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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TOPIC]2만원 ‘보편요금제’ 논란-통신 생태계 붕괴 부를 포퓰리즘의 극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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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보편요금제 도입을 둘러싸고 소비자와 업계 간 입장 차이가 극명하다. <매경DB>


14만원.

국내 한 가구당 한 달 평균 통신비다. 통신비 부담이 크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인정한다. 녹색소비자연대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는 가계 이동통신비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또 3명 중 1명(33.3%)은 현 정부 이후 통신비 부담이 이전보다 더 증가했다고 생각했다. 통신비 부담이 커지면서 정부가 내놓은 복안이 있다. 바로 월 2만원대 ‘보편요금제’다.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는 보편요금제 도입을 골자로 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규개위 심사를 통과하면서 보편요금제 시행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국회 입법만 통과하면 바로 시행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통신요금을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당장 600만~700만명이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국내 통신 생태계를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으며 수십만 명 대량 해고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보편요금제란?

▷월 2만원에 기본 혜택 제공

“이동통신(이통) 1위 사업자는 월 2만원대에 데이터 1GB, 음성통화 200분 등을 제공하는 요금제를 출시해야 한다.”

보편요금제다. 얼핏 저가 요금제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두 요금제는 큰 차이가 있다. 현재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이통 3사는 월 3만원대 저가 요금제가 있다. 이 요금제는 유무선 음성통화 무제한이다. 그러나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는 겨우 300MB 남짓이다. 저화질 영화 한 편 보기 힘들다. 보편요금제는 이보다 더 싼 요금으로 1GB 데이터를 기본으로 제공받는다.

보편요금제는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이동통신 기본료 폐지’ 공약에서 출발했다. 당시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이 공약을 시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기본료 폐지와 유사한 효과를 낼 만한 정책을 찾았다. 대안으로 등장한 정책이 선택약정 할인율 조정과 보편요금제다. 이미 선택약정 할인율은 20%에서 25%로 상향 조정됐다. 이제 보편요금제만 남았다.

제도가 시행되면 시장 1위인 SK텔레콤은 무조건 보편요금제를 출시해야 한다. 시장점유율 50%에 이르는 SK텔레콤이 도입하면 후발주자인 KT와 LG유플러스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다.

한 달에 1GB 데이터는 동영상을 자주 보지 않거나 와이파이와 함께 쓰는 소비자라면 충분한 양이다. 통신업계는 보편요금제가 도입되면 현재 5만원대 이하 요금을 쓰고 있는 소비자 중 약 600만~700만명이 보편요금제로 갈아탈 것으로 내다본다.

▶앞으로 절차는

▷법제처 심사 후 국회 상정

규개위를 통과했지만 보편요금제가 시행되려면 여러 절차가 남았다. 우선 법제처 심사를 거쳐야 한다. 법제처 심사가 마무리되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상임위원회가 소집된다. 이후 국회 표결 과정을 거친다.

절차가 무리 없이 진행된다면 늦어도 9월에는 국회에 관련 법안이 제출될 전망이다. 과기부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법안을 발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소비자와 시민단체들은 보편요금제 도입을 대체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현재 가계 통신 비용이 너무 과도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보편요금제가 도입되면 덩달아 고가 요금제 또한 가격이 인하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한국소비자연맹 관계자는 “공공재인 주파수로 영업 중인 통신사가 20년 넘게 안정된 환경 속에서 성장해온 점을 고려하면 사회적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며 “그간 이통 3사는 고가 요금제에만 혜택을 집중해 시장 가격을 왜곡했다. 어느 정도 정부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편요금제가 일사천리로 국회를 통과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통 3사부터 시작해 알뜰폰에 통신 대리점 등 반발이 만만찮다. 당장 이통 3사 한 관계자는 “이미 선택약정 할인과 취약계층 할인도 하는데 보편요금제까지 시행하면 손실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이통 3사가 최대 3조원에 이르는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5G 주파수 경매 작업에 들어갔다. 경매에 들어가는 비용만 최소 3조원이 훌쩍 넘는다. 보편요금제가 도입되면 5G와 같은 미래 먹거리 사업에 투자할 수 없다는 것이 통신사들 논리다.

알뜰폰 업계의 반기 또한 거세다. 알뜰폰은 이동통신 재판매 서비스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의 통신망을 빌려 통신 서비스를 제공한다. 저렴한 요금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알뜰폰 시장에는 월 2만원 안팎의 가격으로 1GB 이상 데이터를 제공하는 요금제가 있다. 대안 서비스가 있는데 정부가 공약 이행을 위해 무리하게 보편요금제 도입을 추진한다는 볼멘소리도 제기한다.

현재 국내 알뜰폰 가입자는 약 800만명이지만 누적적자는 약 3500억원에 달한다. 보편요금제가 도입되면 알뜰폰 시장은 한꺼번에 사라질 수 있다. 최관순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알뜰폰 사업자에 대한 망도매가 인하 등의 지원이 없으면 알뜰폰 가입자 이탈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소비자연맹 측은 “알뜰폰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원치 않는 소비자가 있음에도 저가 요금제를 모두 알뜰폰이 감당하기는 어렵다”며 “보편요금제는 저가 요금제 이용자의 선택권 확대와 저가 요금 구간에서의 요금 인하에 상당 부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대량 실업을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보편요금제를 시행하면 이통 3사는 당장 영업 비용을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 6만개 이상 이통사 대리점이나 40여개 알뜰폰 업체가 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용구 통신조합 상임이사는 “보편요금제 도입보다 저가 요금은 알뜰폰, 고가 요금은 이통사 등 투트랙 전략을 활용하면 통신요금을 낮출 수 있다”며 “이통 3사 또한 같은 가격에 데이터를 좀 더 제공하는 등 고급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새로운 사업자가 들어와 경쟁이 이뤄진 이후 보편요금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현재 보편요금제 도입은 고착화된 이통 3사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며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 보편요금제를 도입하면 신규 사업자 진출이 더욱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 통과 가능할까

▷아직은 미지수지만…

보편요금제 도입 여부는 사실상 국회 판단에 달렸다. 의견 대립이 극명한 만큼 국회 통과가 수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여당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준섭 KB증권 애널리스트는 “보편요금제 법안이 쟁점 법안으로 분류되면 국회 계류 상태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며 “방송통신 관련 다수 법안은 과거에도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며 계류 상태가 장기화된 이력이 있다”고 분석했다.

정지수 메리츠종금증권 애널리스트 또한 “과기정통부 상임위는 구성 위원 중 절반 이상이 야당 위원이기 때문에 통과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보편요금제 도입을 둘러싼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 중이지만 과기정통부는 국회 통과를 밀어붙인다는 방침을 세웠다. 전성배 과기정통부 통신정책국장은 “플랜B는 없다”고 했다. 보편요금제 도입에 사활을 걸겠다는 얘기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60호 (2018.05.30~05.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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