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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Science &] 누구 말이 맞아요? 흡연트렌드 바꾼 궐련형 전자담배 유해성 `진실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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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담배는 이제 그만둔다(I Quit Ordinary Smoking).'

대표적인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IQOS)'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지난해 5월 필립모리스가 아이코스를 한국에 들여온 이후 올해 들어 3월 말 현재 국내에서 팔린 아이코스는 1억6300갑에 달한다. 이 같은 인기몰이가 가능했던 것은 일반 담배에 비해 전자담배가 몸에 덜 나쁠 것으로 생각한 애연가가 대거 전자담배로 갈아탔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자담배 제조업체들은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유해물질이 최대 90~95% 적다며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쳤다.

이처럼 일반 담배와 비교를 거부하며 '신개념 담배'로 선풍을 일으켰던 궐련형 전자담배가 암초를 만났다. 전자담배가 마치 건강에 별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처럼 알려지고 있는 데 부담을 느낀 관계 당국이 일반 담배보다는 덜할지 몰라도 전자담배 유해성도 만만치 않다고 경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12월부터 전자담뱃갑에도 암 세포 사진이 있는 경고 그림을 붙이겠다고 발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달 중 궐련형 전자담배에 얼마나 많은 유해물질이 들어 있는지에 대한 검사 결과를 밝힐 예정이다.

이처럼 유해성 논란에 싸인 궐련형 전자담배는 무엇이고,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것일까. 궐련형 전자담배는 액체가 아닌 마른 담뱃잎을 종이로 말아놓은 고체형 궐련을 피운다는 점에서 기존 액상형 전자담배와 다르다. 기기 안을 뜯어보면 크게 배터리, 전자회로 기판, 가열 부분으로 나뉜다. 배터리로 충전하기 때문에 라이터에 불을 붙이지 않아도 되고 화상 위험도 낮다. 일반 담배처럼 담뱃잎으로 채운 전용담배를 홀더에 꽂아 피우면 된다. 액상형 전자담배와의 가장 큰 차별점은 '가열'에 있다. 태우지 않고 찌는(heat-not-burn) 게 핵심이다.

무엇이 '탄다(연소된다)'는 것은 해당 물질이 산소를 만나 에너지를 발산한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연소 3요소인 연료, 높은 열, 산소 중 하나라도 빠지면 타지 않는다. 이 같은 연소 3요소를 놓고 볼 때 궐련형 전자담배에는 연료만 있을 뿐, 나머지 두 가지가 없다. 아이코스 기기 내 가열 부분이 내뿜는 열은 섭씨 300도 내외로 알려져 있다. 필립모리스에 따르면 발열체에서 0.5㎜ 떨어진 담배 내부 온도는 약 250도다. 통상적으로 '찐다'고 표현할 때 100도로 가열하는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높은 온도지만 일반 담배에 불을 붙일 때 온도가 약 600~850도까지 치솟는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다.

전자담배는 전자적 제어장치가 열을 올려줄 뿐 아니라 일정 온도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도록 하는 기능도 장착돼 있다. 이 때문에 열은 기체(에어로졸)를 생성할 정도로 충분하지만 연소를 일으킬 정도까지 치솟지 않는다. 태우지 않기에 증기는 발생하지만 연기는 없고 유해물질도 적다는 것이다.

태우지 않고 찌는 원리로 전자담배에 사용하는 궐련형 담배는 일반 담배와는 약간 다르다. 궐련형 담뱃잎은 표면적을 최대한 넓히기 위해 일반 담배에 들어간 잎보다 길게 썰어져 있고 수분 함량도 높다. 조금이라도 많은 니코틴 수증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물 함유량을 늘리고 글리세린, 셀룰로오스 섬유를 비롯한 기타 몇 가지 다른 성분도 첨가한다. 담뱃잎 외에 전자담배 내부의 텅 빈 공간은 사람이 증기를 흡입하기 전 온도를 충분히 식혀주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가열' '저온' '무연'은 궐련형 전자담배의 대표적 특징이자 안전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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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일반 담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믿음이 최근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궐련형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담배 관련 질병 위험을 낮춘다는 증거가 부족했다"고 발표했다. FDA는 아이코스의 독성 화학물질 수치가 낮은 것은 현재까지 증거로 볼 때 사실이지만 그로 인한 사용자 위험이 덜하다는 증거는 충분치 않다고 발표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FDA가 자문을 요청한 담배 전문가 스탠턴 글랜츠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90일간 임상시험을 진행한 뒤 "일반 담배와 아이코스 유해성이 거의 같다"는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당시 글랜츠 교수는 아이코스 흡연자와 일반 흡연자의 백혈구 수치와 혈압, 폐 용량 등 24개 건강지표를 비교했는데 23개 부문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나오지 않았다. 동맥경화·심근경색을 유발하는 혈관 염증 수준만 아이코스 흡연자가 일반 담배 흡연자에 비해 10.59%가량 낮게 나타났다. 글랜츠 교수는 "아이코스가 덜 위험한 제품으로 홍보해 시장에 나가는 것을 막는 역할을 FDA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토 아우어 스위스 베른대 교수팀도 지난해 5월 미국의학협회지 'JAMA 내과학'에 실은 '가열담배 : 다른 이름의 연기' 논문을 통해 "아이코스는 타지 않아 연기가 없다"는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궐련형 전자담배가 완전연소는 아니지만 불완전연소나 열 분해(산소 없이 가열했을 때 가스와 액체를 방출하고 숯을 생성)를 통해 일반 담배처럼 연기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베른대 연구팀에 따르면 1분에 두 모금씩 흡입하는 방식으로 아이코스 한 개비를 피우면 일반 담배(러키 스트라이크 블루라이트) 한 개비를 피웠을 때의 84% 정도의 니코틴이 나온다. 휘발성 발암물질 포름알데히드도 일반 담배의 74%에 달하고, 아크롤레인은 82% 수준까지 나오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 유해물질은 아이코스에서 더 많은 농도로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살충제 원료로 쓰이는 아세나프텐은 아이코스 연기에서 일반 담배 연기에 포함된 것보다 3배(295%)나 많이 검출됐다.

