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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주형식의 형형색색 월드컵] '도핑 칵테일' 한 잔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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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러시아월드컵] 소치 금지 약물 스캔들 본거지, 레스토랑으로 바꿔 응원 명소돼

조선일보

레스토랑 ‘라 푼토’의 사장 아나톨리씨가 칵테일 ‘멜도니움’을 서빙하는 모습. /주형식 기자


러시아 소치의 피시트 올림픽스타디움에서 400m쯤 떨어진 곳엔 레스토랑 '라 푼토(La Punto)'가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칵테일 명소로 떠오른 곳이다. 소치 이메레틴스키 호텔 매니저 나탈랴씨는 "칵테일을 마시기 위해 일부러 소치를 찾는 유럽 관광객들이 꽤 많아졌다"고 했다.

지난 16일(한국 시각) 오후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월드컵 B조 첫 경기에 앞서 이 레스토랑을 찾았다. 스페인 유니폼을 입은 팬 수십 명이 다양한 술을 마시며 응원곡을 부르고 있었다. 테킬라에 핫소스를 넣은 '샘플 B',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즐겨 마셨다는 독주 압생트에 에너지 드링크를 섞은 '멜도니움'이 이곳의 대표적인 칵테일이다. 원래 샘플 B는 금지 약물 양성 반응을 보인 선수가 반도핑 기구에 재검사를 요청하면서 제출하는 샘플을 뜻한다. 멜도니움은 러시아 여자 테니스 스타 샤라포바가 2016년에 복용했다가 걸린 금지 약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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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레스토랑이 칵테일에 도핑 테스트나 금지 약물을 연상시키는 이름을 붙인 데는 이유가 있다. 러시아는 2011년 말부터 소치에 도핑 실험실을 차리고, 금지 약물과 술을 섞은 일명 '귀부인(Duchess) 칵테일'을 개발해 동·하계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에게 복용시켰다. 오염된 소변 샘플 등을 폐기하거나 바꿔치기하는 수법도 썼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자 러시아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국가 자격으로 출전하지 못하도록 징계했다. 도핑 테스트와 심사를 거친 선수들이 개인 자격으로만 참가할 수 있도록 했다.

2015년 봄, 도핑 실험실이 있던 소치의 건물에 들어선 레스토랑이 라 푼토다. 주인 아나톨리씨는 "건물에 남아 있는 어두운 역사를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특이한 칵테일을 개발했다"고 했다. '도핑 스캔들'의 오명을 마케팅에 활용한 것이다. 작은 잔에 담긴 샘플 B를 마셔봤다. 핫소스의 매운맛이 살짝 돌면서, 테킬라의 독한 기운이 밀려왔다. 멜도니움은 소주에 레몬즙을 넣은 맛이 났다. 스페인 팬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함께 잔을 비웠다. 월드컵이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순간이었다.




[소치(러시아)=주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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