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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생생확대경]'등급경쟁 주의보' 신평사 공든탑 무너뜨려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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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유재희 기자] 최근 국내 신용평가사들의 등급 기조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신용등급이 상향 조정된 기업 수가 하향 조정된 업체 수를 6년 만에 앞질렀다. 등급 하향 기조가 막을 내리고 상향 기조로 전환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로 볼 수 있다.

13일 크레딧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신용등급(등급·아웃룩 등) 상향 건수는 총 52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63% 급증했다. 신용등급 상하향 배율도 1배를 넘어섰다. BBB급 이상 투자등급에서의 상·하향배율(Up·Down Ratio)은 4월 1.0배에서 5월 말 1.33배로 크게 상승했다. 등급상하향배율은 등급 상향조정 기업 수를 하향조정 기업 수로 나눈 것으로 0에 가까울수록 하향 조정이 많다는 의미다. 2015년 0.2배, 2016년 0.58배, 지난해 0.65배를 기록하며 하향 기조가 뚜렷했지만 올 들어 상향 기조로 전환한 것은 물론 그 속도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수년간 등급 하향 조정이 여러 차례 이뤄지고 구조조정 성과가 가시화되면서 철강, 해운, 건설 등 주요 취약업종들의 실적이 개선되기 시작한 점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다만 미국의 금리 인상 본격화와 보호무역주의로 국내외 경기에 대해 경고가 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급격한 변화가 다소 우려스러운 게 사실이다. 특히나 신평사들이 등급 기조 전환 시점에서 이슈 선점을 위해 경쟁적으로 등급을 올리는 경우 등급 쇼핑이나 부실 평가 논란이 또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아직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OCI(010060) 미래에셋대우(006800) SK하이닉스(000660) KB증권 등 이슈 기업에 대해 신평사들이 경쟁적으로 등급을 올리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과거 신평사들은 기업의 신용을 후하게 평가하고, 기업은 해당 신평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속칭 ‘등급장사’가 성행하면서 신평사 업계는 등급 쇼핑, 뒷북·부실 평가, 등급 인플레 등 불명예스러운 오명에 시달려왔다. 특히 2013년 동양그룹 계열사들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기업어음(CP) 투자자들이 막대한 손실을 본 ‘동양 사태’ 이후 여론의 집중포화 속에 신뢰는 바닥까지 추락했고 금융당국의 제재에 사기마저 꺾였다.

이후 신평사들은 위상을 되찾기 위해 등급 정상화와 전반적인 제도 개선에 나섰고, 오랜 시간이 흘러 시장에서도 이러한 노력을 인정했다. 이데일리가 올 상반기 진행한 27회 신용평가 전문가 설문(SRE) 조사 결과 시장 전문가들은 국내 신용평가 3사가 발표하는 신용등급 신뢰도를 5점 만점에 3.78점으로 평가했다. 이는 SRE 조사를 시작한 2005년 이후 역대 최고치였다.

하지만 최근 중국 국유기업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부실 평가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등급 경쟁까지 벌어지면 힘들게 쌓아온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은 한순간일 수 있다. 등급 하향 경쟁도 문제지만 상향 경쟁의 경우 일감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을 수 있다. 아직은 신평사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수준으로 판단된다. 신평사들이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경쟁사의 등급이 아닌 기업의 재무제표와 비지니스 모델, 국내외 경제에 더욱 집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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