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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13년 전 오늘 최전방 부대 총기난사로 8명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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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역사 속 오늘] 13년 전 오늘 2005년 6월19일

경기도 연천군 최전방 부대서 총기난사 사건 발생, 8명 사망·2명 중상 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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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군 중면 중부전선 00부대 최전방 GP 내무반에서 벌어진 수류탄과 총기 사고로 사망한 병사들의 주검이 경기도 양주시 국군 양주병원으로 헬기로 옮겨진 뒤 군 앰뷸런스로 영안실로 이동하고 있다. 양주/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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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 경계초소(GP)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들린 건 그날 새벽 2시30분 무렵이었습니다. 오늘로부터 13년 전인 2005년 6월19일, 경기도 연천군 소재의 한 육군 보병사단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소대원 8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삽시간에 동료 8명의 목숨을 앗아간 건 당시 이 부대 소속의 22살 김아무개 일병이었습니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김 일병은 이날 경계 진지 근무 마감 시간 15분 전, 함께 근무하던 선임병에게 “다음 근무자를 깨우겠다”며 내무반으로 들어갔습니다. 김 일병은 그곳에서 잠자던 소대원들에게 수류탄을 던진 뒤 경계초소 곳곳을 돌아다니며 소총으로 44발을 난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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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 중부전선 GOP 초병들이 야간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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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일어난 곳은 비무장지대(DMZ) 내 북한군과 인접한 곳입니다. 군부대 가운데서도 가장 엄정한 군기를 요구하는 곳인 만큼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실한 철책 경계와 미흡한 총기 관리에 대한 지적이 쏟아졌습니다. 국방부 조사 결과 “내성적인 김 일병이 선임병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범행을 저질렀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로 인해 그동안 제자리걸음이었던 군내 인권 개선의 필요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사건은 결국 군 전반에 만연해 있던 구타와 가혹행위, 내무 부조리 등 악습을 개선하게 한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그날 그 사건의 기록을 다시 짚었습니다.

사건 당일

-사건 당시 상황

김 일병은 내무반에 몰래 들어가 정아무개 상병의 총을 꺼내왔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실탄을 장전하고, 수류탄 케이스에 들어 있던 수류탄을 꺼내 1차 안전핀 제거를 했습니다. 김 일병은 이어 양손에 각각 수류탄과 총을 쥐고서 내무반 앞에서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이후 김 일병은 복도를 지나면서 체력 단련장에 있던 소대장 중위를 쏘아 즉사하게 하고, 상황실 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던 이아무개 중위를 향해 총을 발사했습니다. 다행히 이 중위는 황급히 피신해 화를 면했습니다. 김 일병은 취사장을 지나면서 안에 있던 취사병인 이아무개 상병을 쏘고, 다시 복도를 돌아 상황실 쪽을 향해 사격하려다 실탄이 떨어지자 탄창을 갈아 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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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5년 6월20일 치. (※누르면 확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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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일병은 내무반으로 돌아와서 현장에서 수류탄에 의해 숨진 주검을 수습하고 부상자들을 부축하고 있던 병사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습니다. 이후 김 일병은 4명의 병사가 근무하고 있던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선임병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으나, 실탄이 떨어져 더는 발사되지 않았습니다.

김 일병은 원래 근무지인 초소로 되돌아와 태연히 경계근무를 이어갔습니다. 이 때문에 사건 초반에는 누가 범행을 저질렀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상황실에서 황급히 피신해 목숨을 구한 이아무개 중위가 범인이 군복을 입고 있었던 것을 기억해냈습니다. 김 일병을 포함한 군복을 입은 5명의 병사들은 일시 구금됐습니다. 구금된 병사들은 김 일병이 근무하던 초소에 총기를 두고 나갔으나, 나중에 다른 총기를 가지고 복귀했다는 것을 이상히 여겨 추궁한 끝에 자백을 받아냈습니다.

-오락가락 군의 발표

사건 당일 오전, 육군은 ‘언어폭력을 당했던 김 일병이 근무자를 깨우러 왔다가 잠을 자던 선임병의 얼굴을 보고서 수류탄을 던졌다’고 발표했습니다. 육군의 발표대로라면 김 일병의 우발적 범행으로 여길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생존한 병사들의 증언이 나오자 육군은 오후 김 일병의 ‘계획된 범행’이라며 발표를 번복했습니다. 이에 대해 육군은 “김 일병의 진술에서 차이가 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후 육군 조사 결과, 김 일병은 자신의 초·중학교 동창인 천아무개 일병에게 ‘수류탄을 까고 총을 쏘아 죽이고 싶다’는 말을 다섯 차례에 걸쳐 반복했다는 증언도 나왔다고 밝혔습니다.

-미흡한 초동 대처

미흡한 점은 육군의 사건 발표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총기 사고가 일어날 당시 앰뷸런스 출동이 1시간 이상 걸렸습니다. 사망한 소대장이 가지고 있던 지피 철책문 열쇠를 바로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육군 관계자는 “남방한계선 철책문 자물쇠 열쇠를 갖고 있던 소대장이 총격으로 숨져 열쇠를 찾지 못해 50분 이상 지연됐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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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열린 군의 최종 수사결과 발표장에서 공개된 경기도 연천 군부대 총기난사 사건의 현장 사진.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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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 난사 과정에서 다친 피의자 김 일병은 사건 발생 직후 검거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 김 일병보다 부상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병사들이 몇 있었지만, 치료가 늦어져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일도 있었습니다. 피해자 대부분이 과다출혈로 숨진 만큼 빠른 대처에 아쉬움이 남는 부분입니다.

