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성과연봉제를 반대하면서도 호봉제를 개편할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정부 출범 이후 개편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6월 각 공공기관이 이사회 의결이나 노사 합의로 자율 결정하라며 성과연봉제를 서둘러 백지화했다. 새 임금체계의 대안도 없이 급하게 폐지를 밀어붙인 결과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던 공공기관 120곳 중 대부분이 호봉제로 회귀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공공기관 노조의 눈치를 보느라 공공개혁 역주행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은 혁신이 절실하다. 2016년 기준 332개 공공기관 중 영업이익을 내는 곳은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01곳뿐이다. 부채가 자본의 10배가 넘는 곳도 있다. 그럼에도 직원들은 높은 연봉을 받고 정년이 보장돼 ‘신의 직장’으로 불린다. 이 같은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떠받치는 근간이 생산성이나 경영 실적과는 무관하게 임금이 결정되는 호봉제다. 박근혜 정부 당시 성과연봉제가 이사회 의결만으로 졸속 도입돼 뒤탈을 남기긴 했지만 이 바탕에 깔린 공공개혁의 문제의식까지 무위로 돌려서는 안 된다.
정부가 철밥통을 깨는 개혁안을 관철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호봉제 폐지와 직무급제 도입 방침을 밝혔지만 실제 시행 여부는 정부의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기관별로 노사 합의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노조의 반발로 성과연봉제 도입 당시의 진통이 재연될 수 있다. 하지만 진화가 없는 ‘갈라파고스 임금체계’도 손대지 못하면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과 경쟁력 저하를 막을 수 없다. 이에 대한 부담은 결국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게 된다. 공공개혁의 첫걸음이 될 호봉제 폐지는 곧 문재인 정부가 노조 편에 설 것인가, 국민 편에 설 것인가의 문제다. 집권 2년 차에 강력한 국정운영 동력을 확보한 지금이 바로 인기 없는 개혁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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