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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홍대 뮤지션들의 ‘개 친구’ 호수야, 편히 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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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애니멀피플] 유기견 돕기 콘서트 ‘안녕, 호수’

홍대 뮤지션들의 ‘뮤즈’였던 15살 리트리버

추억하기 위해 17팀의 음악인들이 뭉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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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가 반려인 이은주씨가 운영하던 가게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유독 귀가 짧아 앳돼 보였던 리트리버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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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1일, 김포의 한 반려동물 장례식장. 15살의 나이로 깊은 잠에 빠져든 리트리버 호수의 육신이 하얀 재가 되고 있었다. 호수의 생전 ‘사람’ 친구들이 화장터 앞에 서서 어깨를 들썩이고 있을 때, 공연기획자로 활동하는 한 친구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내가 호수 록페스티벌 꼭 열거야.”

암컷 리트리버 호수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밥집을 하는 이은주(45)씨의 반려견이었다. 이 씨는 현재 운영하는 식당 ‘라몽림’을 열기 전에 홍대 앞에서 ‘모과나무 위’라는 카페를 했다. 24시간 이 씨와 함께 붙어 다니던 호수도 늘 카페를 지켰다. 카페를 아지트 삼아 들락거리던 홍대 앞 뮤지션들과도 자연스레 친구가 됐다.

호수가 떠나고, 그의 친구였던 홍대 뮤지션들이 공연을 마련했다. 24일 오후 5시 서울 마포구 CJ 아지트에서 열리는 공연 ‘안녕, 호수’는 호수를 사랑했던 코미디언 김미려·이경분씨의 진행으로, ‘호수’를 주제로 노래를 만든 뮤지션 고경천을 비롯한 17팀의 뮤지션들이 출연료 없이 무대에 선다. 이날 얻은 공연 수익금은 전액 ‘호수’의 이름으로 유기동물보호센터에 기부된다. 공연 수익금을 유기동물보호센터에 전하기로 한 까닭은 호수도 한때 유기에 버금가는 어려운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2003년, 미대 졸업을 앞두고 독일 유학을 준비하던 은주 씨는 체류비를 마련하기 위해 홍대 인근 옷가게 앞 노점에 세를 얻어 액세서리 장사를 했다. 어느 날 옷가게 주인이 개를 한 마리 데려왔다. 옷가게 주인은 호수를 가게에 데려오기 몇 달 전 홍대 앞 길가에서 귀한 크림색 리트리버 새끼를, 30만원 부르는 걸 20만원에 싸게 샀다고 자랑했다. 당시 크림색 털의 암컷 리트리버는 펫숍에서 1백만원 안팎에 팔렸다. 옷가게 주인은 호수가 나중에 새끼를 낳으면 팔 심산이었다. 체격 좋은 리트리버와 함께 다니면 멋져 보일 듯한 것도 개를 산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더 문제는 리트리버를 집에서 키울 여건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옷가게 주인은 호수를 지인들의 집에 돌려가며 맡기다가 결국 가게 인근 지하실에 호수를 묶어뒀다. 지하실은 철문을 두 개 열고 들어가야 하는, 창문 하나 없는 시커먼 공간이었다. 가게 문을 열어둔 동안에는 가게 문밖에 매어두고 ‘영업부장’을 시켰다.

호수에게서는 늘 지독한 냄새가 났다. 가게 문 앞에 나와 있는 것 빼고는 외출을 않는 호수가 어디서 그렇게 냄새를 묻혀 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은주 씨는 호수를 찾아 지하실로 갔다가 냄새의 원인을 알게 됐다. 지하실의 제일 구석에 놓인 2층 철제 침대에 호수가 묶여 있었다. 따뜻한 구석 하나 없는 그곳에 붉은빛의 백열등 아래 커다란 밥그릇과 물그릇이 덩그러니 있었다. 주변으로는 온통 똥이었다. 할 일이 먹는 일밖에 없으니 많이 쌌고, 줄에 묶여 있으니 활동 반경 안에 쌀 수밖에 없었다. 몸에 구린내가 엉겨 붙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아이도 생명으로 태어났는데, 태어난 이유가 분명히 있을 텐데, 이런 방치를 하다니…. 그때 알았어요. 때리고 괴롭히는 것도 학대지만, 이렇게 방치하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때리는 것보다 더 무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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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좋은 호수는 함께 사는 고양이 ‘희야’와도 잘 지냈다. 둘이 딱 붙어 앉아 체온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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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그날도 호수가 가게 앞에 앉아 있었다. 작은 난로로 몸을 녹이고 있던 은주 씨가 “너도 이리로 올래?”라며 호수를 불렀다. 호수가 딱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평소 개를 좋아하지 않았던 그였다. 은주 씨는 그날의 일을 호수와 함께 살기 전 호수에게 베풀었던 단 한 번의 친절로 기억한다. “그런데 아마, 그때 호수가 (자기 반려인으로) 저를 찍은 것 같아요.”

