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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역사적'이란 수식어는 허울뿐? 수사권 조정에도 검경 수사는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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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자부 장관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경찰의 1차적 수사권 및 1차적 수사종결권 부여 등을 내용으로 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정부가 21일 발표한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은 요란한 선전과 달리 크게 진전된 게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검찰의 ‘수사 지휘권 폐지’와 경찰의 ‘1차 수사 종결권’은 용어는 새롭지만 지금까지 하던 수사 관행을 공식화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수사지휘권 폐지 이후에도 큰 변함 없어”

합의안의 핵심은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폐지, 경찰의 1차적 수사권·1차적 수사종결권 확보에 있다. 언뜻 보면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 통제가 사라지고, 경찰이 수사에서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을 뜯어보면 평가가 달라진다.

현재도 경찰이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검찰이 처음부터 지휘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경찰이 압수수색 혹은 구속 영장신청 등 강제수사에 돌입할 때부터 검찰이 구체적 수사지휘를 하게 되는데 오히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기존 보다 검찰의 권한이 강화된 측면이 있다. 검찰은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고, ‘정당한 이유’ 없이 지시에 불응하면 검찰은 해당 경찰에 대한 직무배제와 징계를 요구할 권한을 갖게 됐다. 또 경찰이 수사권을 남용했다고 판단되면 검찰은 시정조치를 요구할 수 있고, 불응하면 검찰에 사건을 강제로 송치할 수 있도록했다.

경찰이 수사 종결권 역시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경찰이 사건을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처리하는 경우에도 검찰에 불송치결정문, 사건기록등본을 검찰에 넘기도록 합의했기 때문에 기록을 넘긴다는 측면에서 지금과 달라지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수사종결권은 경찰이 수사기록 원본을 보관한다는 것밖에 의미가 없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처리하기 까다롭고 귀찮은 고소고발 사건의 경우 경찰에 내려보내 처리토록하는데 이 부분에선 수사지휘권 폐지의 의미가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런 사건에 대해선 처음부터 검찰이 일일이 수사지휘를 하는데 앞으로는 수사지휘권 폐지로 경찰이 지시를 받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까다롭고 귀찮은 사건의 수사책임을 경찰이 오롯이 떠안게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 드러낸 것”

일각에서는 현 정부가 경찰에 대해 갖고 있는 뿌리 깊은 불신이 표면화한 것이란 진단도 나온다.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수사권 조정을 시작했지만, 일선 경찰의 고질적인 부패와 무능을 감안하면 쉽사리 권한을 주기 어려웠을 것이란 얘기다. 경찰 내부적으로도 성급한 수사권 조정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적지 않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이 주도적으로 수사를 하려면 일선 하위직 경찰의 수사역량이 강해야하는데 과연 그런 수사역량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수사권 조정의 빌미가 된 ‘검사 비리’와 관련해서는 일부 진전된 부분도 있다. 검사나 검찰 직원의 범죄에 대해 경찰이 영장을 신청했을 때는 검찰이 지체없이 법원에 영장을 청구토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검찰이 영장심의위원회를 이용해 수사방해를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검사가 청구하지 않을 때 경찰은 검찰에 설치된 영장심의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만 검찰이 위원회 소집 등을 이유로 시간끌기를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오늘 조정안으로 수사현실이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그래도 협력적이고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기본적인 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도 사건 송치 전에 검사 지휘를 받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이번 합의안은 현재의 검경 간 관계를 법제화하려는 것”이라면서 “검경이 완전히 대등해질 수는 없지만 상호관계로 전환된 건 의미가 있다”고 말햇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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