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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필동정담] 라듐 맥주와 라돈 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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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방사성물질을 처음 접한 인류는 스스로 빛을 방출하는 이 신비한 물질에 매료됐다. 마리 퀴리와 남편 피에르 퀴리 부부가 1898년 라듐이라는 방사성원소를 처음 발견하자 그들에게 1903년 노벨물리학상을 안겨줬다. 마리 퀴리가 라듐을 분리한 뒤에는 1911년 다시 노벨화학상을 시상했다.

그 시대 사람들은 화려한 빛을 뿜는 이 기적의 물질을 축복으로 받아들였다. 라듐 화장품이 출시됐고 치아를 반짝반짝하게 해준다는 라듐 치약도 판매됐다. 몸에 힘을 불어넣는다는 광고와 함께 라듐 맥주, 라듐 콘돔까지 나왔다. 이때 팔려나간 라듐 콘돔이 50만개를 넘었다니 그 인기를 알 만하다.

만병통치약으로 여겼던 이 물질에 '뭔가 이상하다'는 의문이 제기된 건 1917년 무렵이다. 야광시계에 라듐 페인트를 칠하던 여성 직공들이 미국 뉴저지 공장에서 하나둘 건강 이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라듐 걸스'라는 책은 이들이 1925년부터 무려 14년 동안 벌여야 했던 법정투쟁의 고난을 소개하고 있다. 라듐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방사능에 오랫동안 노출됐던 마리 퀴리도 1934년 백혈병과 유사한 병으로 사망했다. 방사성물질의 위험성을 확인시켜준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100년 정도가 흐른 요즘 라돈이 말썽이다. 라듐이 붕괴할 때 발생하는 기체가 라돈이다. 이번에도 '사이비 과학'이나 과대 광고가 문제였다. 1990년대 말 일본에서 "음이온이 몸에 좋다"는 소문이 갑자기 돌았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데도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러자 음이온을 발생시킨다며 침대에 방사성물질을 넣었다가 '라돈 침대' 사태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라돈은 흡연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폐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1급 발암물질이다. 자연 상태의 화강암이나 건축자재에서도 방출된다. 국립환경과학원이 2011년부터 5년간 조사해봤더니 대다수 주택, 아파트에서 기준치보다는 낮지만 라돈이 검출됐다고 한다. 공기보다 무거운 라돈을 멀리하려면 수시로 환기를 해주는 수밖에 없다. 몸에 좋다는 음이온 침대를 샀는데 오히려 라돈이 나온다면 어이없는 일이다. 도깨비방망이를 찾으려는 노력이 황당한 것처럼 만병통치약을 구하려는 생각도 비과학적이다.

[최경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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