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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세계 인권보루 美, 유엔인권이사회 박차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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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이스라엘에 편견 있고 中·쿠바 등 인권 탄압국 보호" 자유무역·인권 등 스스로 세운 질서의 '수호자'에서 '파괴자'로

세계 인권의 보루를 자임해온 미국이 19일(현지 시각) 인권 문제를 전담하는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서 탈퇴한다고 밝혔다. 자유무역과 인권, 민주주의를 앞세워 2차 대전 후 세계 질서를 만들어 왔던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자유무역의 질서를 흔들고, 유엔인권이사회 탈퇴로 인권의 가치에도 눈을 감으며 오히려 '질서의 파괴자'로 변한 것이다.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CFR) 회장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지난해 트럼프 행정부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세계기후변화협정(파리협정) 탈퇴, 올해 이란 핵합의 탈퇴 등을 거론하며 "(미국의) 위선이 제도화되고 있다"고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이날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유엔인권이사회 탈퇴 결정을 발표했다. 2011년 리비아가 비무장 시민을 학살했다는 이유로 이사국에서 쫓겨난 적은 있지만 스스로 탈퇴한 것은 미국이 처음이다.

미국은 탈퇴 이유로 인권이사회가 반(反)이스라엘 성향이고 중국 등 인권 탄압국들에 휘둘리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헤일리 대사는 "인권이사회가 인권 탄압국의 보호자가 됐고, 정치적 편향의 소굴이 됐다"며 "인권이사회가 올 들어 이스라엘에 대한 5건의 (규탄) 결의안을 통과시켰는데, 이는 북한과 이란, 시리아를 합친 것보다 많다"고 했다. 헤일리는 "이름값을 못하는 기구" "위선적이고 자기 잇속만 차리는 기구" "인권을 흉내만 내는" 등의 원색적 표현까지 쓰며 인권이사회를 비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중국, 쿠바, 베네수엘라와 같은 명확하고 혐오스러운 인권 기록을 가진 독재 정부가 회원국에 포함돼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유엔인권이사회는 유엔 가입국의 인권 상황을 검토하고 국제사회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만든 상설위원회다. 2006년 공식 출범해 47개 이사국이 있다. 미국은 2006년 출범 당시 참여를 거부하다가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09년 합류했다.

미국이 이런 인권 기구를 강하게 비난하며 탈퇴한 것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워싱턴포스트는 "세계 인권 문제에서의 핵심 역할을 포기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또 하나의 후퇴"라고 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에도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가 반이스라엘 성향을 보인다는 이유로 탈퇴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미국의 인권이사회 탈퇴 결정 직후 성명을 통해 미국 정부가 용기 있는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미국의 인권이사회 탈퇴는 북한 인권 문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인권이사회가 북한 인권에 대한 자유 진영의 목소리를 대변해왔기 때문이다. 인권이사회는 출범 후 매년 북한인권결의안을 내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해왔다. 북한은 결의안에 대해 "허위 날조로 일관된 범죄적 문서이며 미국 적대 정책의 산물"이라고 했었다. 지난 6·12 미·북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인권 문제를 제대로 거론하지 않은 데 이어, 인권이사회 탈퇴는 자칫 미국이 김정은 정권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당장 워싱턴DC에 있는 북한인권위원회(HRNK)는 다른 12개 인권 관련 기구와 함께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미국의 (인권이사회) 참여가 북한과 이란, 미얀마 등의 인권 문제에 대한 행동을 강화했었다"며 "이번 결정은 전 세계 인권 침해 피해자들을 돕는 것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했다.



[워싱턴=조의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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