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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마법'처럼 꺼지는 PC오프…금융권 주 52시간 조기 도입 잰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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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의무지만 올해로 앞당겨 시행

보험·카드 등 제2금융권이 앞장서 적용

회사원 김환국(35)씨가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회사가 아니다. 김씨는 헬스장에서 1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회사에 간다.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를 켜는 시각은 오전 9시 3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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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손해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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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직장인 롯데손해보험은 지난 4월 주 52시간 근무제를 조기 도입했다. 이를 위해 시차출퇴근제와 PC오프제를 동시에 시행 중이다.

이 회사 직원들은 오전 8시부터 10시 30분까지 30분 단위로 본인의 출근 시간을 정할 수 있다. 출근 시간에 따라 퇴근 시간도 각각 달라진다. 오전 9시 30분에 출근하는 김씨의 퇴근 시간은 오후 6시 30분이다.

컴퓨터도 이에 맞춰 작동한다. 김씨는 "아무리 일찍 출근해도 오전 9시 30분 전에 컴퓨터 전원을 켤 수 없다"고 말했다.

퇴근을 앞둔 오후 6시 25분에는 컴퓨터 화면에 종료를 예고하는 초시계가 나타난다. 오후 6시 30분이 되면 자동으로 컴퓨터 전원이 꺼진다.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다음 달 1일부터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된다. 연장·휴일 근무를 포함해 주당 최대 68시간이던 근로시간이 최대 52시간으로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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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2월 27일 전체회의를 열고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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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도 있다. 은행·보험·증권·카드 등 금융권은 내년 7월까지 1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금융업은 근로시간의 제한이 없는 특례업종이었다가 올 초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제외된 사정을 고려한 조치다.

금융권에선 자율적으로 주 52시간제를 조기 도입하는 곳이 잇따르고 있다. 내년 7월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사회적인 분위기에 맞춰 주 52시간제를시행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다.

특히 보험 업계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롯데손보와 현대해상화재보험은 이미 주 52시간제를 적용하고 있다. 현대해상은 '시간 외 근무 가이드라인'을 사규에 반영하고, PC오프제를 시행 중이다.

교보생명·AXA손해보험·AIG손해보험도 다음 달 1일 주 52시간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PC오프제·유연근무제·탄력근무제 등을 다양하게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조기 도입은 시행착오를 미리 점검하는 장점이 있다. 내년 6월까지 금융권의 주 52시간 도입 여부는 근로기준법과 상관없는 회사 자율이다. 혹시 문제가 생겨도 법 위반으로 처벌은 받지 않는다.

일부 신용카드사들도 주 52시간 근무제를 조기 도입한다. 삼성카드는 다음 달 1일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는 방침을 세우고 관련 부서를 통해 세부안을 조율하고 있다.

KB국민카드는 지난 4월부터 직원 100명으로 시범단을 구성하고 시차출퇴근제를 적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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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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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단에 포함된 이유선(40)씨는 “예전엔 중학생 자녀들을 깨워만 놓고 부랴부랴 출근했다면 요즘엔 등교까지 챙긴 후 여유 있게 집을 나오고 있다”며 “복잡한 출근시간대(러시아워)를 피한 덕분에 시간 여유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퇴근 이후의 삶도 달라졌다. 이씨는 “야근이 일상이던 시절에는 엄두조차 못 냈던 백화점 문화센터 수업을 지금은 들을 수 있게 됐다”며 "일찍 퇴근하는 직원들은 운동도 많이 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회사는 시범단의 효과를 면밀히 분석한 뒤 올 하반기 중 전 직원을 대상으로 주 52시간제와 시차 출퇴근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은행권에선 금융산업노동조합과 사용자협의회가 주 52시간제 조기 도입을 위한 노사 협상을 진행 중이다. 다음 달부터 당장 적용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지만, 가급적 올 하반기 중에 주 52시간제를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노사 협상에서 쟁점은 정보기술(IT) 관련 부서와 공항 영업점 등 주 52시간제의 예외로 인정하는 범위를 어디까지 하느냐다.

IBK기업은행은 독자적으로 주 52시간 근무제를 조기 도입하기로 했다. 시행시기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다음 달부터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은행 측은 설명했다.

이 은행 관계자는 "지난 3월부터 태스크포스팀을 가동하고 있다"며 "직원들 사이에서 퇴근 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주정완·권유진·정용환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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