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혹사로 망가지는 눈과 귀…이것도 진화의 과정일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곽노필의 미래창]

문명 혜택속 피곤해진 시·청각

30년후 10억명 실명 위험 직면

기기와 한몸이 된 인간은 뭘까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눈은 커지고 피부는 까매지며, 눈꺼풀은 두꺼워진다." 몇년 전 한 그래픽디자이너가 우주생활시대를 가정해 그려본 미래 인간의 얼굴이다. 예측의 과학적 근거와 상관없이 인간 진화의 미래를 생각하게 해주면서 화제가됐다. 인간은 지금 어떻게 진화해가고 있을까? 진화론이 우리에게 던지는 숙명같은 질문이다.

수백만년 전 유인원에서 분리된 뒤 현생인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진화를 이끌어온 동력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문명이 탄생하고부턴 문명의 영향력이 커졌다. 문명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인간의 변화도 빨라졌다. 1만년 전 농업혁명이 물꼬를 트고, 250년 전 산업혁명이 봇물을 일으켰다. 지난 150년 사이 인류의 평균 신장은 10cm 이상 커졌다. 수명은 1세기만에 30~40살에서 70살로 거의 두배나 늘어났다. 거기엔 숱한 동물과 식물의 희생이 동반했다. 한 연구팀은 문명 탄생 이후 야생 포유류의 83%, 식물의 절반이 절멸했다는 추정치를 내놓았다.

문명은 인간의 감각기관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감각기관은 인간이 외부 세계와 소통하는 수단이다. 정착생활을 하면서 가장 먼저 후각기관이 퇴화했다. 야생시절에 비해 후각을 쓸 일이 적어졌기 때문이다. 음식을 익혀 먹으면서 돌출했던 주둥이와 턱도 쑥 들어갔다.

퇴화되는 것도 있지만 혹사 당해서 망가지는 감각기관도 있다. 문명은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것들을 누리고 경험할 수 있게 해줬다. 가장 고달파진 감각기관이 눈과 귀다. 시각은 우리가 얻는 외부 정보의 80% 이상을 책임지는 감각기관이다. 그 다음 10% 정도는 청각을 통해 얻는다. 그만큼 시각과 청각은 인간의 삶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영장류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도하게 사용하다 보면 무엇이든 망가지는 법이다.

한겨레

한 그래픽디자이너가 상상한 10만년 후 우주생활 시대의 인간. Nickolay Lamm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현재 청력 장애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4억6600만명에 이른다. 전세계 인구의 6%다. 2050년엔 두 배로 늘어 약 10억명이 청력 장애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한다. 10명에 1명꼴이다. 원인이 뭘까? 우선 인구 증가와 고령화를 들 수 있다. 인구와 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청력이 퇴화되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인간 문명으로 인한 것이다. 자동차, 기계, 미디어 등 문명이 빚어내는 소음들이 일상적으로 귀를 괴롭힌다. 세계보건기구는 12~35살 젊은이 11억명이 청력 장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경고한다. 요즘 급증하는 이명 증세의 한 원인도 잦은 소음 노출이다.

눈이 처한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정보기술 제품이 본격 보급되기 시작한 20세기 후반 이후 근시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브라이언홀든시력연구소는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경우 30년 후엔 전세계 인구의 절반이 근시, 인구 10명 가운데 1명이 실명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놨다.

요인이 뭘까? 무엇보다 야외활동 시간이 크게 줄었다. 급격한 도시화의 결과다. 책상 위 피시나 책, 손안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눈 근육이 손바닥 거리에 고정돼 가고 있다. 진학경쟁이 치열하고 정보화 인프라가 잘 돼 있는 동아시아가 가장 심각하다. 이들 도시의 10대 청소년들의 80% 이상이 근시다. 수십년 사이에 근시비율이 3배 이상 높아졌다. 12~18살 한국 청소년의 12%가 실명 위험을 걱정해야 하는 고도근시라는 통계도 있다. 후성유전학은 달라진 생활환경에서 얻어진 이런 특성들이 유전자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인간 문명은 안경, 보청기 등으로 망가지는 감각기관을 보완해 왔다. 그런데 기술 발전 덕에 타고난 것보다 더 뛰어난 감각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기기들이 등장하고 있다. 캐나다의 한 기업은 2년후를 목표로 시력 2.0보다 3배나 더 좋은 시력을 구현해주는 이식형 렌즈를 개발중이다. 보청기는 이제 인공지능 기술로 사람 목소리와 주변 소음을 구별해 들려주는 수준에 이르렀다.

한겨레

1970년대 미국 인기드라마 ‘600만불의 사나이’ 한 장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망가진 기관을 보완하고 증강해주는 장치들은 갈수록 더 정교하고 강력하게 인간과 결합해갈 것이다. 한 세대 전 인기를 끌었던 ‘600만불의 사나이’나 ‘소머즈’의 주인공같은 기계인간이 공상에서 현실로 넘어오고 있다. 미래의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가 아닌, 기술과 결합한 제3의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이들은 과학기술의 힘으로 지력과 근력, 수명 등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것이다. 이는 인간 능력의 향상일까? 이것 역시 인간 진화의 과정일까? 이를 추구하는 트랜스휴머니즘은 불가피한 것일까? 물론 인간에겐 원칙적으로 다른 선택지가 있다. 가능한 한 충분하고 쾌적한 야외활동을 할 수 있는 생활 환경을 회복하는 것이다. 대신 지금과 같은 기술문명의 편의와 효율은 어느 정도 자제해야 한다. 지금의 인류 문화는 과연 그런 조절 능력을 갖고 있을까?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곽노필의 미래창 바로가기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