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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시가 있는 월요일] 돌아가신 어머니의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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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한 달 전에 돌아간 엄마 옷을 걸치고 시장에 간다
엄마의 팔이 들어갔던 구멍에 내 팔을 꿰고
엄마의 목이 들어갔던 구멍에 내 목을 꿰고
엄마의 다리가 들어갔던 구멍에 내 다리를 꿰고

나는
엄마가 된다
걸을 때마다 펄렁펄렁
엄마 냄새가 풍긴다

-엄마 ......

-다 늙은 것이 엄마는 무슨

걸친 엄마가 눈을 흘긴다

-이경림 作 <걸친, 엄마>


돌아가신 어머니 옷을 걸쳐 입고 시장에 간 모양이다. 걸을 때마다 옷에서는 엄마의 냄새가 났을 테고, 시인은 나지막히 '엄마…' 하고 불러본다. 그러자 돌아가신 엄마가 대답한다. '다 늙은 것이 엄마는 무슨…'.

짧은 시이지만 완벽하고 깊다. 한 사람의 생을 감싸주었던 옷에 자신의 몸을 걸치면서 시인은 돌아가신 어머니와 소통을 시작한다.

세상의 모든 물건에는 추억이 담겨 있다. 그 물건들은 우리를 불러 세워 추억을 잊지 말라고 채근한다. 그 추억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으므로, 나 역시 언젠가는 추억이 될 것이므로….

[허연 문화전문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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