은주 씨 자신도 모르는 새에 호수가 마음에 깃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임시보호자’였는데, 나중에는 ‘호수 언니’가 되었다. 호수를 처음 데려온 옷가게 주인의 행방은 알 수 없어졌다. 유학 계획은 애초에 어그러졌다. 호수가 은주 씨의 인생을 뒤흔들었다. 호수는 어릴 적 예닐곱 집에 맡겨지며 불안하게 옮겨 다녔던 탓인지 은주 씨 말마따나 “견격 형성이 제대로 안 돼” 심한 분리불안 증세를 보였다. 혼자 둘 수가 없어 24시간 붙어 다녀야 했지만 이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호수는 늘 얌전하게 은주 씨와 시공간을 공유했다. 가게에서 지낼 때 단 한 차례도 손님들을 놀라게 한 적이 없다. “이런 큰 개 태어나서 처음 만져봐요”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밥을 먹으러 갈 때면 차 안에서 기다렸고, 새벽까지 술을 마셔도 테이블 아래 배를 깔고 기다렸다. 그러다 한참이 지나고 알게 됐다. 그런 기다림 가운데 호수는 단 한 순간도 자는 적이 없었다. 어릴 적 마음속 깊이 자리한 불안 때문인지 호수는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언제까지 함께 할 것 같았던 호수도 나이를 먹기 시작했다. 관절이 아파 늘 왼쪽 뒷다리를 뻗고 앉았다. 어느 날 거품을 물고 쓰러지더니 주기적으로 경련했다. 처음에는 반년에 한 번, 나중에는 몇 달, 한 달 순으로 주기가 짧아졌지만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어야 원인을 판단할 수 있었으나 전신 마취가 부담돼 끝까지 병명을 알 수 없었다.

세상을 떠나기 사나흘 전에도 경련했다. 평소에는 경련하고 나면 미친 듯이 먹을 것에 돌진하며 마치 "살려고 애쓰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때는 그러지 않았다. 돌아다니다 화장실에서 몸을 뻗고는 힘없이 누워 있었다. 먹을 것을 줘도 먹으려 들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 바람을 쐬러 나가니 집에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틀, 볕이 좋고 바람이 좋은 날들이었다. 호수는 문 닫은 동네 카페 앞에 누워 한없이 봄바람을 맞았다. 가는 그 날까지 햇살이 아름다웠다. 떠난 다음 날 하늘이 시꺼메지더니 비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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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 은주씨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녔던 호수. 물을 무서워해 물놀이간 ‘사람 친구들’의 빈자리만 지키고 돌아왔던 어느 해수욕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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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이 끝나고 며칠 후, 공연기획자와 그 친구가 호수의 반려인인 은주 씨를 찾아왔다. “언니, 호수 록페 열자.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해줘야 할 것 같아.” 은 주 씨 가게의 단골이었던 음악 기획자는 평소에도 언젠가 호수를 위한 공연을 열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어리둥절해 하는 은주 씨 앞에서 두 친구가 말을 쏟아냈다. “호수를 위해서만 하는 게 아니라 이 공연으로 유기견들을 돕자. 호수도 어릴 때 아팠던 시간이 있었으니까 의미 있는 공연이 될 거야.”

이들은 이번 공연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제대로 된 록 페스티벌로 키우고 싶은 바람이 있다. 그랜드민트페스티벌이나 지산락페스티벌 같은, 넓은 공간에서 또 다른 ‘호수’들과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조만간 만날 수 있을까.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사진 이은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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