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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매경이 만난 사람]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 핌코 에마뉘엘 로망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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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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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채권운용사 핌코(PIMCO)의 '수장' 에마뉘엘 로망 최고경영자(CEO)는 "미·북정상회담이 잘 풀리면 한반도 지정학적 위기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망 CEO는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판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 행사장에서 매일경제와 단독 인터뷰하면서 "결과를 속단하긴 이르지만 회담을 낙관적으로 본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핌코의 흔들린 위상을 세우기 위해 2016년 영국 맨그룹에서 전격 영입된 그는 올해 가장 주목해야 할 시장 리스크 요인으로 '인플레이션'을 꼽았다. 최근 3% 선을 돌파하면서 시장 우려감을 키운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올해 3.3%까지 오를 수 있다고 답했다. 다만 채권금리가 단기간에 급격히 상승(채권가격 급락)하는 식의 진정한 채권 약세장은 당분간 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로망 CEO가 한국 언론과 단독 인터뷰에 응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음은 로망 CEO와의 일문일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이 임박했는데 어떻게 전망하는가.

▷낙관적으로 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까지 추진해 온 과정은 꽤 긍정적이고 원만했다. 물론 우리가 (미·북정상회담을 위한) 물밑 진행 과정을 알 수가 없으니 결과를 속단하긴 이를 것이다. 좋은 성과가 도출되기를 바라며 북한 비핵화까지는 머나먼 과정이다.

―미·북정상회담이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까. 한국은 북핵 문제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우려를 떨쳐내기 어려웠는데.

▷회담 성과에 따라 좌우되겠지만 모두가 납득할 만한 결과가 도출된다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한국인들의 바람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다만 회담을 통한 합의가 영구적이지 않다는 것을 미국의 이란 핵 협정 탈퇴 가능성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상황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시각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금융시장의 최대 리스크 요인은 뭔가.

▷인플레이션이다. 미국은 경기 사이클 후반부에 있다. 103개월째 상승장이 지속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작년 말 법인세율 대폭 감면안을 담은 세제개편을 시행해 미국 경제가 자칫 과열될 우려가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경기 과열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더 공격적으로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대규모 감세로 생긴 여력을 투자에 활용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당초 예상보다 기업의 자본 지출이 부쩍 늘거나 노동시장이 한층 빡빡해져 임금 상승세가 빨라지면 인플레이션 신호는 훨씬 강해질 것이다.

―연준이 올해 기준금리를 총 네 번 올릴까. 올해 3월에 한 번 올렸는데.

▷연내에 두세 번 더 올릴 것으로 본다. 감세 효과까지 감안해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2.6~2.7%로 예상된다. 1980년대와 같은 인플레이션은 아니겠지만 물가 상승세를 예견할 수 있다.

―미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최근 3% 선을 찍었다. 채권 약세장이 도래하고 있는가.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3.25~3.3%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급격한 상승세는 없을 것으로 본다. 온화한 약세장은 몰라도 곰이 포효하는 듯한 진정한 채권 약세장(베어마켓)을 보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미 국채 10년물과 2년물 간의 금리 차가 최근 0.5%포인트 정도로 좁혀지면서 장단기 금리 역전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역전 현상이 일어날까.

매일경제

▷가능한 일이다. 역대 지표를 볼 때 장단기 금리 역전은 미국 경기침체를 예고하는 신호로 간주된다. 미 국채 2년물 금리가 2.5% 수준에 도달하는 등 단기금리가 많이 오르면서 단기채권이나 단기금융상품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특히 달러 여유 자금을 보유한 대형 기관투자가가 단기채권이나 머니마켓펀드(MMF)에 투자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미국의 경기침체가 언제쯤 도래할지 궁금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3개월째 경기 확장기를 지속하면서 양호한 회복세를 거둔 것은 참 다행이다. 현재의 거시경제지표에서 침체 징후를 찾아보기 어렵다. 언젠가 다음 침체기가 올 것임은 자명하다. 다만 2008년 금융위기 때와는 다른 양상일 것이다. 이번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에 모인 연사들 중 상당수는 미국 경제에 대해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중국 경제가 무난한 흐름을 보이고 있고, 남북정상회담에 이은 미·북정상회담이 잘 풀리면 트럼프 정부가 이끄는 미국 경제는 향후 6개월간 순항할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찾아오는 미국 중간선거(11월)는 분기점이 될 정치 이벤트다. 공화당이 미국 의회의 다수당 지위를 상실하게 되면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2년 임기는 혼란 속에 빠져들 공산이 크다.

―투자 유망 자산을 꼽는다면.

▷한 가지를 꼭 찍어서 말하긴 어렵다. 투자자의 자산, 리스크 성향, 거주 위치, 세금 등 고려할 요소가 많다. 우선 신흥국 채권을 현지 통화로 투자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길게 보면 향후 10년간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생각한다. 둘째, 미국 사모대출·채권이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여러 규제나 경영 여건으로 인해 미국 은행들이 들고 있다가 처분하는 부동산 관련 사모대출 중에 잘 선별하면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셋째, 부실채권(신용등급 BB 이하 투기등급 채권)이다. 2015년 미국 에너지기업 부실채권이 시장에 많이 나왔는데 이처럼 어려움을 겪는 특정 산업군의 부실채권을 저가에 매수하는 것이다. 소매·유통, 항공, 정유·가스 등 어느 부문이 시련을 겪을지 현재로서는 예상하기 어렵지만 투자 기회를 엿보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러한 투자 기회는 미국뿐 아니라 아시아, 유럽 등 세계 어느 곳에도 있다.

