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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생생확대경] 직장에서 행복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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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대부분 직장에서 보내는데 법 사각지대

'직장내 괴롭힘' 법적 정의조차 없어

'대한항공 갑질' 계기로 '미투' 직장으로 옮겨가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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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은 회사에 살다시피 한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5명 중 한 명은 일주일에 54시간 일한다. 주말 이틀을 빼면 하루에 11시간 가까이 일한다는 뜻이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잠자는 시간 8시간을 빼면, 직장 밖에서 보내는 시간은 고작 5시간뿐이다. 출퇴근 시간까지 빼면 집에서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은 하루 3~4시간에 불과하다. 씻고 밥 먹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거의 남는 시간이 없다. 집에 가면 잠자기 바쁜 게 한국의 직장인이다.

7월부터는 근무시간이 주당 52시간을 넘지 않도록 근로기준법이 바뀌지만, 평일에 10시간 넘는 근무하는 환경이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다. 일주일에 근무시간이 2시간 정도 줄어들 뿐이다.

일과 가정의 균형, 저녁이 있는 삶이 중요하지만, 당장 필요한 건 직장에서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이다. 직장에서 무슨 행복 타령이냐, 한가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직장은 매우 중요한 실존적 공간이다. 하루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는 직장인들에게 직장에서의 행복을 담보하지 못하면 인생이 행복할 수 없다. 절대적인 시간을 보내는 직장이 지옥같은데, 퇴근 후 몇 시간만 행복하다고 인생이 행복해지지 않는다. 절대적인 시간과 삶의 중심인 직장을 외면하면 답이 보이지 않는다. 직장이 행복해야 인생이 행복하다.

그런데 직장 내 행복은 운(運)에 맡겨 있다. 마침 이해심이 많은 동료, 친절한 상사, 직원들의 복지를 배려하는 사장을 만나 호사를 누리는 직장인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한국의 직장인에게 회사는 그저 참고 견디는 곳이다.

대한민국에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도 없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법적인 정의가 아예 없다.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근로자를 폭행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만 담고 있다.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한 직장인이 정신적인 피해를 입었더라도 물리적인 폭력이 없었다면 법적인 보호를 받을 길이 없다.

‘물벼락 갑질’ 논란에 휩싸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지만, 경찰이 조 전 전무가 실제로 컵을 던졌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매달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조 전 전무가 아무리 심하게 소리를 질렀더라도, 그가 실제로 폭력을 행사했거나 모욕죄에 해당하는 노골적인 욕설을 뱉지 않았다면 처벌이 애매하다. 프랑스는 다르다. 2002년부터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권리를 노동법에 명시해 놓았다. 반복된 언행으로 직장 동료를 괴롭히면 징역 2년이나 3만유로(약 40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캐나다 퀘백주는 아예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중지 조치 의무까지 법에 부여해 놓았다.

‘미투’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성희롱을 일삼던 가해자들은 이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됐다. 성희롱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범죄가 됐다. 대한항공 사태를 계기로 이제 미투 운동은 직장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직장은 괴롭힘을 당해도 괜찮은 곳이 아니다. 직장은 견디는 곳이 아니라 행복한 곳이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직장이 행복해야 인생이 행복하다. 우리에겐 그걸 요구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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