 말에 그는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며 언성을 높였다.

“이것은 엄중한 국가의 규정이오. 따라주시오.”

하긴 당신들이 총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따르지 않을 수 있겠소? 폭 150㎞의 국경. 세계사에서 유례없이 두꺼운 국경이다. 매번 이곳에서 수속이 끝날 때쯤 언성을 높이는 것을 보니, 내 인성과 이곳의 제도 중 하나는 분명 결함이 있을 것이다.

기계 브러더를 하나 더 통과하고, 울룩차트에 도착하니 세관으로 들어가는 문은 닫혀 있었다. 저녁식사 시간이라고 둘러대지만 두시간 동안 그럴 리는 없을 텐데. 저녁식사를 마친 그들은 문을 열지 않고 우회로로 돌아오라고 통보했다. 더 빨리 전화해줬으면 좋았을걸. 그리하여 밤 9시에 정식 통관 수속을 시작했다. 물론 핸드폰을 검사하는 과정부터 새로 시작한다. 밖에는 어둠이 깔렸다.

울룩차트 시내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또 기계 브러더를 거치고 카슈가르로 넘어왔다. 기계 브러더들은 한결같이 내 얼굴을 잘 몰라본다. 그날 밤 택시를 몰고 나를 실어준 기사는 몽골인이었다. 내가 외국인인 것을 알고는 검문소 때문에 시간이 지체된다고 태우지 않으려 했지만 끈질기게 설득해서 올라탔다. 차 안에서 짧은 대화를 나눴다.

“무슨 검문을 이렇게 많이 하는지. 숨 막혀서 살 수가 있나. 차 안에 시시티브이(CCTV) 설치된 것 알아요. 뭐 설치하고 들으려면 그러라지.”

그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시티브이 브러더는 그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매일 그 자료를 공안으로 넘긴다. 그러니 그는 뾰족히 할 말이 없다.

“중국인은 신분증만 보여주면 되는데, 당신이 외국인이라서.”

카슈가르 시내도 유치원부터 아파트까지 온통 철조망이다. 방범용 몽둥이를 들고 군복을 입고 줄서서 걷는 사람들이 늦은 밤까지 길에 깔렸다. 몽둥이가 쇠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첨단 기술을 쓴다는 진짜 테러리스트들이 저 소박한 몽둥이를 보고는 마음을 돌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국경지대는 그렇게 통과했다.

6월 상하이는 늦은 밤이라도 무덥다. 새벽이 가까울 때 도착해 먼저 기숙사 뒤뜰에 몰래 심어놓은 치자나무를 보러 갔다. 고원에 있으면서도 그 작은 것을 관리인이 뽑아버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해왔다. 사람은 심어두고 매몰차게 떠났건만, 치자는 혼자 남아 꽃을 피워 아직 두송이나 남아 있었다. 지기 직전의 꽃 두송이가 불꽃처럼 뿜는 마지막 향에 콧날이 시큰하다. 논문 개요 심사가 끝나면 녀석을 두고 바로 높은 곳으로 돌아간다.

지도교수는 온화한 분이다. 심사 전날 만나 조언했다.

“제목의 튀르크(突厥) 유목민이라는 말을 바꾸세. 튀르크어족 유목민으로.”

중국에서 튀르크는 금기어란다. 무스타파 아타튀르크의 범튀르크주의를 떠올린 것을 아닐 테고, 동투르키스탄 해방전선 때문인가? 그래서 제목은 수정되었다. 실제 심사일 심사관이 또 조언했다.

“튀르크라는 말을 없애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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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제목에서 튀르크 빼라”

튀르크라는 말 자체가 금기어니 튀르크어족으로 바꿔도 살아남지 못하나 보다. 카자흐어, 키르기스어, 투바어로 해야 하는구나. 그래 튀르크 세계가 무서운지는 모르지만 크긴 크다. 오늘날 오호츠크해에서 소아시아까지 튀르크 지대는 엄청난 범위로 퍼져 있다. 맞아, 그들은 역사도 가지고 있지.

“(부믄 카간 등이 돌아갔을 때) 문상객으로 앞으로는 해가 뜨는 곳에 있는 뵉클리(고구려), 쵤릭 엘(초원의 부락), 타브가치(중국), 퇴퓌트(토번, 티베트), 파르(페르시아), 푸룸(비잔티움)…… 크탄(거란), 타타브(奚), 이만큼의 보둔(백성)이 와서 울었다고 한다.”

그러나 튀르크를 튀르크라 부르지 않는다고, 있는 튀르크가 없어지지도 않을 텐데.

“위에서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아래에서 땅이 꺼지지 않는다면, 튀르크 보둔아! 너의 일(나라)과 너의 퇴뤼(법)를 누가 무너뜨릴 수 있겠느냐?”(이상 정재훈이 정리한 ‘퀼 테긴’ 튀르크 비문에서)

자세히 생각하니 튀르크가 껄끄러운 말이긴 하다. 그들은 동서의 길에 의존한 이들, 동서를 통하게 한 이들이다. 그들은 두께 150㎞의 국경을 모르는 이들이었다. 그들이 만든 길로 움직인 물건들은 저 싸구려 석탄 따위가 아니었지. 비단과 금은이 오갔지만, 정작 귀한 것은 세상을 바꾼 사상들이었지. 사상은 위험한 거지. 그리고 엄청난 사람들이 움직였어. 부족도 움직였고, 또 세계여행을 하는 이상한 족속들도 길 덕에 생겨났지. 몽골이 튀르크의 길을 따랐고, 그 길을 따라 마르코 폴로니 이븐 바투타가 돌아다녔지. 세계사 책이 쓰이고 세계지도가 그려졌지. 맞아, 그런 것들은 다 위험해.

귀양 온 신선 이백은 고래를 타고(騎鯨人) 하늘로 돌아가버렸다고 한다. 나도 귀로에는 하늘을 나는 고래를 탔다. 한시라도 빨리 가자. 야크는 낮은 곳으로 가면 죽는다 하니.

공원국 작가/탐험가/역사·인류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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