―일전에 유럽 은행들의 부실채권을 사들였다고 들었다.

▷그건 팔았다. 은행들이 추가 자본 확충의 필요성을 느낄 때 증자를 하거나 보유자산을 처분하는 사례가 있는데 이탈리아나 스페인 은행들이 부동산이나 부실채권을 내놓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1990년대 프랑스에서도 이런 투자 기회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와 인프라스트럭처(사회기반시설) 투자 등 경기부양책에 대한 평가는.

▷감세는 미국 기업에 좋은 일이다. 미국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발판을 제공했다. 다만 지금은 경기 사이클 후반기에 와 있고 대규모 감세가 자칫 인플레이션을 지나치게 자극하지는 않을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인프라 투자도 미국에 꼭 필요한 사안이다. 민간 부문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인프라 투자를 추진한다는 아이디어는 좋은데 실행하는 과정에서 연방정부, 주정부, 지방자치단체와의 조율을 거쳐야 해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미국 중간선거가 끝나야 실제로 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핌코의 전자채권거래 등 기술 시스템을 보완하고 정보기술(IT) 전문 인력을 상당수 충원할 계획이라고 들었다. 기존 금융인력을 대체하는 건 아닌가.

▷기술 시스템에 투자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데이터 활용도를 높이는 데 신경 쓰고 있다. 핌코의 투자·자산관리 업무를 진화시켜줄 무기가 될 것이다. 조만간 알고리즘 매매에 기반한 투자 펀드를 선보이려고 한다. 고객에게 더 나은 수익률을 선사하기 위한 노력이다. 빅데이터와 머신러닝은 사람의 의사결정을 돕는 보조수단이 돼야지 이를 대체할 수 없다.

위기의 핌코 구원투수로…작년 운용자산 310조원 늘려 1900조원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로 명성을 떨친 핌코(PIMCO)는 모하메드 엘 에리언 전 최고경영자(CEO)가 2014년 1월 갑작스럽게 떠나고 핌코의 공동창업자인 '채권왕' 빌 그로스마저 그해 9월 퇴사하면서 대규모 자금 이탈에 시달리는 등 혼란기를 겪었다. 더글러스 호지가 CEO에 올랐지만 2년여 후인 2016년 11월에 바통을 에마뉘엘 로망에게 넘겨줬다.

핌코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로망 CEO는 핌코의 흔들리는 명성을 바로잡고 체제를 안정시키는 데 주력했다. 핌코 운용자산의 95%는 최근 3년간 목표수익률(벤치마크)을 초과 달성했다. 지난해에만 자금이 2887억달러(약 310조원) 증가하면서 올 3월 기준 핌코의 운용자산은 1조7700억달러(약 1900조원)에 달했다. 197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뉴포트비치에 본사를 설립한 핌코는 미주, 유럽, 아시아에 12개 글로벌 거점을 두고 있으며 전체 직원은 약 2200명이다. 현재 중국 상하이와 대만에 사무소 신설을 추진 중이다.

로망 CEO는 매일경제와 단독 인터뷰하면서 "세계 최고의 채권운용사 자리를 놓치지 않고 싶다"며 "채권 투자 분야의 최고가 되는 것, 그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비즈니스 모델을 이러한 목표에 맞추고 투자를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1963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1985년 파리 도핀대 응용수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영학석사학위(MBA)를 취득했다. 1987년 골드만삭스에서 금융 경력의 첫발을 내디뎠고 이곳에서 18년간 근무했다. 헤지펀드업체 GLG파트너스의 공동 CEO를 역임한 뒤 2010년 영국의 대형 헤지펀드 운용사인 맨그룹에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로 합류한 그는 추후 맨그룹의 CEO를 맡아 조직의 체질 개선과 잇단 인수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로망 CEO는 프랑스인으로서 핌코를 이끄는 이색적인 기록의 소유자다. 핌코 관계자는 "47년 핌코 역사에서 외국인이 CEO를 맡는 사례는 로망이 거의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인답게 와인 애호가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의 와인셀러에 6000병 넘는 와인이 저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와인 수집을 통한 투자 수익률을 물어보자 "와인을 투자 차원에서 모으는 건 아니다"며 "와인을 통해 친구를 만나고 우정을 쌓는 데 목적이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이어 "50여 년 전만 해도 프랑스 등 일부 유럽국가만 명품 와인을 생산했지만 이제는 여러 나라에서 좋은 와인이 나온다"며 "이게 글로벌 경쟁의 힘"이라고 덧붙였다. 예술가로 활동한 부모의 영향을 받아 예술에도 조예가 깊다.

에마뉘엘 로망은 누구…

△1963년 파리 출생 △1985년 파리 도핀대학 응용수학과 졸업 △1987년 미 시카고대 경영학석사(MBA) △1987년 골드만삭스 입사 △2005년 GLG파트너스 공동 최고경영자(CEO) △2010년 맨그룹 최고운영책임자(COO) △2013년 맨그룹 CEO △2016년 핌코 CEO

[로스앤젤레스 = 황인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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