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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출판계 외주노동 착취 심화…경력단절여성들 내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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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노조협의회 여성위 '2018 출판산업 여성노동 실태조사' 발표

연합뉴스

여성노동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임신 중에 나오기는 했는데 그때 너무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너무너무. 최고조여서 머리가 쭈뼛 설 정도로, 일요일이 되면 종일 너무 우울하고 회사 가기 싫어서. 그걸 견디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나와서 외주로 좀 먹고살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이 들고 나서 나왔어요."

소규모 출판사에서 일하던 한 여성 편집자가 회사를 나와 외주노동자가 된 배경을 설명하는 이야기다.

이 여성은 "매출 하락에 대한 위기감이 상사에 의한 불합리하고 강압적인 업무 압박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상시적인 압박감을 견디기 힘들었다", "임신한 상태에서도 큰 심신의 부담을 느낀 나머지 출퇴근 길에 대중교통 안에서 기절 직전 상태까지 갔다"며 아찔한 경험을 떠올리기도 했다.

20일 저녁 언론노조 출판노조협의회 여성위원회(이하 여성위)가 홍대 프리스타일 세미나룸에서 연 '지금, 여기의 여성 X 노동: 2018년 여성노동 실태조사' 발표회에서는 최근 출판계에 부쩍 확대된 외주노동 문제가 중점적으로 지적됐다.

이번 조사는 연구자들이 출판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 25명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질적 연구 방식으로 이뤄졌다.

소규모 영세 출판사들이 많고 대부분 노동 조건이 열악해 이직이 잦은 출판계에서 여성들은 주로 임신과 출산, 육아노동 또는 사업장 내부의 업무 압박과 모멸적 대우 등으로 회사를 나와 외주노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위는 "노동자들이 '선택'에 따라 외주노동시장에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출판산업의 구조적인 문제가 외주노동이 확대되는 것과 노동시장이 성별화되는 것을 부추기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2013년 외주출판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403명의 월 평균소득은 150만 원 미만이 45.9%로, 많은 이들이 저임금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작업비가 제때에 지급되지 않고 책이 출간된 뒤로 수개월씩 미뤄지는 경우도 많다. 또 촉박한 마감 시간에 쫓겨 하루 평균 8~14시간씩 일한다는 응답이 53.8%, 12~14시간 일한다는 응답이 42%를 차지했다.

여성위는 "육아와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기혼 여성노동자의 경우 노동강도는 이중, 삼중이 된다. 육아와 가사노동까지 책임지면서 그사이에 짬을 내 일을 하거나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일과가 모두 마무리된 야간에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2013~2016년 출판산업 실태조사'에서 이 기간 5인 미만 출판사가 69개에서 2천621개로 4배가량 증가한 사실을 들어 "최소한의 인원으로 운영되는 5인 미만 출판사들은 외주노동력 없이는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다. 더욱이 매출 하락으로 인해 저비용 고효율 전략이 더욱 심화되고 이로 인해 더 많은 외주노동자가 양산될 가능성이 크다"며 "산업 내 외주노동 실태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이에 대한 제도적 규제가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조사에서 '출판계에 종사하면서 성폭력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총 응답자 25명 중 9명만이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자신의 경험을 보고서에 싣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참여자도 있었다고 한다.

여성위는 "낯선 이에게 성폭력 경험을 말하기 어려웠을 것임은 물론, '좁은 업계'라는 인식이 강할뿐더러 이직이 잦은 출판계에서 같은 출판노동자에게 말하기는 더욱 어려웠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해석했다.

또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인 5인 미만 사업장이 많다"며 "이들에 대한 근로감독 강화가 필요하고, 이들 사업장에도 초과근로수당과 연차휴가 제공, 부당해고로부터 보호를 보장하는 법 규정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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