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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경북 문경]선비들의 발자취 따라...한고개, 두고개 옛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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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재 초입 위치한 국내 유일 옛길박물관

길에대한 다양한 콘텐츠 품고 손님맞이

겸재 정선이 감탄했다는 교귀정 아래 용추

시시각각 빛에 따라 달라지는 경치 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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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聞慶)새재는 복된 길이다. 새재는 조선조에 과거라는 국가고시가 시작되고 수많은 공시생이 경사스러운 합격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대하며 넘어갔던 길이다. 한양으로 가는 길은 여럿 있었지만 영주와 단양 사이에 있는 죽령(竹嶺)을 넘으면 ‘죽죽’ 미끄러지고 영동군과 김천시 경계의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떨어진다고 해서 굳이 새재를 택했다. 하지만 새재는 험한 길이었다. ‘하늘을 나는 새도 쉬어 넘는다’고 하는 소리가 있을 정도니 도로 사정이 안 좋았을 옛날, 이곳을 넘기란 과거 공부만큼이나 고생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넘기 힘들었던 그 고개는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길 중 하나가 됐다. 2015년 생태관광자원 부문에서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상을 받았다고 좋은 관광지이고 못 받았다고 해서 나쁜 관광지일 리 없지만 그래도 선정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수렴을 거쳤다면 신빙성의 순도가 낮을 리 없다. 새재로 들어가는 초입 오른편에는 옛길박물관이 있다. 김귀남 해설사는 “길에 관한 다양한 콘텐츠를 품고 있는 우리나라 유일의 길 박물관”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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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지나 새재로 이어지는 길가에는 은행나무·단풍나무를 가로수로 나란히 조성해놓았다. 가을이 오면 나무들은 잎새를 노란색·붉은색으로 염색하고 다시 이곳을 찾는 나들이객들의 눈을 홀릴 것이다. 가로수 넘어 잔디밭에 이름 모를 나무들이 듬성듬성 식재돼 있어 수종을 물었더니 김 해설사는 “사과나무인데 인공적으로 식재한 것이 아니라 원래 과수원이 있던 자리라 옮겨 심지 않고 그대로 놓아둔 것”이라고 말했다.

곧이어 나타나는 조령 관문 중 첫 번째 관문 주흘관은 300년 전에 축성된 문루다. 관문과 성곽의 형태를 갖춘 사적 제147호 주흘관을 뒤로하고 30분가량 더 걸어 오르면 교귀정이 모습을 드러낸다. 관찰사가 임명을 받으면 전임자와 업무를 인수인계하던 곳으로 1470년 축조했다가 불타 없어진 것을 1999년에 복원했다. 교귀정 앞에는 굵은 소나무 한그루가 길 가는 나그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려는 듯 상반신을 구부리고 있는데 이 모습이 가관이다. 소나무 가지는 위쪽에서 보면 새 모양을 하고 있고 아래쪽에서 보면 그냥 평범한 소나무일 뿐이다.

교귀정 아래쪽에는 용추가 있다. 가뭄이 길어지면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김 해설사는 “이곳은 겸재 정선이 현감으로 재임하던 중 진경산수로 표현했을 만큼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라며 “최근에는 사진작가 김중만씨와 함께 방문했었는데 ‘시시각각 바뀌는 빛에 따라 달라지는 경치가 일품’이라며 떠날 줄을 몰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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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에는 두 곳의 용추가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가은읍 완장리에 있는 용추를 용추계곡으로, 새재에 있는 이곳은 그냥 용추라고 부른다. 이곳 용추는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 촬영 때 궁예가 죽는 마지막 장면을 찍은 곳이기도 하다.

조선왕조는 임진왜란 이후 50년도 안 돼 또 병자호란으로 국토를 유린당했다. 그렇게 뜨거운 맛을 두 번이나 보고 나서 1708년(숙종 34년) 석성(石城)과 함께 세운 관문이 바로 이곳이다. 제1 관문인 주흘관에서 3㎞ 정도 더 가면 제2 관문인 조곡관이 나온다. 1관문과 3관문의 딱 중간쯤이다.

조곡관이 문경 조령의 중간에 자리 잡은 까닭은 임진왜란 후에 충주사람 신충원이 이곳에 성을 쌓으면서부터다. 신충원은 숙종 34년(1708) 조령산성을 쌓을 때 매바위 북쪽에 있던 옛 성을 고쳐 쌓았고 이를 중성으로 삼아 조동문이라고 이름 붙였다. 제3 관문인 조령관을 보려면 이곳에서 3.5㎞를 더 올라가야 한다. 문경새재 정상에 자리 잡고 있는 3관문 조령관은 북쪽에서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한 용도로 축성됐다. 선조 때 공사를 시작, 숙종 때 중창한 3관문은 중요한 교통로 역할을 했지만 1907년 불이나 소실됐다. 하지만 홍예문과 누각, 좌우의 석성 135m는 지난 1976년 복원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글·사진(문경)=우현석객원기자 사진제공=문경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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