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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박수찬의 軍] '60년 북한 바라기' 한국군…종전선언에 "어찌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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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대립이 반복되던 한반도에 대화의 기운이 무르익으면서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전쟁 위기가 평화 국면으로 전환되는 속도가 워낙 빠르다보니 국민여론과는 부합되지 않는 색깔론을 반복하는 등 사회 곳곳에서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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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은 군에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연합뉴스


군도 마찬가지다. 판문점 선언으로 남북 군사회담 가능성이 높아지자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응, 남북 군사회담 등 국방부의 대북 정책을 총괄하는 대북정책관을 임명한 지 3개월만에 청와대 국방개혁비서관으로 근무하고 있던 김도균 육군 소장(육사 44기)으로 교체하는 등 대화 국면에 대응하느라 분주하다.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국방개혁 2.0 청와대 보고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가시화되는 상황을 반영하는게 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건군 이래 60여년 동안 북한군과의 싸움에 집중해왔던 우리 군은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할까.

◆미사일→드론으로 무게 중심 이동할 듯

올해 초까지만 해도 우리 군의 전략은 ‘기승전 북한’이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유사시 최소 희생으로 최단 기간에 승리를 거둔다는 목표를 세우고 신속하게 평양까지 진격한다는 공세적 작전개념을 강조했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상호 적대행위 중단과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 군비축소 등에 합의하면서 대북 군사전략에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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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피해가 없는 드론의 군 이용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정찰 외에 군수물자 수송 등에도 쓰이는 추세다. 게티이미지


북한 핵을 비롯한 잠재적 안보위협 감소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전제 하에 수립된 국방개혁 2.0과 북한 핵과 미사일, 장사정포 위협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핵심위협긴급대응타격(Kill Chain), 북한 전쟁지도부 제거 등을 위한 대량응징보복(KMPR),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로 구성된 한국형 3축 체계구축계획은 수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정없이 진행된다 해도 한반도 화해분위기 속에서 이를 국방정책 전면에 내세우기 어렵다는 인식이 적지 않다.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이 적극 추진중인 드론봇(드론+로봇)이 국방부와 계룡대 등에서 자주 거론되는 것도 이같은 정국 변화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문재인정부의 국정기조인 4차산업혁명과 맥락이 같고, 국내 연구개발 위주로 진행되기 때문에 경제적 효과도 있다. 병력 대체가 가능하고, 북한이 군사적 위협으로 간주할 가능성도 낮다. 장비 탑재에 따라 정찰, 공격, 수송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다. 육군은 지난달 세종시에서 드론봇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민간 드론업체들이 주도하는 드론쇼에 참가하는 등 드론봇 띄우기에 한창이다.

반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항공기를 운용하는 공군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군 소식통은 “전투기 조종사 위주의 공군 조직에서 드론은 부차적인 존재라 드론을 활용한 혁신안을 만들기 어렵다”며 “미래 전장이 드론 위주로 운영될 것이라는 점을 간과한 대가를 육군으로부터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3일 세종시에서 육군이 주최한 드론봇 컨퍼런스에서 육군교육사령부는 공군작전사령관이 행사하는 공역(空域) 사용 승인과 통제권을 거론하며 “육군과 공군간의 지휘통제체제(C4I) 소통에 제한이 생기면 공역(空域) 사용 요청 승인, 예하부대 전파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문제점이 발생한다”며 육군공역통제체계(AACS) 구축을 주장했다. AH-64 공격헬기와 현무 탄도미사일, 천무 다연장로켓 등 공중지원 수단을 갖춘 육군이 공군 승인 없이 공역을 통제하고 드론봇을 투입하면 하늘과 지상에서의 군사행동은 육군이 모두 주도하게 된다.

