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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삶과 추억] 중국 조선족 중 최고위직 지낸 조남기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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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급 상장 출신 정협 부주석 올라 문화혁명 당시 숙청됐다 73년 복권

중앙일보

조남기


중국군 최고위 계급인 상장(上將·대장급) 출신으로 정협 부주석(부총리급)까지 지낸 ‘조선족의 우상’ 조남기(趙南起·사진) 장군이 지난 17일 베이징(北京)에서 별세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19일 보도했다. 91세.

조 장군은 조선족은 물론 55개 소수민족을 통틀어 중국 정계 및 군부 최고위직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가 사령관을 역임한 총후근부는 군수 물자 공급과 운송·물류·건설·의료 지원 등을 총괄하는 기관으로 최근 군 조직 개편 전까지 총정치부·총참모부와 더불어 인민해방군 3대 기둥으로 꼽혔다. 1998년엔 소수민족 정책에 힘입어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상무 부주석(군부 대표)에 올라 2003년까지 재임했다.

조 장군은 6·25전쟁에도 참전했다. 펑더화이(彭德懷) 사령관 지휘 아래 북한 측을 도운 중국 인민지원군 20여만 명의 일원이다. 당시 그는 부사령관 겸 후근부장인 훙쉐즈(洪學智)의 막료로 기획수송과장을 하면서 박헌영 제1부수상 겸 외상 등 북측을 상대로 통역을 하기도 했다. 러시아어 통역을 했던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맏아들 마오안잉(毛岸英)과 한 숙소에서 지냈다고 한다.

1927년 충북 청원군 태생으로 조부인 조동식(1873~1949) 선생은 3·1 운동 당시 ‘대봉화 횃불시위’를 주동, 공주 감옥에 3년간 수감되기도 했다. 38년 11세 때 조부와 부친을 따라 만주로 건너가 지린성(吉林省) 옌지현(延吉縣) 황지포에서 살았다. 동북군정대학을 거쳐 총후근학원을 졸업했고 45년 12월 인민해방군(팔로군)에 입대했다.

6·25전쟁 후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일하며 60년대 지린성 옌벤(延邊)군구 정치위원(사단장급)으로 승진했다. 문화혁명 때인 68년 당의 방침을 비판하다가 모든 군직·관직에서 해직 당하고 사실상 연금당한 채 살았다. 73년 퉁화(通化)군구 정치위원(사단장급)으로 복권했고 총후근부장(87년)과 인민해방군 중앙군사위원(88년)을 거치며 중국 군 최고 계급인 상장(88년)까지 달았다.

한·중 수교 후엔 2000년 5월, 2004년 6월 두 차례 방한했으며 중국 국제우호연락회 최고고문이던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예방했다. 당시 한양대에서 명예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엔 김장수 주중 대사가 베이징 대사관저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 하는 등 최근까지도 한국 정부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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