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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이케아 세무조사” 靑 게시판 이번에는 '월드컵 성토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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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전 직후 靑 게시판 북새통
“스웨덴과 전쟁” “이케아 세무조사” 황당청원
이틀 만에 스웨덴 관련 청원 1000건 넘어
평창올림픽 때는 캐나다 선수 ‘사이버 공격’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이번에는 ‘월드컵 성토장’으로 변했다. 지난 18일 러시아월드컵 대한민국-스웨덴전에서 1:0으로 패한 직후다. 이틀 만에 스웨덴과 스웨덴전 주심을 겨냥한 청와대 청원글은 1000건이 넘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은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취지로 지난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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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현지시각) 오후 러시아 니즈니고브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예선전 한국과 스웨덴의 경기에서 조현우 골키퍼가 슛을 막아내고 있다. 이날 한국은 1:0으로 스웨덴에 패했다./니즈니고브로드=오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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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과 전쟁” “이케아 세무조사” 황당 청원
청와대 청원 대부분은 패전의 울분을 해소하는 방식이다. 스웨덴전 패배 직후 “스웨덴과 전쟁을 청원합니다”는 청원이 일제히 올라온 것이 대표적이다. 청원자들은 “스웨덴은 오늘 한국에 선전포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축구에선 졌지만 (실제)전쟁은 이겨야 한다” “손흥민 선수를 징병한 후 스웨덴에 기습공격 시키라”는 황당 의견을 제시했다.

불똥은 스웨덴 가구회사 이케아(IKEA)에도 튀었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들이는 이케아가 괘씸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청원인은 “불법자금 조성, 탈세가 의심되니 이케아 세무조사를 요청한다”고 썼다. “아무래도 이케아가 한국시장에서 번 돈으로 월드컵 경기장 모양의 침대를 세운 것 같다”는 것이 근거였다. 스웨덴 대표팀이 리드 이후 경기장에 자주 쓰러지며 시간을 버는 ‘침대축구’를 했다는 점을 비꼰 청원이다. 그밖에 “이케아 광명점의 사업인가 취소 및 철수를 청원한다” “삼성전자의 이케아 인수를 청원한다”는 청원도 잇따라 올라왔다.

분노는 특히 스웨덴전 주심 ‘호엘 아길라르’에게 집중됐다. 아길라르 주심이 비디오 판독(VAR) 끝에 페널티킥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페널티킥 찬스를 놓치지 않았고 이는 그대로 결승골이 됐다. 이에 흥분한 일부는 “IT 강국 힘으로 심판의 SNS를 털자”면서 호엘 아길라르의 소셜미디어를 찾았다. 하지만 SNS를 찾는 데 실패하자 그 대신으로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몰려들었다. 이들은 청와대에 호엘 아길라르를 사형해달라” “호엘 아길라르가 스웨덴에 돈을 먹었는지 계좌 추적하라” “청와대가 피파에 공식적으로 주심 심판을 항의해달라” 등의 청원을 게시했다. 또 아길라르 주심의 국적이 엘살바도르인 것에 착안해 “엘살바도르에 전쟁 선포(선전포고)해달라”는 요청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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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한국이 스웨덴에 1:0으로 패하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스웨덴 가구회사 이케아에 대한 세무조사, 불매운동을 요청하는 글이 올라왔다./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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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슈팅을 하나도 날리지 못한 한국 대표팀도 도마에 올랐다. “패배한 선수와 감독을 사형하라”는 것이다. 실제 경기 이후 “장현수 선수를 국가대표에서 영구제명 해달라” “김신욱 선수를 퇴출 시켜달라” “신태용 감독에 대한 특검을 요구한다”는 청원이 게시됐다. “문재인 대통령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에 앉히자”는 의견도 있었다.

◇평창올림픽 때는 캐나다 선수 SNS에 ‘사이버 공격’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 때는 외국인 선수 SNS에 직접적인 공격이 이뤄지기도 했다. 쇼트트랙 여자 500m 결승전에서 우리 대표선수 최민정과 신체접촉이 있었다는 이유로 캐나다 쇼트트랙 선수 킴 부탱(24)이 표적이 된 것이다. 흥분한 일부는 킴 부탱의 SNS에 접속한 뒤 “내가 널 찾는 날엔 죽는 줄 알아라.(If I find you, you will die)” “은퇴해라. 너의 여생이 비참하길 바란다.(Retire and I hope you have a hard life)” 등의 글을 남겼다.

당시 캐나다 CBS는 “킴 부탱이 쇼트트랙 동메달리스트가 된 이후 수천 건에 달하는 폭력적인 댓글에 시달리고 있다”고 타전했고, 캐나다올림픽위원회(COC)도 “우리 선수들의 안전은 최우선 과제로 (킴 부탱 보호를 위해) 보안당국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는 논평을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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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한국-스웨덴전에서 한국이 1:0으로 패한 직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월드컵 성토장’으로 변했다./조선DB“악성 댓글로 공격하지 말자” “우리 전력이 객관적으로 떨어지는 것인데 분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지만 소수에 그쳤다. 임영진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는 “많은 사람은 분노의 원인을 외부 조건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면서 “‘특정 선수가 잘했다면’ ‘특정 심판만 아니었다면’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끼리 ‘공동의 적(敵)’을 만들어 사이버 테러 등을 벌이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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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게시판을 ‘손가락 놀이터’ 삼을 뿐인데 너무 진지할 필요는 없다는 반론도 있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특정 인물에 대해 모욕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자정작용 등을 통해 해소해야 하지만, 지금처럼 의견 표현이 자유롭게 이뤄지는 현실 자체는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청와대 측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청원 게시판을 담당하는 정혜승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은 “청와대 청원 게시판이 놀이터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장난스럽고 비현실적인 제안도 이 공간에서는 가능하고, 국민들이 분노를 털어놓을 곳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다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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