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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기자가만난세상] 모두의 관심이 진짜 세상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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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를 처음 목격했던 곳은 학교였다. 2001년 중학생이었던 나는 TV 속보를 통해 한 비행기가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으로 날아드는 모습을 지켜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비행기가 남아 있던 건물과 충돌했고 110층에 이르는 두 빌딩은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반복되는 화면에도 나는 두 눈을 의심해야 했다. 이날의 테러로 90여개국 3000여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다. 경악할 일이었다.

“사람들이 영화관에 가지 않는다”는 말이 나돌았다. 영화보다 더 규모가 크고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으니 영화관에 갈 필요를 못 느꼈다는 얘기다. 웬만한 사건에는 놀라지도 않게 됐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것에만 뇌가 반응하니 머리가 팝콘이 된 듯했다. 동시에 현실에는 무감각, 무기력해졌다.

세계일보

임국정 국제부 기자


기자가 돼 국제부에 오고 나서 이 ‘무뎌짐’을 특히 많이 느낀다. 그만큼 대형 사건·사고들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한 5세 미국 어린이는 집 안에서 사탕 찾기 놀이를 하다 부모의 침실 서랍장에서 발견한 총으로 7세 형을 쏴 숨지게 했다. 수십명이 사망하는 버스 충돌 사고는 예삿일이 됐고, 수백명이 타고 있던 비행기가 추락하는 일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10명이 숨진 미국 텍사스주 산타페고교 총기 난사 사건 당시에도 그랬다. 불과 3개월 전 미국 플로리다주 스톤맨 더글러스고교에서 총격 참사가 일어나 17명이 사망하고 난 뒤여서 충격이 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피해자 가족들의 사진은 나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그들은 충혈된 두 눈으로 허공을 좇았고, 북받쳐 오는 슬픔에 고개를 떨궜다. 어찌할 줄 모르며 울부짖는 이도 있었다. 다른 가족의 품에 기대어 선 모습은 위태롭게 보였다.

나는 그들의 표정에서 익숙함을 느꼈다. 초등학생, 취업준비생일 때도, 대학원을 다니면서도 본 장면이다.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외삼촌이 지병으로 눈 감으셨을 때, 친할머니를 얼음 호수 같은 관 속으로 떠나보내야만 했던 그날, 내 가족에게서, 친지들에게서 보았던 모습이었다. 과정은 달랐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야 하는 슬픔의 무게는 모두 하나같았으리라. 그제야 나는 사망자 숫자 10이 아닌, 데이트를 거부했다 총격의 첫 희생양이 된 ‘새너 피셔’로, 미국에 와 공부하고 겪은 것을 고국에 나누겠다던 파키스탄 교환학생 ‘사비카 셰이크’로 피해자 한 명, 한 명을 바라보게 됐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우리는 쉽게 무뎌진다.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화두가 된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운동과 ‘몰카’(몰래카메라) 문제에서도 우린 어렵지 않게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반복된 진실에 본질은 어디 가고 성별 싸움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이내 피해자들은 관심 밖으로 사라진다.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 “그 사람도 좋아서 그런 거 아니야?”, “왜 이렇게 민감해”, “너희도 당해보니까 어때?” 쉽게 말하고 쉽게 잊는 순간 우리의 가족들은 불의와 마주한다. 현실 같지 않은 현실, “나의 일”이라는 모두의 관심이 진짜 세상을 만든다.

임국정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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