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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중기, 세계로 날다] 제주반도체 "제주도 특산품, 이젠 감귤보다 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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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제주도에서 가장 많이 수출되는 품목이 뭔지 아세요? 바로 저희가 만드는 반도체 메모리입니다."

제주도의 지난해 수출액은 1억5200만달러다. 이 중 반도체 수출액은 6200만달러로 전체의 40.3%에 이른다. 제주도 특산물인 넙치, 소라, 전복, 감귤 수출액을 전부 합해도 3019만달러다. 반도체 수출액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셈이다.

'제주도와 반도체'. 너무나 달라 보이는 둘을 이어주는 회사가 있다. 제주도에 본사를 둔 반도체 팹리스 전문 기업 제주반도체(대표 박성식·사진) 이야기다. 팹리스(Fabless)는 생산설비를 갖추지 않고 반도체 설계를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를 말한다. 제주반도체는 판교와 제주도에 각각 사무실을 두고 판교에서는 연구개발(R&D)을, 제주에서는 제품 조립·검사를 담당한다. 제주반도체는 반도체 생산(파운드리)은 대만에 맡기고 설계에 집중하고 있다. 설계 전문 기업인 제주반도체가 반도체를 '수출'하는 것은 반도체 산업의 특성 덕이다. 판교 사무실에서 만난 박성식 대표는 "대만의 파운드리 업체가 우리 설계대로 핵심 부품인 웨이퍼를 생산하면 이를 우리가 수입한 뒤 조립과 검사를 거쳐 수출한다"고 설명했다.

제주반도체는 설계 능력을 인정받아 급속도로 매출이 성장하고 있다. 2016년 566억원을 기록한 매출이 지난해 1170억원으로 급격히 늘었다. 그는 "경쟁사보다 5~10% 크기가 작은 메모리를 만들기 때문에 다양한 기기에 탑재하기 유리하다"며 "반도체 성능도 경쟁 대만 기업보다 우수하게 만들어 신뢰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1985년 삼성반도체통신(현 삼성전자)에 입사해 반도체 메모리(RAM)를 연구하다 2000년 창업에 나섰다. 평생 반도체만 연구해 자신을 "반도체 회사만 다녔고 반도체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창업에 나선 이유는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와 미국 대기업이 반도체 메모리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지만 이들이 다루지 않는 중저가형 메모리 시장도 현재 5조~10조원 규모에 달합니다. 반도체 메모리를 전문적으로 개발해 온 만큼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죠." 박 대표가 창업하던 2000년 당시 중저가형 메모리 시장은 대만이 90% 이상을 차지했다. 그는 "설계와 개발에 집중하고 생산은 전문 업체에 맡겨 효율성을 추구한 결과 업계에서 인정받는 반도체 기업이 됐다"고 말했다. 설계에 강점을 가진 만큼 R&D에 많은 인력을 두고 투자를 거듭하고 있다. 전체 사원의 55%가 R&D 인력일 정도다. 직원은 100%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다.

반도체 전문 기업이 제주도에 사무실을 둔 이유는 무엇일까. 박 대표는 "2005년 서울 잠실에 있던 본사를 어디로 옮길지 논의하다가 당시 35명의 전 직원이 투표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당시 세제 지원이 있는 대전 이남으로 회사를 옮기려던 중 대전으로 가나, 제주도로 가나 비슷하지 않겠냐는 의견에 끌려 제주도로 본사를 옮겼다는 것. 사명도 직원들이 모여 결정했다. 박 대표는 "처음에는 아펨스테크놀러지라는 이름을 거쳐 이엠엘에스아이라는 사명을 사용했는데 이름이 어려웠다"며 "모든 사원이 모여 논의한 결과 제주도에 있는 반도체 기업이니 '제주반도체'로 하자는 의견이 나와 즉석에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잘나가던 제주반도체는 최근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에 영향을 받고 있다. 미국이 중국 전자제품 기업에 제재를 가하면서 제주반도체가 중국에 수출하던 물량이 크게 줄어든 것. 그러나 박 대표는 "무역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판로 다변화를 모색하면서 이번 사태의 영향을 최소화했다"며 "악재에도 불구하고 올해 목표인 매출 1500억원, 영업이익 150억원은 초과 달성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제주반도체의 목표는 저사양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글로벌 1위 기업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반도체 굴기' 때문에 연구 인력과 외주 생산에 대해 고민이 많다.

[송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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