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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죽은 제갈량 보편요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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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발 보편요금제 도입에 저가요금제 개편
보편요금제보다 가성비 높은 LTE베이직 출시
정부 바람직하지만 보편요금제 막기에는 역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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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저작물에 등장하는 제갈량의 필수품인 백우선. 300년 뒤 미래 예측이 가능한 신물이라는 전설이 내려온다.(사진=중국 드라마 '삼국' 장면 캡쳐)


[아시아경제 황준호 기자]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의를 쫓아냈다."

요즘 이동통신 업계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ㆍ사마의 이야기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제갈량은 보편요금제를, 사마의는 이통3사를 빗댄 겁니다.

정부는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보편요금제 도입을 포기하지 않을 태세입니다. 반대 목소리만 내던 이통3사는 '상황이 만만치 않다'고 판단하고 대안 모색에 골몰했습니다. 그리고 요금제 개편에 스스로 나선 것이죠.

KT가 지난달 30일 내놓은 LTE베이직 요금제는 정부가 이달 국회에 상정하는 보편요금제를 뛰어넘는 요금제입니다. 월 3만3000원에 음성문자 무제한, 데이터 1GB를 제공합니다. 25% 선택약정요금할인을 적용하면 월 요금이 2만4750원까지 내려갑니다. 월 2만원대 초반에 데이터 1GB, 음성 200분, 문자 무제한을 제공하는 보편요금제보다 가성비가 높다는 평가입니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 등 나머지 이통사도 가만 있을 수 없겠죠. 신은정 DB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양사도 빠른 시일 내에 자발적 보편요금제를 실행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습니다. '존재하지도' 않고 이름만 있는 보편요금제가 마치 죽은 제갈량의 공포 같은 역할을 한 셈입니다.

이통3사는 저가 요금제에서의 경쟁뿐 아니라 렌탈폰 사업을 시작하거나, 로밍요금 인하 등 혜택 확대에 나서는 등 서비스 다양화 방안을 속속 내놓고 있습니다. 고가 요금제 가입자만 모셔가던 이전과는 분명 달라진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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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보편요금제 도입을 담은 법안은 지난 14일 규제개혁위원회를 통과했습니다. 법제처 심사가 끝나면 이달 국회에 상정될 예정입니다. KT는 법안이 규개위를 통과하자, LTE베이직 요금제 신설을 담은 개편안을 정부에 신고했습니다. 일종의 맞불놓기로 해석됩니다. 정부의 입법 명분을 궁색하게 만들겠다는 것이지요. 벌써 시장에서는 '가만히 두면 이통사가 알아서 저가 요금제를 내놓을 것'이란 이야기도 나옵니다.

자, 이제 관심사는 정부가 어떻게 나올 것이냐 입니다. 시장이 알아서 잘 돌아가니 보편요금제 시행을 잠정 보류한다고 발표하는 날만을 이통3사는 손꼽아 기다릴 테지만, 기자의 판단은 조금 다릅니다. 한마디로 '역부족'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정부에서 보편요금제 도입을 추진하지 않았다면 민간발 보편요금제 도입이 이뤄졌을까라는 물음을 우선 던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통3사의 요금제 개편 움직임이 아직은 '성에 차지 않는다'는 말을 에둘러 한 것 같습니다.

규제보다는 자율적으로 돌아가는 시장이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시장이 실패하면 규제는 불가피해집니다. '시장에 맡겨달라'는 이통3사의 바람이 실현되려면, 시장의 실패를 해결할 대안을 먼저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얼마나 더 해야 하냐고 반문한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네요. 요금제 개편 기사에 줄줄이 달려 있는 댓글들을 보시라고. 댓글이 여론을 모두 반영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저런다고 속을 줄 아느냐", "무슨 꿍꿍이속인지 의심스럽다"는 댓글들에서 우리는 이통사를 향한 국민의 분노를 여전히 확인합니다.

이통3사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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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호 기자 reph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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