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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정리뉴스] 부모·자식 생이별시키는 미국 '무관용정책', 왜 논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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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이민자 캠프도 난민 수용 시설도 되지 않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8일(현지시간) 국가항공위원회(NSC) 회의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습니다. 최근 불법 이민자 부모와 자녀를 분리 수용하는 ‘무관용 정책’을 두고 당 안팎에서 비판이 쏟아지자 입장을 밝힌 것입니다. 지금 미국 국경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아이들과 부모들은 대체 왜 떨어지게 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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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아이들은 왜 생이별하나

미국 정부는 지난 4월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이 내린 지침에 따라 남서부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오는 모든 밀입국자를 형사 기소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무관용 정책’입니다. 문제는 18세 미만의 아동은 연방 감옥에 갇힐 수 없다는 점입니다. 성인인 부모들은 감옥에 수감되지만, 그들과 함께 온 자녀들은 난민정착사무소(ORR)라는 임시 보호 시설로 보내집니다.

과거에는 미성년자 자녀를 둔 밀입국자의 경우 일단 석방한 뒤 재판을 거치도록 했지만, 이제는 밀입국자 모두를 구속기소 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입니다.

미 국토안보부는 무관용 정책이 시행된 지난 6주간 부모로부터 분리된 아동이 약 2000명에 달한다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19일부터 5월31일까지 총 1995명의 미성년자가 성인 1940명으로부터 떨어져 보호 시설에 수용됐습니다. 하루 평균 45명꼴입니다. 가족 분리가 산발적으로 이루어졌던 지난해 7월로 시계를 돌리면 그 수는 수백 명 이상 더 늘어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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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분리, 무엇이 문제인가

부모와 떨어진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미국 국경을 넘은 “동반자가 없는 미성년자(unaccompanied alien children)”로 분류됩니다. 미 연방법에 따르면 당국은 아이들을 인지한 시점으로부터 72시간 이내에 이들을 ORR로 보낸 뒤, 이민 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아이들을 돌봐줄 후원자나 친척을 찾게 돼있습니다. 최소 몇 주에서 많으면 몇 달까지도 걸리는 절차입니다.

문제는 시스템이 이미 과부하에 걸려있다는 점입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 전역의 ORR은 지난 7일 기준으로 95%가 차있는 상태입니다. 여기에 계류 중인 아동만 1만1000 명에 달합니다. 당국도 심각성을 인지해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무관용 정책이 공식 발표되고 3일 후인 지난달 10일,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은 부모와 떨어진 아이들을 위탁할 시설을 모집한다는 발표를 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여전히 심각합니다. 현재 텍사스주 매캘런 등에 위치한 임시 보호소에는 가족과 떨어진 아동 2000여 명이 부모의 행방을 모른 채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살 여아를 포함해 6세 이하 어린이들도 100여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보호소 내부를 취재한 외신들에 따르면, 이들은 콘크리트 바닥에 있는 케이지에서 20명 단위로 수용된 채 알루미늄 담요와 물, 음식 등을 지급받아 생활하고 있습니다. 10세 미만으로 추정되는 중남미 아동이 “엄마” “아빠”라는 말을 반복하며 울부짖는 2분 분량의 녹음 파일도 공개됐습니다.

미국소아과협회는 국토안보부에 보낸 서한에서 “가족 분리와 같이 스트레스가 큰 환경은 아이들에게 평생에 걸친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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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도 후유증을 호소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지난달 13일에는 온두라스에서 온 한 남성(39)이 아이들과 격리된 후 텍사스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일부 국경순찰대원이 아이들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어디로 데려가는지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간단한 심문을 하겠다” “목욕을 시켜주겠다”며 부모들을 안심시킨 뒤 아이를 데려가기도 했습니다. 연방 감옥을 방문한 프라밀라 자야팔 공화당 의원은 “어떤 부모들은 국경순찰대로부터 ‘다시는 그들 자녀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아이들이 부모를 다시 만나게 될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당국은 “부모들의 형사 재판 절차가 마무리되면 아이들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아동보호단체들은 부모들의 재판 경과나 추방 여부를 일선 ORR에서 알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주장합니다. 미국 비영리단체 시민자유연맹(ACLU)에 따르면, 국토안보부 시설에서 풀려난 이후로도 수개월 간 아이를 만나지 못해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여성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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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분리는 새로운 정책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가족 분리’ 자체는 새로운 정책이 맞습니다. 그러나 불법 이민자 문제가 불거진 것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전인 2014년부터였습니다. 중남미 국가에서의 폭력과 빈곤을 피해 미국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들이 급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14년 불법 이민자를 가족 단위로 구금하는 조처를 내렸습니다. 이같은 조치는 당시에도 거센 비판을 불렀습니다. 이듬해 연방법원이 별도의 설명 없이 이들을 몇 달씩 구금하는 것을 금지하면서, 이민자들은 재판이 마무리될 때까지 석방 상태에서 미국에서 체류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망명 신청만 하고 재판장에 나타나지 않는 이들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바로 이 부분을 “잡아서 풀어주기”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전임 정부의 ‘느슨한’ 국경 정책이 불법 이민 급증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국토안보부는 최근 3개월간 매달 5만명이 넘는 이민자들이 남쪽 국경을 넘었고, 가족 단위 이민은 지난해 대비 4배 넘게 늘었다며 무관용 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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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 멜라니아까지 비판

트럼프 대통령의 무관용 정책은 여야 모두에서 비판을 받습니다. 심지어 영부인인 멜라니아 여사까지 쓴소리를 했습니다. 멜라니아의 대변인인 스테파니 그리셤 공보담당관은 지난 17일 “멜라니아는 아이들이 부모와 격리되는 것을 싫어한다”며 “법을 준수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마음으로 다스리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부인 로라 역시 워싱턴포스트에 “미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일의 하나였던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의 포로 수용을 섬뜩하게 떠올린다”며 비판했습니다.

▶관련뉴스 :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들이 ‘무관용 정책’에 대해 말한다

▶관련뉴스 : “가슴으로 다스릴 필요” 멜라니아도 반대한 트럼프 이민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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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입장 바꿀 가능성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자 폭증을 막기 위해 가족 분리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입니다. 그는 18일 트위터에 “지구 최악의 범죄자들 일부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수단으로 아이들을 이용하고 있다”며 민주당에 책임을 돌렸습니다. 가족 분리 사태를 수습하고 싶으면 이민법 개정에 합의해 “법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다음날인 19일에도 “지금이야말로 터무니없고 낡은 이민법을 고칠 최적의 기회”라며 압박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의회 차원의 이민법 개정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다음 주 하원 표결이 예정된 공화당 이민개혁법안은 국경장벽 건설을 위한 수십억 달러 예산 배정, 합법 이민 제한, 안전조치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데, 민주당은 이에 부정적입니다. 민주당도 법원 판결을 통해서만 가족 분리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 중이지만 공화당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인터넷매체 VOX는 “트럼프 행정부는 불법 이민자의 일시적 폭증에 대응해 특별 조치를 내놓은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같은 가족 분리가 ‘뉴노멀’이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말했습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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