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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경찰 "환영은 하는데..." vs. 검찰 "경찰수사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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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警 수사권조정 최종 합의안 발표
양쪽 실리 계산하며 ‘표정 관리’ 中
경찰 “환영, 하지만 큰 변화 있을까”

조선일보

민갑룡 신임 경찰청장 내정자 /박상훈 기자


21일 검찰의 수사지휘권 폐지, 경찰의 수사종결권 부여 등을 담은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합의안’이 발표되자, 검경(檢警)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경찰이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환영하는 반면, 검찰은 내부적으로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경찰청은 이날 공식 입장을 내고 “(이번 조정안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반영된 민주적 수사제도로의 전환”이라며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는 사법 민주화 원리가 작동하는 선진 수사구조로 변화하는 데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뤄 권한 남용을 방지하고 본연 역할과 사명을 다하라는 뜻이기에 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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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권 조정 합의안이 발표된 21일 오전 경찰청 모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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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내에서 ‘수사권 독립’을 주도해왔던 황운하 울산지방경찰청은 “검찰과 경찰의 관계가 수직 관계에서 수평 관계로 바뀌고 검·경의 수사권 조정 갈등의 역사가 종식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 했다. 황 청장은 그러나 “검찰의 직접 수사권이 여러 분야에 남아 있고, 검찰이 영장청구권을 독점하는 등 아직까지 미완의 과제가 있다"며 “사실 영장청구권을 독점하면 경찰의 독자 수사는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일선 현장에서는 불만 섞인 반응도 나왔다. 서울 한 경찰서 수사 담당 경찰관은 “명분은 경찰이, 실리는 검찰이 챙겼다”며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건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경찰이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 검사가 지휘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검찰의 영장지휘가 유지되는 이상 수사지휘만 못하게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했다. 현재 경찰은 압수수색이나 구속 등을 위해 영장을 받으려면 반드시 검찰을 거쳐야 한다. 이는 헌법에 검사의 영장청구권이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검찰의 수사 통제권한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반응도 나왔다. 이날 수사권조정안에는 경찰에 1차 수사권을 주는 대신 검찰은 보완 수사를 요구할 수 있고,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 직무배제나 징계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지방경찰청 한 간부는 “검사가 말을 안 들으면 수사에서 뺄 수도 있고, 징계를 먹일 수도 있다는 것 아니냐”며 “수사를 중간중간 지휘하던 지금보다 앞으로는 수사한 결과를 평가받는 모습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검사가 청구해주지 않을 경우, 이의제기가 가능하도록 하면서 이를 심의하는 기구는 검찰 내(고검)에 두는 것도 불합리하다는 의견도 있다. 지방 한 경찰서장은 “한해 경찰과 검찰 사이에 오가는 영장이 줄잡아 수만 건인데 매번 이의제기를 해서 위원회를 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며 “심의 기구가 검찰 내에 있으면 심의위원이 외부인이라고 하더라도 경찰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겠느냐”고 했다.

검찰 내부 “수사하지 말라는 이야기” 반발
현직 부장검사 “법무부 조정과정 공개하라”
“국민들 어떨지 지켜보자” 냉소적 반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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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 검찰총장/조인원 기자


검찰 내부는 부글부글하는 분위기다. 수도권 지검의 한 검사는 "검찰은 수사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라며 “경찰이 수사한 결과에서 부족한 부분만 채우라는 건데 과연 국민들이 수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보완 수사 요구에 불응할 때 직무배제나 징계요구권을 적시했지만 경찰청장이 거부하면 실효성이 없는 것 아니냐”며 “괜히 검찰과 경찰 사이에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사실 경찰의 수사과정에 검찰이 지휘하는 경우는 직접 수사한 경찰관이 윗선의 압력이나 눈치를 피하려고 검사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더 많다”며 “검찰이 일부러 개입하기 위해 지휘하는 경우는 거의 못 봤다”고 했다.

수사의 완성도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한 검사는 “초동 수사 과정에서 증거 수집이 부실하면 2차 수사나 공소 단계에서 이를 만회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지금도 검찰은 경찰 수사가 성공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이었지 수직관계로 지시하는 관계가 아니었다”고 했다.

앞서 지난 20일 오후 검찰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에는 “검·경 수사권조정 과정을 공개하라”는 취지의 글도 올라왔다. 박철완 부산지검 형사1부장은 글에서 “현행 수사구조의 변경 필요성에 공감한다”면서도 “절차에 대해 많은 실망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법무부로서는 당연히 수사권 조정과 관련된 논의 과정을 법무·검찰 구성원 모두에게 소상하게 알리고, 실질적으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면서 “조정안 논의 과정에서 정부 최종안은 물론이고, 문무일 검찰총장이 제출했다는 검찰 의견도 (구성원들은) 들어보지 못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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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권 조정 합의안이 발표된 21일 오후 검찰 직원이 서울 서초구 대검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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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내 또 하나의 기류는 냉소적인 분위기다. 지방지검 한 간부는 “검찰이 하는 수사는 모두 정치적이라고 보는데 앞으로 경찰이 수사하면 어떻게 될지 한번 지켜보자”면서 “검찰은 내부적으로 꼭 필요한 수사만을 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수사권조정에 대한 결과는 실제 국민들이 어떻게 느끼는가에 달려 있다”면서 “검찰의 권한을 줄이려는 것은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경찰의 권한을 늘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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