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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냉철·이성적인 스웨덴 사람도 축구하는 날이면 '노란 악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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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러시아월드컵] 이정규 駐스웨덴 대사가 말하는 '스웨덴과 축구'

조선일보

이정규 駐스웨덴 대사


스웨덴이 2006년 독일 대회 이후 12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는다. 1000만이 조금 넘는 인구에도 16개 남자 프로축구팀, 12개 여자 축구클럽을 포함해 전국에 수백 개 축구클럽이 활성화된 북구의 강호인 만큼 러시아월드컵에 대해 갖는 관심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스웨덴 사람들은 축구를 아이스하키, 스키, 핸드볼과 함께 4대 스포츠 중 하나로 생각한다. 실내 종목인 핸드볼을 제외하면, 하계 종목은 축구가 유일한 셈이다. 자국 프로리그가 시작되는 3월 말이나 4월 초가 되면 수만 명의 스톡홀름 시민이 응원 팀 유니폼을 입고 10여㎞에 이르는 도심을 행진한다.

북유럽 라이벌인 덴마크와의 A매치가 열린 6월 2일. 스톡홀름 시내 곳곳의 펍과 도심에서 스웨덴 사람들이 덴마크인들과 경쟁하듯 노래하고 응원전을 펼쳤다. 공공질서를 철저히 지키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평소 스웨덴 사람들에게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축구는 원칙주의자 스웨덴 사람까지 무장해제시키는 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스웨덴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 선수는 유럽 주요 리그를 거친 후 미국 LA 갤럭시에서 뛰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다. 195cm의 장신으로 민첩하게플레이 하는 모습, 독특한 언행 등으로 세계적으로도 많은 팬을 갖고 있다. 그의 아크로바틱한 플레이가 어린 시절 배웠던 태권도에서 나왔다는 얘기도 있다.

얼마 전만 해도 스웨덴의 최대 관심사는 과연 즐라탄이 국가대표에 합류할 것인가였다. 결국 그가 대표팀 명단에서 빠지자 비난 여론이 크게 일 법도 한데, 스웨덴 사람들은 그 상황을 대부분 납득한다. 경험 많은 베테랑도 중요하지만, 세대교체 중인 국가대표팀이 젊은 패기로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성장할 기회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즐라탄이 없어도 스웨덴 축구가 저력이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유럽 지역예선에서 이탈리아를 1대0으로 격파한 것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당시 세바스티안 라르손(Sebastian Larsson)이 흥분해 생방송이던 TV 중계석에 들이닥친 장면은 지금도 스웨덴 사람들에게 생각만 해도 웃음 나는 장면으로 기억된다. 이탈리아는 당시 패배에 아직 앙금이 남아 있는 듯하다. 스웨덴 국경절(6월 6일)을 하루 앞두고 스웨덴 신문 중 한 곳(메트로紙 예테보리 에디션)을 통해 스웨덴 국경일을 축하하면서, 월드컵에서는 스웨덴을 제외한 모든 나라를 응원하겠다는 내용의 전면광고를 내보내기도 했다.

한국과의 1차전에 대해 스웨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겉으로는 겸손하게 현재 대표팀을 높게 평가하지 않으면서도 자국 축구팀의 저력에 대해선 상당히 믿는 것 같다. FIFA 랭킹상 한국이 스웨덴보다 훨씬 하위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길고 짧은 것은 재 봐야 아는 것이고 경기는 해 봐야 아는 것이다. 월드컵 시즌인 요즘, 스웨덴 외교가 사람들과 축구 얘기를 할 때 내가 항상 빼놓지 않는 말이 있다.

"축구공은 둥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아는가?"

역사적으로 한국과 스웨덴은 축구 대결을 펼친 적이 많지 않다. 월드컵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외교부 축구동호회에서 활동해 본 내게도 점점 흥분이 일어난다. 스웨덴에서 재외 동포들과 함께 모여 '파이팅 코리아'를 외치면서 열심히 응원할 계획이다. 서로에게 새로운 도전이 될 이번 경기에서 양 팀 모두 각자 힘과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멋진 경기를 펼치길 바란다. 또한 이번 경기가 양국 국민이 스웨덴과 한국의 축구, 그리고 문화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정규 駐스웨덴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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