아우어 교수는 "궐련형 담배는 반드시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을 훼손하고 결국 공중보건에 해악을 끼칠 것"이라며 "궐련형 전자담배가 건강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너무 늦기 전에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필립모리스는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성분 측정 방법이 달라 나타난 결과로 자체 조사에서는 일반 담배에서 아이코스로 완전히 옮기는 게 위험을 줄이는 것으로 나왔다"고 정면 반박했다.

궐련형 전자담배 유해성 논란은 올 들어 더 가열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리버사이드 연구진은 지난 3월 '담배 규제 저널(Tobacco Control Journal)'에서 "아이코스는 타지 않는다"는 주장을 걸고넘어졌다. 궐련형 전자담배 열이 담뱃잎이 아니라 기기 다른 부분을 연소시킴으로써 유독 화학물질을 방출한다는 연구 결과였다. 연구진이 쓰고 남은 전용담배를 현미경으로 관찰했더니 열 분해로 새까맣게 탄 숯 흔적이 발견됐고, 증기를 식히는 것으로 알려진 PLA(폴리유산) 필름 필터는 열에 녹아내린 게 확인됐다. 평균 사용 온도인 250도보다 훨씬 낮은 90도에서부터 필름 필터에서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 시아노히드린이 나오는 현상도 포착됐다. 담배를 꽂는 곳에 액체나 파편이 남아 있으면 열 분해 온도는 더 높아졌다.

바버라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분자·세포·시스템생물학부 교수는 "포름알데히드는 아주 적은 농도로도 치명적인데 그렇게 높지 않은 온도에서도 유독가스가 방출된 것은 문제가 있다"며 "엄밀히 말하면 궐련형 전자담배가 태우지 않고 찌는 게 아니라 실제로 태운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필립모리스는 여전히 유해성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필립모리스는 일반 담배가 최소 800도에서 연소되는데, 높아야 350도를 넘지 않는 궐련형 전자담배에서 열 분해가 일어난다는 주장에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고급 기술로 에어로졸을 테스트해봤지만 포름알데히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도 했다. 영국 공중보건소 독성위원회와 네덜란드 국립건강환경연구소 연구를 인용해 아이코스가 담배를 연소시키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다시 제출했다. 필립모리스는 "독성물질이 나왔다는 PLA는 옥수수 전분으로 만들어져 매우 안전한 제품"이라며 "애초에 재료를 고를 때도 가열된 증기에 노출돼도 독성 화학물질을 방출하지 않기 때문에 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11년 새 무려 500배…전자담배 '폭풍성장' 세계시장 작년 100억弗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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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전자담배 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시장분석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세계 전자담배 시장 규모는 매출액 기준으로 2008년 2000만달러(약 220억원)에서 2014년 70억달러(약 7조3000억원), 지난해 100억달러(약 11조2000억원)를 넘어섰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30년이면 그 규모가 연간 510억달러(약 52조9000억원) 선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내 전자담배 시장 규모도 매년 커지는 추세다. 국내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은 지난해 300억원에서 올해 1500억원, 2021년 9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께면 궐련형 전자담배가 국내 전체 담배 시장 점유율 30%를 넘고 장기적으로 흡연자 절반을 확보할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전자담배는 크게 1세대와 2세대, 3세대로 나뉜다. 1세대 전자담배는 카트리지 형태의 액상을 궐련 형태의 용기에 담아 피우는 담배였다. 액체 니코틴을 열이나 초음파로 기화시켜 흡입한다. 하지만 이들 제품은 흡연 가능한 액상의 양이 많지 않고 배터리 오작동 불량이 잦아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이후 세상에 나온 2세대 제품들은 액상형 전자담배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제품들이다.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전자담배를 피우다 본체 폭발로 사망한 청년이 쓰던 제품도 바로 2세대 전자담배다.

미국에서는 아직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해 식품의약국(FDA) 판매 허가가 나지 않아 아직 액상형 전자담배만 유통되고 있다. 하지만 일일이 액상을 제조하거나 보충하는 데 번거로움이 따르며 휴대성이 오히려 1세대보다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에 3세대 전자담배로 출현한 게 바로 아이코스와 같은 궐련형이다. 필립모리스의 아이코스와 더불어 KT&G의 릴(LiL), 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의 글로(GLO) 등 제품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액체가 아니라 히츠 스틱이라고 하는 고체형 담배를 삽입해 흡연하는 방식이다. 맛과 느낌이 일반담배와 가장 비슷해 연초 담배의 감각적 경험을 가장 가깝게 재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3세대 제품들도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이코스의 경우 셋 중 유일한 분리형으로 디자인이 우수하며 예열시간이 약 10~12초로 20초 내외 걸리는 다른 제품보다 적게 소요된다. 찜 상태가 유지되는 시간도 가장 길다. 그러나 연속 흡연이 불가능하고 충전기를 휴대해야 하며, 사용 후 청소가 번거롭다. 글로는 기기와 스틱이 일체형이라 디자인에 아쉬움이 있고, 릴의 경우 사용 후 기기에 담뱃재가 남는다는 점 등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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