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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일제시대 구석으로 밀려난 덕수궁 광명문 ‘제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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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덕수궁 고종황제 침전 함녕전 정문이었다가

일제강점기 뜯겨 구석으로 밀려나

19일 광명문 복원 공사 기공식 열어

돈덕전 선원전 권역도 단계적 복원 예정



한겨레

현재 덕수궁 안쪽 구석 석조전 신관 옆에 자격루 전시장으로 쓰이고 있는 광명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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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의 고종황제 침전인 함녕전의 정문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뜯겨 궁궐 구석으로 밀려났던 ‘광명문’이 80년만에 제자리를 찾게 된다.

문화재청은 19일 낮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옆에 자리한 현 광명문에서 ‘덕수궁 광명문 제자리 찾기’ 기공식을 열고 이날부터 복원 공사에 들어갔다. 이날 기공식에는 김현모 차장과 문화재계 인사 100여명이 참석했다.

광명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문으로 고종의 침전 함녕전 남쪽에 있었으나 1938년 일제가 궁궐 안쪽 구석으로 옮기면서 국보인 물시계(자격루)와 신기전, 보물인 흥천사명 동종의 전시장 구실을 해왔다. 문화재청은 앞서 2016년 광명문이 있던 원래 터를 발굴해 옛 광명문의 배치상태, 평면 형태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문화재청 쪽은 올해 말까지 광명문의 제자리 복원 작업을 끝내기로 했다. 또, 현재 광명문 안에 전시된 창경궁 자격루와 신기전은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흥천사명 동종은 경복궁 궐내각사터의 임시 처리장으로 옮겨져 보존처리 작업을 거치게 된다. 광명문 이전은 문화재청이 구상해온 덕수궁 복원 사업의 첫 발에 해당한다. 구한말 대한제국의 정궁으로 고종황제의 거처였던 덕수궁은 1919년 고종이 세상을 떠난 뒤 일제의 의도적인 훼손과 공원 개발로 궁역이 쪼그라들고 많은 건물들이 사라진 상태다. 문화재청은 광명문 제자리 복원을 시작으로 석조전 뒤에 있던 근대식 건축물인 돈덕전은 2021년까지, 역대 임금의 어진(초상)을 봉안했던 북쪽의 선원전 권역은 2038년까지 단계적으로 원형을 복원할 방침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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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국장화첩>(1919년)에 실린 옛 광명문의 사진. 뒤쪽에 함녕전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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