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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K팝 열전] "이겨놓고 싸웠다" 방탄소년단, 빌보드 석권의 숨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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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보드 앨범 차트 1위, 싱글 차트 10위… 韓 가수 최초·최고 기록
한국 자본과 음반 제작 시스템으로 미국 팝 시장 흔들어
열성 팬 ‘아미’의 든든한 지지…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라, 이겨놓고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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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빌보드뮤직어워드에서 소셜 아티스트상을 받은 방탄소년단./빌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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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 1위에서 6위, 14위로, 싱글 차트인 ‘핫100’에서는 10위에서 51위, 48위로 떨어졌다. 1위 수성과 1위로의 진격은 일어나지 않았다. 안타까운가? 그럴 필요 없다. 여기서 중요한 건 흐름이 아니다.

방탄소년단 ‘LOVE YOURSELF轉 Tear’의 빌보드 기록은 단순한 숫자에 머물지 않는다. 이 앨범이 1위에 올랐다는 사실은 팝 산업의 역사에 다시 한 번 균열이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 팝페라 그룹 일 디보 이후 12년 만에 정상 석권… 실제로는 더 큰 의미

빌보드 차트는 음악 시장의 다우지수와 같은 존재다. 메인 차트인 빌보드 200과 핫 100을 통해 미국 음악 시장의 흐름을 매주 보여준다. 이를 통해 ‘평가’와는 상관없는 ‘수치’로서의 팝 역사를 정리해나간다.

인터넷의 등장 이후 진행되고 있는 음악 시장의 블록화, 로컬화를 통해 영미권 팝이 세계 시장에서 갖는 영향력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빌보드가 여전히 권위를 잃지 않고 있는 이유는 그렇게 바뀌고 있는 산업적 요소들을 그때그때 적용하여 차트를 만들기 때문이다.

20세기까지 음반 판매량만을 집계하던 빌보드 200은 현재 판매량, 다운로드, 스트리밍을 총합한다. 각각의 요소가 가중치가 다르다. 스트리밍 1500회가 음반 1장과 같은 비중을 갖는 식이다. 싱글 차트는 다운로드, 스트리밍, 미국 내 라디오 방송 횟수, 유투브 조회 수까지 반영한다. 이러다 보니 한국의 차트들과 같은 편향된 흐름이 나올 수 없다. 권위란 하루아침에 세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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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은 미국 빌보드뮤직어워드에서 ‘페이크 러브’의 컴백 무대를 가졌다./빌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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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YOURSELF轉 Tear’는 이런 빌보드에서 1위로 진입했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바로 오른 것이다. 비영어권 언어로 된 음반으로는 팝페라 그룹 일 디보의 ‘Ancora’에 이어 12년 만의 1위라고 하지만, 내면을 뜯어보면 이를 능가한다. 일 디보의 앨범은 ‘아메리칸 아이돌’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사이먼 코웰이 제작한 음반이다. 소니 뮤직을 통해 배급됐다. 즉, 미국 자본과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음반이다. 단지 팝페라라는 특성상 멤버들의 국적이 미국이 아니었을 뿐이다.

하지만 ‘LOVE YOURSELF轉 Tear’는 철저히 한국 자본에 의해 제작됐다. 모든 멤버들이 한국인임은 물론이고 프로듀싱을 포함한 제작 과정 일체가 한국 시스템을 통했다. 즉, 이 음반의 빌보드 정복은 단순히 ‘비영어권 언어’ 음반을 넘어 ‘비영어권 제작’ 음반이 미국 시장의 정점에 우뚝 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도 백인, 흑인, 히스패닉이 아닌 동양 청년들의 음반이 말이다.

◇ 국적을 초월한 팬 네트워크, ‘아미(Army)’가 활동을 시작하다

굳이 인종을 언급하는 이유는 빌보드, 나아가 미국 팝 시장의 보수성 때문이다. 애초 빌보드는 백인들의 차트로 시작했다. 로큰롤의 시대를 거치며 흑인과 백인이 한 차트에 머물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히스패닉 인구가 증가하며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같은 라틴계 뮤지션들이 시장에 편입됐다. 그러나 동양인의 자리는 나지 않았다. 디 라이트, 린킨 파크 등 백인 중심 팀의 멤버로 머물렀을 뿐이다.

LA 교포들이 중심이 된 파 이스트무브먼트가 ‘Like A G6’으로 핫100 정상을 밟은 데 이어 방탄소년단은 빌보드 200의 1위에 올랐다. 방탄소년단의 성과는 그들의 앨범에 한국어 가사가 포함됐으며 미국 국적을 가진 멤버가 한 명도 없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건 물론이다. 이는 K-팝의 선전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팝 시장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방탄소년단은 이끌어냈다.

‘Fake Love’가 핫100에서 10위로 진입해서 51위로 빠르게 내려갔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이들의 성공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음반 차트와 달리 싱글 차트에는 라디오 방송이라고 하는, ‘올드 미디어’를 통한 소비가 변수가 된다. 익히 알려졌듯 방탄소년단은 데뷔 이전부터 SNS를 활동의 주 무기로 삼아왔다.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전진 기지 삼아 그들은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 북미권의 청년들에게 빠르고 강력하게 어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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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인 성과를 내고 'LOVE YOURSELF轉 Tear’ 앨범 활동을 마무리한 방탄소년단./빅히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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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한국 팬덤 특유의 충성에 가까운 응원 문화는 ‘아미(Army)’라는 이름의, 국적을 초월한 팬 네트워크로 전파됐다. SNS를 비롯한 뉴 미디어의 세계에서 방탄소년단은 이미 저스틴 비버를 잇는 틴 팝 히어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빌보드 핫 샷 데뷔는 북미권 아미의 전폭적인 지지로 가능했던 것이되, 아직 아미의 힘만으로는 올드 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중원’의 두툼한 벽을 뚫지는 못했음을 2주차 순위를 통해 말해준다.

이 벽은 그들은 한계일까? 방탄소년단도 ‘강남스타일’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싸이의 전철을 밟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싸이와 ‘강남스타일’ 중 방점은 후자에 찍힌다. 즉, ‘강남스타일’은 2012년 최고의 히트곡이었으되, 싸이 그 자신을 브랜딩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그렇지 않다. 이번 앨범 이전부터 밀레니엄 세대가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의 자리에 오르는 데 성공했고 'LOVE YOURSELF轉 Tear’는 그에 따른 결과의 하나다.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라 이겨놓고 싸울 수 있는 상황이다. 방탄소년단에게 원 히트 원더 이상의 행보를 낙관할 수 있는 이유다. 그들의 새 음악이 발표될 때마다 우리는 고개를 들어 빌보드를 주시할 수밖에 없으리라. 팝의 역사가 바뀌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목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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