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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5 (토)

“獨 임금상승 막고 유연 근로할 때… 佛 좌파국회 주35시간 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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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프랑스는 처지고 독일은 앞서갔나]<2> 佛 ‘렉세코드’ 디디에 회장 분석

동아일보

프랑스 경제연구소 렉세코드의 미셸 디디에 회장이 지난달 31일 파리 사무실에서 기자에게 프랑스가 독일에 뒤처진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는 여전히 경쟁력을 잃고 있다”며 우려했다. 파리=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프랑스는 이웃 나라 독일과의 경제력 격차가 벌어지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은 그 불안감에 기초한다. 2007년부터 10년 넘게 ‘프랑스와 독일의 역전’을 연구한 프랑스 경제연구소 렉세코드의 미셸 디디에 회장(78)을 지난달 31일 파리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프랑스 경제가 왜 경쟁력을 상실하게 됐는지 분석했고 2011년 ‘프랑스와 독일의 경쟁력 격차’란 책을 내 화제가 됐다.

―프랑스와 독일의 경쟁력은 왜 차이가 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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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으로 근로기준법에 큰 차이가 있었다. 프랑스는 2000년대 주당 근로시간을 35시간으로 줄였다. 독일은 임금 상승을 억제하면서 근로조건의 유연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꿨다. 완전히 방향이 달랐다. 또 1999년 유로화가 출범됐다. 그 전에는 프랑화의 통화가치가 평가절하돼 프랑스는 무역조건을 개선할 수 있었으나 유로화 통합으로 통화가 같아지니 생산비가 늘어 경쟁력 하락이 두드러져 보이게 됐다. 프랑스는 아직도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저서에서 독일경제의 경쟁력은 연구개발 투자, 산학연의 활발한 협력이라고 언급했다.

“프랑스도 연구개발은 하지만 이는 연구를 위한 연구다. (독일처럼) 생산을 위한 연구가 프랑스에는 없다. 중요한 건 생산비가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은 생산비가 높은 나라다. 그런데 추세적으로 생산비 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독일에서 내려가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에선 주당 근로시간이 35시간으로 바뀌며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비싸졌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인한 문제는 뭐고, 어떻게 풀어야 하나.

“마뉘엘 발스 전 총리(2014∼2016년 재임)가 전문가들을 모아 어떻게 유연성을 높일까 연구했다. 이들은 회사 내부에서 (근로 여건을) 더 협의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냈다. 법에 최저임금과 시간외수당의 가산금 비율이 지정된 상태에서 아무리 노조, 기업이 협의해 임금을 내리는 결정을 해도 법에 저촉될 수밖에 없었다. 또 사람들을 해고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이제 각사 이해관계자가 협의해 규정을 바꾸면 해고가 간편해진다. 이런 변화는 혁명적 수준은 아니다.”

―주당 35시간 근무 규정이 어떻게 생겨났나.

“1995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 때 알랭 쥐페 총리가 경제개혁을 하려 했더니 노조가 파업으로 난리를 쳤다.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시켰다. 총선에서 좌파 사회당은 ‘35시간 일하자’는 슬로건을 내놨다. 같은 월급을 받으며 적게 일하는 정책으로 사회당이 1997년 총선에서 승리했다. 좌파 국회는 큰 콘퍼런스를 열어 회사들을 모았다. 리오넬 조스팽 당시 총리는 이 자리에서 ‘이제 35시간만 일하고 월급은 기존과 같게 준다’는 식으로 선언했다. 조합원들은 물론 좋다고 했고 회사 측은 다 나가 버렸다.”

―한국 정부는 근로 최장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려 한다. 그런데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신생 기업들이 있다.

“시간뿐 아니라 월급 휴가 등도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조세도 물론이다. 과거에는 스타트업을 세운 뒤 팔 때 매도가와 당초 가격의 차액 중 60%를 조세로 냈다. 이렇게 하면 누가 스타트업을 프랑스에서 세우겠나. 그래서 마크롱 대통령이 이 조세 비율을 30%로 내렸다. (마크롱 대통령의 노동개혁으로) 이제 해고가 쉬워졌고 근무 시간이 유연하게 조정된다.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만든 합의 안에서 조정할 수 있게 됐다.”

―저서에서 독일 제조업의 강점을 설명했다.

“독일은 제조업에 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제조업이 발전했다. 프랑스는 산업 사양화로 인한 지역불균형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지방에서 제조 기반이 없어지니 사람들은 금융업, 스타트업 등 일자리가 있는 대도시로 이동한다. 사회가 골고루 발전하지 않으니 지방이 비어가고 있다. 지역 기반 제조업이 생겨야 한다.”

―요즘 프랑스 경제의 고민은 무엇인가.

“이민 문제가 굉장히 중요한 경제 문제가 됐다. 이민자가 있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으나 보수적인 이들은 이민 유입을 꺼린다. 이민자들이 프랑스 제조업 종사자들의 경쟁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민자가 오면 바로 일할 수 없으니 교육시키는 데 돈이 든다. 이민자들이 살 곳도 마련해줘야 한다. 보안에도 돈이 든다. 단기적으로는 문제인데 장기적으로는 경제에 기여할 것이다.”
:: 미셸 디디에 렉세코드 회장 ::△1962년 프랑스 에콜 폴리테크닉 졸업
△1965년 국립통계경제대학원(ENSAE) 졸업
△1990∼2008년 렉세코드 소장
△1997∼2012년 총리 산하 경제분석위원회위원
△2011년 제릴리-마리모상 정신과학·정치학 아카데미 부문 수상
△2008년∼현재 렉세코드 회장
△2015년∼현재 단체협약 위원회 위원
파리=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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