◆도서지역 방어, 해외 파병 확대 필요

집안이 조용해지면 담장 밖의 동네 사정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생기는 법. 북한과의 전쟁 위협이 크게 감소하면 우리 군도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과의 갈등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휴전선을 제외하면 군사적 갈등이 발생할 위험이 있는 곳은 독도다. 일본은 대한민국 고유의 영토인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아시아 2위의 해군력을 보유한 일본은 60여척의 헬기모함과 구축함, 호위함, 잠수함과 110여대의 해상초계기를 운영한다. 해병대격인 상륙기동단을 창설해 도서지역 상륙능력도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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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해병대 상륙돌격장갑차가 지난 2월 태국서 열린 코브라골드 훈련에 참가해 해변으로 이동하고 있다.


제주도 남단 이어도 일대도 화약고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어도 상공은 한국, 일본, 중국 방공식별구역(ADIZ)이 겹치고 있다. 중국은 기존에는 이어도 상공을 거쳐 일본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해 일본 항공자위대와 신경전을 벌였으나 올해 2월 27일과 지난달 28일에는 동해 중부 해역 상공까지 북상했다. 방공식별구역은 국제법상 영공은 아니나 진입 전 당사국에 통보하는 게 관례다. 중국은 우리 공군 전투기가 출격해 경고 통신을 했음에도 4시간 가까이 비행을 하고 돌아갔다. 중국의 이같은 움직임은 동아시아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무력시위라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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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해군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과 다른 함정들이 훈련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해군 제공


대한민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해외 파병 활동이 활발해질 가능성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해군 청해부대다. 소말리아 아덴만에서 2009년 3월부터 상선보호와 해적 퇴치 활동을 펼치고 있는 청해부대는 지난달 30일 아프리카 가나 해역에서 납치된 우리 국민 3명의 신원을 무사히 확보했다. 2011년 1월에는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된 삼호주얼리호를 구출하고 해적들을 생포했다. 2014년과 2015년에는 리비아, 예멘 내전에서 우리 국민과 외국인들을 구출하기도 했다. 해군은 가나 해역에서의 활동을 토대로 나이지리아 등 기니만 일대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교류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군사적 소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해군과 공군력 강화가 불가피하다. 서북도서 일대에서의 연안전투보다는 먼 바다에서 대한민국의 힘을 과시할 수 있는 대형함정 건조가 힘을 얻게 된다. 넓은 바다를 빠르게 순찰할 수 있는 해상초계기 수요도 지금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섬을 방어하는 해병대도 확대될 필요가 있다. 공군은 지상군 지원 임무에서 벗어나 먼 거리에서 적을 먼저 발견해 타격하는 장거리 전투 위주로 재편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기경보통제기, 공중급유기, 장거리 공대공/공대지미사일 등이 추가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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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해군 세종대왕급 이지스구축함이 독도 근해를 항해하고 있다. 해군 제공


무기도입 분야에서는 해외 구매 대신 국내 개발 비중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 도발이 지속될 때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비싼 돈을 들여 외국 무기를 급하게 도입하는 일이 많았다. 급하게 무기를 구매하다보니 과다 지출, 기술 이전 부족, 사후관리 부실 등의 부작용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북한 도발이 사라지므로 긴급히 무기를 구매해야 할 필요도 줄어든다. 국내에서 무기를 개발해 군에 배치하면 기술력 향상과 경험 축적으로 국방과학 발전에 도움이 되는 만큼 향후 군의 무기 소요를 국내에서 충족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 군은 창군 이래 60여년을 ‘북한 바라기’로 살아왔다. 북한을 주적으로 생각하고 전략과 전술을 구상했으며 무기 도입도 북한 위협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로 한반도의 대결 구도가 무너지면 우리 군은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한다. 이 때 필요한 것이 “군대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군이 존재하는 본질적 이유를 찾으면 길이 열린다. 군의 본질은 무엇인가. 북한이 아닌, 국민과 영토의 수호다. 한반도 평화시대를 맞는 군이 찾아야 하는 길을 올바르게 찾는 것만이 국민의 신뢰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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