군 당국의 사건 축소·은폐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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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웅 국방부장관이 국방부에서 수류탄 폭발및 총기 사고와 관련 대국민사과를 하고 있다. 김경호기자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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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부대 내 기강 관련 문제도 불거졌습니다. 사건 당일 일부 병사들은 새벽 1시(한국시간)까지 열렸던 한국과 브라질의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경기를 시청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병사들이 제 자리에서 근무를 한 것이 맞느냐’는 의문과 함께 근무 기강 해이라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게다가 김 일병이 던진 수류탄에 숨진 박아무개 상병은 본인의 잠자리가 아닌 조아무개 상병의 자리에서 발견됐고, 조아무개 상병은 내무반이 아닌 취사장에서 숨진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군은 이런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또 군 발표와 달리 두 명의 부상자가 더 있었던 사실도 추가로 밝혀졌습니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경미한 파편상을 입은 정도여서 발표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해당 부대에서 상급자와 하급자 간에 ‘뺨때리기’ 등 구타가 있었다는 부대 자체 조사 결과를 확인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인권위의 발표는 국방부가 그동안 “해당 부대에서 구타는 없었다”고 밝혀온 것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군 당국이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 한다는 비판이 잇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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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5년 6월25일 치.


김 일병 또한 사건 직후 “선임병한테서 언어폭력뿐만 아니라 ‘갈굼’(괴롭힘)을 당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울러 자신의 수양록에는 “괜히 은근슬쩍 신임(병)한테 욕도 하고 못한다고 XX했다”고 써 부대 안에서 ‘언어폭력’이 자주 발생했음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유족들의 분노

군 당국의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는 일부 유족들의 항의가 이어졌습니다. 국방부 발표에 허점이 드러나면서 육군의 사고 수습이 적절했는지 등에 대한 판단이 엇갈렸기 때문입니다.

일부 유족들의 반발로 현장 재검증이 3시간 만에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유족들은 김 일병이 범행을 재연하는 과정이 국방부의 수사 결과와 다를 것이 없다고 항의하며 참관을 거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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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근 중면 모부대 충기난사 사건으로 희생된 장병들이 안치된 분당 국군수도병원 합동분향소.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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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사건 발생 초기 국방부는 피해자들의 주검을 한곳에 안치하지 않았습니다. 유가족들이 한곳에 모이는 것을 막으려 한 것입니다. 논란이 일자 국방부는 합동분향소를 꾸렸지만 이 일로 인해 유족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습니다.

병영문화 개선의 노력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대중의 관심은 군대 내 착취 구조와 비인간적인 대우 등 잘못된 병영문화로 향했습니다. 군대 내 자살 문제 등을 연구해 온 전문가들은 ‘김 일병에 대한 선임병의 언어폭력이 일차적인 사고 원인일 수는 있지만 그 배경에는 군의 다양한 역기능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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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해병대사령부에서 해병대 병영문화혁신 긴급 지휘관 회의 및 토론회.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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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 조절의 어려움, 우울감, 불안, 불면 등으로 ‘부적응 병사’로 분류되는 이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국방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억압적 군 문화를 당연시 해오던 분위기를 바꾸려는 ‘병영문화 선진화 추진 계획’도 만들었습니다.

국방부는 총기난사 사건에서 문제가 된 ‘언어폭력’과 관련해 병사 사이에 존칭어를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아울러 2차 사건 방지를 위해 모든 부대에서 ‘소원수리’를 받아 불건전한 내무생활과 행동양식을 고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또한 병사가 부모와 친구들과 소통을 할 수 있도록 화상통화와 문자 송수신 기능을 갖춘 다기능 공중전화기 등을 설치했습니다.

그러나 국방부의 이런 조처에도 불구하고 군 부대 내에서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실치사와 사고사는 물론이고, 구타와 살인, 자살 등 낡은 군 문화에서 비롯한 사건은 오히려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국방부의 대책은 별다른 실효성이 없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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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일병의 생활기록부.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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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군 530GP 총기 사건의 피의자로 사형이 확정된 김 일병은 국군교도소에 13년째 수감 중입니다. 김 일병은 피해 병사들의 장례식 당일, 국회 국방위원회 진상조사소위 위원들을 면담한 자리에서 “나를 괴롭히지 않았는데도 숨진 사병들의 유가족에게는 만나서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김 일병은 “사망한 병사 가운데 괴롭혔던 선임병들에게는 아직도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며 “욕설을 안 들으면 하루가 편안하게 가지 않는 걸로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김 일병의 발언은 이 사건에 연루된 병사들 모두를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이 사건으로 인해 피해 병사와 유족들, 생존 장병들을 비롯한 김 일병 자신에게도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는 점입니다.

강민진 기자 mj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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