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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Zoom人]갑질 사회에 깊은 울림 남긴 故구본무 LG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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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 끼치기 싫다' 수행원 없이 다니고

먼저 명함 건네며 정겹게 '받아두이소'

교육·예술·복지…사회공헌활동 앞장

'재벌의 귀감' 시민들 추모 열기 뜨거워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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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73세의 일기로 지난 20일 타계한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평소 소탈했던 성품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감동을 더하고 있다.

특히 일부 대기업 오너 일가의 갑질 행태로 재계 전체가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옆집 할아버지 같았던 구 회장의 모습은 더 크게 와닿고 있다. ‘구본무 신드롬’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온라인과 SNS 등에서는 그에 대한 추모 열기가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 20일 구 회장 별세 기사에는 “몇 년 전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주차장에서 후배 몇 명과 이야기하고 있는데, 한 노신사가 ‘어이쿠 실례합니다’ 하며 급하게 걸어오길래 길을 비켜드렸다”면서 “노신사는 미안한 듯 멋쩍게 웃었는데, 구본무 회장님이셨다. 그룹 총수가 수행원 없이 다니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는 댓글이 붙었다.

한 네티즌은 “아버지가 LG에서 일할 때 회사 구경을 갔다가 회장님을 만났는데 ‘꼬마 신사님, 커서 훌륭한 사람 돼서 다시 만나요’ 하며 용돈을 주신 것이 생각난다”며 “권위 의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구 회장을 기억했다.

LG 직원은 익명 게시판에 “작년 화담숲에서 모자 쓴 어떤 할아버지가 더운 날 힘들게 걷던 만삭 임신부를 보고 모노레일을 무료로 타고 내려갈 수 있게 배려해 주더라”면서 “자세히 보니 회장님이셨다”고 적었다.

“연수원 식당에서 줄 서 있는 직원들에게 ‘안녕하세요, 맛있게 드세요’ 하며 먼저 인사하던 분이었다”며, 구 회장을 회고한 글도 올라왔다.

빈소를 찾은 각계 각층의 조문객들은 그의 소탈했던 생전 모습, 배려심, 선행 등을 보여주는 일화를 전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21일 조문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2004년 외교통상부 장관 시절 해외 출장길 비행기에서 구 회장을 만났는데, 내 자리 독서 램프가 고장 난 것을 알고 ‘난 자료를 안 봐도 된다’며 자리를 바꿔줬다”고 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구 회장은 중간 값의 술을 즐겨 드셨다”면서 “너무 싼 술을 마시면 위선 같고 너무 비싼 술을 마시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이유”라고 회고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당시 김대중정부 주도의 ‘반도체 빅딜’ 관련 후일담을 전했다. LG 공채 출신인 박 의원은 페이스북에 “(빅딜 이후) 공·사석에서 구 회장을 뵈면 일체 내색을 안 하시고 제게 감사를 표하셨고 저는 죄송하게 생각했었다”고 썼다.

구 회장이 각별한 애착을 가졌던 반도체사업을 빼앗겨 당시 정부 실세였던 박 의원에게 섭섭해 했을 법도 한데, 되레 자신을 배려했다는 것이다.

정상국 전 LG 부사장은 페이스북에 “한국 최대 재벌의 아들 같은 분위기도 전혀 없었고 그저 보통 사람이었다”며 “누구를 만나도 반말하지 않고 먼저 명함을 건네며 ‘저 LG 구본뭅니다. 이거는 그냥 찌라십니다. 받아 두이소’라고 하는 동네 아저씨 같았던 분”이라고 썼다.

특히 그룹 회장 외에 LG복지재단 대표이사, LG상록재단 이사장, LG연암문화재단 이사장, LG연암학원 이사장 직함을 가졌던 구 회장은 그룹 경영만큼이나 공익활동을 중시해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사회적 의무와 책임)’의 모범을 보여준 인물로 평가받는다.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의 정문 표지석 앞에는 국화 한 송이와 추모 편지가 놓였다. 편지에는 “나는 할 수 있다는 신념, 물질적 가치를 좇지 말자는 신념, 사람을 사랑하자는 신념 덕분에 많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며 “회장님께서 항상 강조하신 인간존중의 경영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적혔다.

네이버와 다음, 네이트 등 주요 포털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도 구 회장에 대한 추모 글이 이어지고 있다. 그간 재계에 대한 원색적 비난이 쏟아졌던 것과 달리, 구 회장을 진심으로 추모한다는 글이 대부분이다.

‘갓본무’(신을 의미하는 영어 God과 구본무 합성어)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반(反)기업 정서를 생각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재계 관계자는 “직원들로부터도 ‘이웃집 아저씨 같다’고 평가될 정도로 이른바 ‘재벌 갑질’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면서 “사회공헌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며 사회의 귀감이 됐던 경영자”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대기업 이미지가 부정적이기에 구본무 회장의 소탈했던 모습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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