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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붉은 김환기, 라이벌 '푸른 김환기'를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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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옥션 홍콩경매에 나온 김환기의 1972년作 '붉은 점화' 77억원으로 시작해 85억원에 낙찰

'고요'에 이어 국내 최고가 경신

'4월 28일. 쾌청(快晴). 리버사이드(공원)에 나가 볕 쪼이다. 능금꽃이 저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 만개(滿開)는 백(白)이요, 봉오리는 진홍이어서 점점이 붉은 점은 형용하기 어렵도록 아름답다.'(1968년) 꽃에서 붉은 점의 아름다움을 포착한 김환기(1913~1974)의 일기는 1972년까지 이어진다. '2월 3일. 진종일 비. #220 Rose Matar 시작.' '2월 9일. #220(100″×80″) 완성.'

그가 붉은색 물감(rose madder)으로 엿새 만에 완성한 전면 점화(點畵) '3-Ⅱ-72 #220'(254×202㎝)이 한국 현대미술 경매 최고 판매가를 경신했다. 27일 홍콩 완차이에서 열린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이 작품은 85억3000만원에 낙찰돼 최고가를 기록했다. 지난해 4월 서울 K옥션 경매에서 청색 점화 'Tranquil ity(고요) 5-IV-73 #310'이 65억5000만원에 낙찰된 지 13개월 만이다. '김환기의 라이벌은 김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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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프랑스 파리의 아틀리에에 있는 김환기. /대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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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85억3000만원에 낙찰된 김환기의‘3-Ⅱ-72 #220’(254×202㎝). /서울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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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찰가 100억원 돌파 기대는 무산됐다. 세계 미술 시장에서 김환기 작품이 저평가됐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온 터라 '1000만달러' 한국 작가의 탄생이 이번 경매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천에 유화로 그린 '3-Ⅱ-72 #220'은 김환기의 붉은 점화 중 경매에 처음 나온 작품이다. 2015년 현대화랑에서 열린 '김환기의 선, 면, 점'에 선보였다. 네모꼴의 붉은 점이 캔버스 전면에 반복해 찍혀 있고, 왼쪽 상단에 파란색 점으로 이뤄진 작은 역삼각형이 그려져 있다. 캔버스를 크게 3등분해 점의 방향을 바꿔가면서 그려 역동적이다. '환기 블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파란색을 즐겨 쓴 작가여서 붉은 점화는 몇 점 되지 않는다. 이 작품의 경매 시작가가 77억원으로 높게 매겨진 이유 중 하나가 '희소성'이었다.

김환기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1972년 완성됐다. 작가의 '뉴욕 시기'에 속한다. 한국 근현대미술 경매 낙찰가 상위 1~5위를 차지한 김환기 작품은 모두 이 시기에 그려졌다. 박미정 환기미술관장은 "이 작품의 면 분할은 당시 김환기가 다양한 시도를 적극적으로 한 끝에 나온 것"이라며 "단순히 조형적 실험만 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무르익은 자연관과 예술관이 녹아든 작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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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열풍'은 2015년 시작됐다. 그해 10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47억2100만원에 낙찰된 '19-Ⅶ-71 #209'가 박수근의 '빨래터'(45억2000만원)를 뛰어넘었다. 2016년 4월 '무제'(1970년)가 48억6700만원으로 기록을 경신했고, 6월(54억원), 11월(63억3000만원), 2017년 4월(65억5000만원)까지 다섯 차례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웠다.

최근에는 반추상과 구상 작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푸른색 계열의 '모닝스타'(1964)가 지난해 11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39억원에 팔려 반추상화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올해 3월에는 '항아리와 시'(1954)가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39억3000만원에 팔렸다.

한국 근현대미술 경매 최고가 10위권 안에 김환기의 작품만 여덟 점. 뉴욕에서 생활고를 겪다가 세상을 떠난 김환기는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그가 남긴 한 수필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팔리지 않을 것을 미리 알기 때문에 그림에다 가격을 안 붙이기로 했다.'

[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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